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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by 김국현

정기구독이 돌아온다

정기구독이 돌아온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좋아했던 것들도 결국은 어디선가 비용이 나가고 있는 것들. 영원해 보였던 대자연이 청구한 비용청구서는 너무나 크다. 무료라고 좋아했던 인터넷 서비스들은 우리 자신이 상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공짜는 늘 좋다. 사놓고 후회하는 일이 덜해서다. 잘 쓰지도 않은데 돈을 쓴 제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기까지 빨리는 느낌인데, 인간은 이처럼 확정된 손실에 약하다. 프리미엄(FREEmium)의 유행은 이 틈을 치고 들어 왔다. 일단 써보고 괜찮으면 돈을 내시라니 얼마나 좋은가. 프리미엄은 특히 앱이나 온라인 서비스와 같이 낯선 체험과 만나야 하는 업태에 잘 어울렸다.


그런데 한 철 장사라면 몰라도 꾸준한 업그레이드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입이 필요한 일이다. 과거의 소프트웨어 패키지나 속편 영화처럼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로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앱 마켓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맨땅에서 새롭게 시작하느니, 이미 깔린 기반에서 점진적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마케팅이나 사용자 유지 면에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은 개발비를 환수해야 하는데 언제까지나 버전업 서비스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한 번 유료 구매해 주면 영원한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모델에 피로감이 생겨버린 셈이다.


사실 이미 소프트웨어 마켓은 구매에서 구독으로 트렌드가 조금씩 옮겨 가고 있다. 이미 대형 업체들도 구독형으로 빠르게 이행했는데, 어도비가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묶어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라는 구독 상품으로 전면 이행해 성공한 사건이 선구적 역할을 했다. 이처럼 자사 제품의 충성도가 높은 이들의 모험은 성공확률이 높다. 발목 잡히는 기분이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이 구독하곤 하는 법이다. 그런데 오히려 소비자에게는 나름의 이점도 있다. 수십, 수백만 원하던 소프트웨어를 일시불로 사는 것(그리고 업그레이드할 때 또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월 2~3만 원에 쓰고 안 쓰면 바로 해약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공모전 등 써야 할 시즌에만 돈 내고 쓰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용기를 얻은 오피스 365 등 마이크로소프트 제품도 지금은 아예 구독이 그 주축이 되고 있다. 이제 남은 곳은 앱스토어 등 앱 마켓.


유료, 인앱결제 이외에 ‘구독’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지원되고 있다. 과금 수수료도 15%로 오히려 일반 유료앱의 30%보다 저렴하다. 그리고 구독 모델도 인앱결제의 일부(자동갱신구독형)로 구현되므로 처음에는 무료로 써보다가 괜찮으면 결제를 유도하는 프리(free)미엄 비즈니스 모델을 취할 수 있으니, 아예 유료보다는 신규 유저 발굴에는 오히려 유리해 보인다.


스마트폰의 성장도 멈추고, 신규 앱에 대한 사용자들의 호기심도 흐려져 가고 있는 성숙 시장. 시장 확대로 신규 고객이 자연스럽게 개척되던 시절이 가버린 지금, 그 비즈니스 운영이 힘들어진 시대의 트렌드다. 모든 비즈니스의 꿈은 지속적으로 수익이 들어 오는 연금형(annuity) 비즈니스다. 안도감을 갖고 새로운 일을 벌일 토양이 만들어질 때, 창조력이 발휘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갑자기 구독 모델로 전환하는 일은 별점 테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고객의 반감을 사기 쉬워서다. 영원히 업그레이드되리라 생각하며 유료 구매를 했던 이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라면 정말 좋아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가 쓰는 기간 동안 확실하게 서포트를 해준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예전에는 누구나 좋아하는 잡지를 정기구독하곤 했다. 무엇을 구독하느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시절이기도 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그 시절의 우리도 그대로다. 비즈니스 모델도 시대와 함께 돌고 도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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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