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개인의 힘
[IT강국의 품격] 스웨덴편
아무 단어에나 앞에 ‘북유럽풍’을 붙여 보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북유럽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대중적이 되어서인가 보다. 이 막연한 이미지야말로 가장 강력한 국가 경쟁력이다. 북유럽 중에서도 스웨덴은 그 대명사가 되어 버렸는데,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 잭 블랙 주연의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2008)에서는 ‘스웨덴했다(sweded)’라는 말이 나와 당시의 유행어가 되었을 지경이다.
사실 스웨덴은 볼보와 사브처럼 개성 있는 명차의 고향이기도 하고, 에릭슨이라는 ICT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버티고 있기도 하다. 일렉트로룩스나 이케아, 테트라팩처럼 스웨덴에서 태어나 우리 생활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공산품은 꽤 많다.
우리가 유난하게 민감해 하는 각종 IT 순위에서도 스웨덴은 늘 우리를 멀찌감치 앞지르면서 수위권에 포진해 있다. 세계경제포럼 지수에서부터 IT산업 경쟁력, 웹 인덱스에 이르기까지 각종 지표의 모든 면모에서 늘 메달권에 끼어든다. IT 강국은 이처럼 자기주장이 아니라 실적이다.
그런데 스웨덴에서도 델 컴퓨터에 윈도우를 쓰고 있다. 맥도 애용된다. 핸드폰은 거의 다 수입산이다. IT 강국이라면서 스웨덴 독자 브랜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가 IT 강국이란 말인가?
질문이 틀렸다.
강국의 힘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스웨덴 IT의 힘은 스웨덴인에게서 나온다. 꼭 크고 유명한 기업이 아니라도 스웨덴인은 대활약중이다. 그리고 그 성과는 크고 유명해진다. MySQL, 마인크래프트, 캔디크러시 등 당대의 문화를 근본부터 흔드는 일이 스웨덴인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파이어릿 베이(Pirate Bay)처럼 너무 흔들다가 기소되기도 했다. 저작권마저 흔들어야 할 기존질서로 본 것이라면 너무 자유분방했다. 자유분방하기로 치자면 유튜브 개인 방송의 황제 퓨디파이(PewDiePie)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자유분방한 스웨덴인들은 수많은 IT의 혁신 사슬에 끼어들어 그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더해 간다.
스웨덴은 한국이 갈 수도 있었던 길을 보여주고 있다. 공업국에서 시작했지만,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집단의 생산력에서 개개인의 힘으로 이행하는 길.
스웨덴하면 글로벌 음악 서비스 스포티파이(Spotify)처럼 대박난 B2C 기업만 떠오르지만, 사실 B2B 및 소프트웨어 솔루션 서비스에서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다. 인텐샤 등 우리로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기업들이 많지만, 수천명씩을 고용한다. 이 기업들은 또 글로벌 기업이 되거나 인수되면서 세계로 적극적으로 편입한다. 내수가 작으므로 고객은 대부분 영국, 미국, 독일 등 수십개국을 아우른다.
똑같이 기업 고객을 위해 소프트웨어 솔루션을 제공하는 꿈을 꿨지만, 한편 우리의 SI 회사들은 세계로 나가지 못한 채 자폐적이 되어 결국 3D 업종이라는 기피대상이 되어버렸다. IT강국이라 자화자찬만 했을 뿐, 그 안의 개개인들은 활력을 잃어간다. 그런 면에서 스웨덴은 하드웨어 등 외양에만 치중한 채 내실을 잃어버린 IT강국의 허상을 깨우치게 하는 좋은 자극제로 보인다.
서울보다 작은 인구를 지닌 소국이지만, 여성취업률은 80%에 육박한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게임 섹터에서의 여성 취업자수도 39%나 증가했다. 그렇게 말괄량이 삐삐의 후예들은 세상을 조금씩 ‘스웨덴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