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게임들은 정말 도박이 되어 가고 있는가, 세계는 지금 고민 중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국제질병분류 개정안에 ‘게임 장애’를 추가하기로 했다. 행위를 중독으로 본 전례로는 도박이 있다. 게임을 도박 같은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일의 선진국은 사실 한국이었는데, 한때 발의되었던 속칭 4대 중독법이 있다.
인간 고유의 유희와 표현의 자유를 말살할뻔한 그 한국형 중독법이 갑자기 글로벌해진 것인가 의아해 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약간 다르다. 정말 게임이 도박이 되어 가고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을 댕긴 것은 게임의 명가 EA에서 출시된 스타워즈 최신작 비디오 게임. 오래간만에 찾아온 스타워즈 시즌. 물들어 올 때 노 젓는다고 유료 제품이면서도 소액결제로도 한 몫 땅겨보려 했었다. 하지만 돈을 자꾸 내 뽑기를 해야 제대로 된 게임을 할 수 있는 얼개에 소비자들이 폭발하여 기대작의 체면이 구기고 말았다. 이 덕에 작년 내내 상승 중이던 EA 주가는 대폭락. 시가총액이 3조 원이나 날아가 버렸다. 문제는 이 사건 덕에 게임이 정말 도박은 아닌가 하는 사회의 눈총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북미·유럽 쪽에서는 구체적으로 규제 요청이 일고 있다. 각국의 게임위원회·게임등급분류기관 등도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과 무엇이 다르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애플도 애플 앱스토어에 확률형 아이템 게임을 올릴 경우 그 확률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로 개정된 앱스토어 심사 가이드라인의 인앱결제 항목에서 전리품상자(loot box)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를 의무화한 것이다.
속칭 가챠(ガチャ)라고 불리는 뽑기는 우리 게임에서는 익숙한 문화다. 특히나 무료게임이 많은 모바일에서는 아주 유용하다. 사실 여기서 무료란 설치가 무료, 즐기는 것은 유료란 뜻이 된 지 오래.
게이머에게 게임 과금이란 그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나만 한가하다면 굳이 돈 안 내도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무엇을 사게 될지 모른다는 재미에 눈을 뜬다. 꽝을 만났을 때의 허무함보다 뭐라도 아이템을 뽑았을 때의 짜릿함이 치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 가챠 자체가 게임의 유일한 재미가 되어 버린 게임들마저 늘어났다. 현실의 돈이 개입되는 순간, 가챠란 게임 세상 속의 그냥 뽑기가 아니다. 뇌내쾌락물질은 대방출을 시작한다.
아이템당 정액을 몇천 원만 받아도 원가가 제로이니 득이련만 확률형으로 하면 수백 배로 벌어들일 수 있다. 업자로서도 하지 않을 리가 없다.
물론 취미란 제각각의 가치관에 따른 것.
그런 게임 하든 말든 각자의 자유이고 사실 다 큰 어른이 자기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제3자가 뭐라 할 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우 같은 상술에 아직 사리분별에 어두울 수 있는 미성년자가 흘러드는 일에 전세계 소비자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냥 깨끗하게 다른 문화 작품을 사듯 게임을 유료로 사고, 게임도 그 시점에서 돈은 더 들지 않게 하고, 그렇게 즐겁게 엔딩을 만끽하고 나서 차기작을 기다리게끔 하던 좋았던 시절의 게임 문화가 모두 그리워졌나 보다.
하지만 21세기의 세상은 그런 소박한 자극에 만족할 수 없는 곳. 현실이 팍팍하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의 비상구는 점점 속된 곳이 되어 간다. 성장을 멈춘 일본 지방도시에 번쩍번쩍 난립하는 파칭코처럼, 사행성 유희의 유혹이란 쉽사리 멈추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뽑기방이나 경마 등 물리적 실체라도 있으면 모를까, 게임회사가 만든 가상공간 안에서는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 또는 버그라는 미명하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확률·통계의 복잡한 얼개를 기획이나 개발에서 실수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데이터베이스 한 칸의 0을 1로 바꿔주는 원가는 한없이 제로에 가까운 일. 5성의 레어템도 허상의 희소성에 불과하거늘, 이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해 사행심을 부채질하고 이를 현금으로 바꿔내는 연금술은 기특한 비즈니스이긴 하다.
게임과 함께 자란 이들일수록 차라리 고전 게임을 중고 패키지로 사서 즐기는 것이 ‘그뤠잇’한 게임 생활이라 말할 것 같지만 이런 아저씨적 발상 역시 부질없는 시절의 것이리라.
그나저나 그렇게 동아시아 변방에서는 각종 사회문제화되었어도 조용했던 애플이 스타워즈 문제가 생기자마자 실효성이야 어떻든 바로 대책을 내놓았다.
당사자가 되기 시작한 세계, 이제야 겨우 고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