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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왜 조니 아이브가 없나 궁금해하기 전에

애플 CDO(Chief Design Officer) 조니 아이브(Jony Ive)의 퇴사 뉴스는 여느 신제품 뉴스 못지 않게 IT 뉴스란을 장식했다.


지난 27년 동안 재직하면서 형광색 아이맥에서 아이팟, 아이폰을 거쳐 애플 워치에 이르기까지 모던 애플의 디자인을 책임져 온 아이돌급 아이콘이라 그의 행보는 뉴스가 된다.


특히 조니 아이브는 하드웨어 디자인뿐만 아니라 글꼴이나 UI 등 소프트웨어의 디자인까지 총괄해 오다 보니 애플 디자인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놓여 있었다. 애플의 존재감이 디자인에 있음을 아는 모든 회사 경영진들이 왜 우리 회사에는 왜 저런 인재가 없을까 생각하곤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1. 여러분 조직 안에는 이미 조니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조니 아이브가 97년 신생 애플의 디자인을 바꿔나가는 중책을 짊어졌을 때 아이브는 겨우 30세, 입사 5년 차였다. 그때도 이미 팀장이기는 했지만, 애플은 완전히 쭈그러든 회사였다.


방랑에서 귀향한 스티브 잡스는 현상을 바꾸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잡스도 밖에서 날아온 여느 신임 사장처럼 새 술은 새 부대에라며 백전노장의 노련한 리더를 영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잡스는 싱크패드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그냥 IBM과 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왔었다면 아마 조니 아이브 대신 그의 이름을 기억했을 것이니, 이는 역사에 남는 인생 선택이다. (후일 그는 애플이 너무 작아 보여서 그랬다며, 어찌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회고한다.) 조니는 천재일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천재는 매년 태어나고 세계는 넓다. 능력만큼 중요한 것은 맞는 시기에 맞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시점에서 말하자면 기업이 이처럼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고 있는지, 바꿔 말하면 뛰어난 인재가 이러한 기회가 주어질 만한 곳에 애써 남아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는 아이브와 만난 후 이제 이 젊은이를 좋아하자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딘가 부족해도 내부 인력에게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는 그렇게 승진을 거듭 21세기가 되기도 전에 임원(VP)이 된다.


한국에서도 그간 많은 공산품이 나왔고 또 히트작도 있었지만, 개인의 이름으로 환원되는 일은 드물다. 상품은 조직이 만들지만, 작품은 결국 어느 개인이 만드는 것이다. 그 작품의 테이스트, 취향, 타협하지 않는 고집과 열정이 결국은 누구로부터 나온 것인지 밝히고 귀속시키는 일은 조직과 사회에게 멋진 가치를 생산하는 일은 기억된다는 신호를 준다.


하지만 팀과 조직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이들은 수줍게 가려진다. 이것은 스캔디나비아 문화처럼 하나의 문화다. 그런데 그 공이 조직장에게만 돌아가는 일은 문화도 무엇도 아니다. 국내에서는 ‘아무개 호(號)’라며 수장이 이끄는 군대의 은유가 횡행하며 높은 자리의 인물만 언론에 등장하곤 한다. 


2. 여러분 조직에는 프로덕트 가이에 대한 신뢰가 있습니까?


프로덕트 가이(product guy). 제품을 만드는 이들. 왜 이 제품이 이 모양인지(좋고 나쁜 의미에서 모두)에 대한 설명책임을 지는 이들이다. 상품이 아닌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기에 작가와도 같다.


그런데 국내 제품 기업, 즉 결국은 대기업에서는 제품 디자인의 최종 ‘컨펌'을 경영진이 종종 한다. 그 결재권자들은 대개 프로덕트 가이가 아니다. 그런데 결정은 그분의 취향이 좌우하는데, 아무래도 실무를 떠난지 오래라 감성이 세련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게다가 “~하면 어때?”와 같이 무심코 던져 보는 말이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져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제품이 나오곤 한다. 디자인 시안을 랜덤한 높은 분들이 평가하는 데서 벌어지는 촌극은 산으로 간 한국형 디자인의 주된 원인이곤 한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즉 제품 설계에서의 독립성 확보가 작품을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본인의 인생 역정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브의 절친이자 보호막이 되어준다. 이 둘은 공인된 ‘소울메이트’가 되는데 띠동갑의 절친은 그렇게 임종도 지킨다.


그리고 이 우정이 애플의 급상승을 만든 원천이 된다. 애플의 각종 디자인 결정은 호오(好惡)가 갈린다. 일반 기업에서는 통과되지 못했을 결정도 많다. 다른 기업 같으면 당장 담당자 옷 벗고 원상복귀 될만한 결정도 꾸준히 강단 있게 되는 날까지 밀고 나간다. 최근 애플 키보드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3. 리더 여러분은 떠날 때를 알고 있습니까?


시대는 변한다. 그리고 모두 각자의 시대가 있다. 하나의 시대를 맡던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다음 시대가 비로소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조니는 천재라서 이미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다. 조니의 마음이 이미 수년 전, 특히 애플 워치를 끝낸 뒤부터는 떠나 있었다는 것이 풍문이다.


이미 CEO도 건드릴 수 없는 전설이 되었기에, 최근에는 출근도 거의 안 하고 샌프란시스코 집 근처에서만 가끔 회의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니의 마음이 이미 떠났었음을 알 수 있는 일화는 많다. 프로덕트에서 지치면 더 메타적인 일에 끌리기 마련인데, 디자이너의 경우 예컨대 건축과 같은 과외활동으로 관심이 옮겨 가곤 한다. 애플 신사옥을 마지막 역작으로 남긴 조니는 이미 시작된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다. 이제 포스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에 우리 삶이 빨려 들어가는 날, 통제권을 잃어가는 사용자에게 디자인과 UI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손안에서 놓을 줄 모르는 스마트폰이라는 요물에 대한 소비자의 회의와 걱정은 디지털 중독이라는 반감마저 낳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모두 아이폰 덕이다.


이제 1을 10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시 0을 1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 조니는 천재니까 그 어려움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예전 같지 않은 근래의 애플 주가 추이도 시장이 애플에게서 느껴지는 이 불안감을 반영한다.


퇴사 후 독립 회사를 만들어 애플의 일도 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임원이 그만두어도 고문 타이틀을 주는 것과 비슷한 일종의 형식적 의전일 듯하다. 조니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 자리는 무슨 영구 결변처럼 빈 채로 함께 일하던 이들이 CEO도 아닌 COO에게 보고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C레벨(최고위임원)’에는 디자이너가 없는 보통 기업의 일반적 조직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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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