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고 펴기 위한 장인정신? 갤럭시 폴드 vs 씽크패드 폴드
스마트폰의 지각변동이 10년쯤 지나니 ‘넥스트 빅 씽’에 대한 갈증은 쌓여만 간다. 특히 사람들의 물욕에 직접 호소하는 외모, 즉 폼팩터는 좀처럼 변화가 없다.
생김새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왔다가 또 갔지만, 접고 펼치는 기능은 최근 가장 트렌디한 유행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분야의 리더는 갤럭시 폴드 제품군인데, 세대가 거듭될수록 점점 세련되어져 가고 있다. 초기의 걱정이었던 내구성은 세월과 함께 더 단단해질 터이다.
접고 펴는 일은 단순한 행위지만 누구에게나 손에 익은 자연스러운 동작이다. 이 간단한 행동으로 화면 크기라는 직접적 효용이 순식간에 배가되는 체험은 한 번 맛보면 빠져들게 된다. 접는 화면이라니 글로 읽고 사진으로 보면 별것 있겠냐 싶다가도 실물을 보면 물욕이 샘솟는다.
하지만 갤럭시 폴드 2도 두 가지 면에서 여전히 마음에 차지 않는데, 우선 접으면 여전히 꼭 책처럼 폭 닫히지 않고 틈이 생긴다는 점이다. 틈은 전작과 비교하면 줄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어 보이긴 한다. 또 한 가지 더. 수첩 펼치듯 펼치는 맛 뒤에는 펜으로 쓰고 싶은 기분을 떨치기 힘들다. 갤럭시 폴드에 펜이 채용되지 않는 이유로는 역시 내구성이 거론되고 있는데, 실은 방법은 있었다.
최근 양산 개시된 씽크패드 X1 폴드는 이 두 가지 아쉬움이 다 해소되어 있었다. 우선 화면이 접혔을 때 그 사이의 틈은 얇디얇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그 사이에 끼우도록 해서 해결했다. 사실 모바일 단말에서 물리적 키보드의 유무는 생산성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 키보드가 자석으로 체결되는 느낌도 살아 있다. 그 사이에서 충전도 된다. 과연 왕년의 씽크패드를 떠오르게 하는 만듦새다.
펜 역시 씽크패드 X1 폴드에는 보란 듯이 들어 있다. 휘고 접힌 부분에까지 펜 글씨를 쓸 수 있는 체험은 독특하다. 디스플레이보다 펜촉이 먼저 마모될 것이라 주장하기까지 하는데, 화면에 쇠구슬을 떨어뜨리는 등 씽크패드 전통의 가혹한 내구성 시험은 그대로 답습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동일한 밀스펙(MIL-SPEC, 군용 스펙)이다.
아니나 다를까 씽크패드 전설의 원점 '야마토 랩’에서 만든 기종이었다.
씽크패드의 추억
레노보의 씽크패드 시리즈 중 고급 기종 등은 여전히 일본의 야마토 랩에서 연구·개발되고 있는데, 이 씽크패드 X1 폴드는 그 초기 구상으로부터 5년이 소요되었다.
하코네의 전통 '요세기 세공(寄木細工, 나무 모자이크 세공)'에서 영감을 얻어 내부적으로 부품들이 겹겹이 분산 배치되고 딱 들어맞도록 조립되는 내부 구조를 구성한다. 심지어 칩조차도 인텔이 3층으로 구조화 해 쌓아 올린 레이크필드(Lakefield)를 채택했다. (치밀한 장인정신이긴 하지만, 그냥 타이거레이크가 낫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좋지만 실행속도가 너무 느린 감이 있다. 5년이나 소진한 탓에 그간 스포트라이트는 갤럭시 폴드가 다 가져갔다. 어째 힘이 예전 같지 않다.
사실 씽크패드는 기술입국 일본의 좋았던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IBM은 미국회사였지만, 본사는 노트북을 포함한 PC 사업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씽크패드에는 거점 연구소 야마토 랩의 고집이 담겨 있다.
흑색과 적색의 디자인 양식은 일식 도시락인 쇼카도벤또(松花堂弁当)에서 가져왔다. 빨콩 트랙포인트는 도시락 한가운데의 우메보시를 상징했지만, 왜색으로 여겨질까 애써 그 개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씽크패드가 성공하리라고는 누구도 자신이 없었던 차, 마치 지프(Jeep)처럼 나중에 이리저리 주인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브랜드를 꿈꿨었다. 씽크패드의 이름은 당시 IBM 직원들이 들고 다니던 수첩, 즉 노트패드에서 따왔다. Think라고 표지에 쓰여 있었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고 했던가. 씽크패드는 중국회사 레노보에 팔리고 레노보 씽크패드가 되어 존속되고 있다. 당시 아쉬워 하던 이들이 많았는데, 씽크패드는 상업적 성공 이전에 일종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뉴욕 현대 미술관 MoMA의 컬렉션에도 등재되어 있을 정도인데, 영구 소장품인 씽크패드 701에 탑재된 키보드는 뚜껑을 열면 화면크기보다 넓게 펼쳐졌다. 속칭 버터플라이 키보드(맥북의 그 버터플라이가 아님), 정식 명칭 TrackWrite라는 그 구조는 오늘날의 폴드처럼 계속 폈다 접었다를 해보고 싶게 만들었다. 그런데 펼쳐지는 키보드의 실용적 의미는 화면이 키보드보다 좁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대중은 점점 더 넓은 화면을 원했다. 멋졌지만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래도 이처럼 기발하거나 잘 만들어진 변신 구조는 사람들을 매료한다. 그 탄력의 손맛, 스프링이나 경첩에서 나는 듯한 미묘한 소리 또는 진동. 예술이란 별것 없다.
씽크패드 X1 폴드 소식을 듣자 그 기종이 생각났다.
하지만 X1 폴드도 어딘가 아쉽다. 생각해 보니 키보드에 트랙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 틈 사이에 밀어 넣어야 하는 키보드다 보니 그 정도 돌기도 만들기 힘들고 약간만 높아도 화면을 누를지 모르니 또 위험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오랫동안 컴퓨터를 해왔다면 마음속에 추억의 씽크패드 하나쯤은 있을지 모르겠다. 설령 써보지는 못했어도 갖고 싶었던 기종 또한 있을 수 있을 터다. 500, 600, 700 등 그 형번을 기억할 수도 있고, 그 이후 X, T, P, E, L, R 등 그간 오갔던 다양한 시리즈가 떠오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팜탑PC 110이나 230시리즈를 탐냈던 추억이 떠오른다. 창고에는 여전히 씽크패드 600이 한 대 있다.
그러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레노보에서는 xiaoxin(小新)이라는 새로운 저가 브랜드가 나왔고, PC사업을 방출한 왕년의 명가 IBM은 클라우드 및 AI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현존 인프라 비즈니스마저 분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