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메모리카드 규격은 통합될 줄 모르나
먼저 삼성은 512GB 임베디드 UFS 칩 대량 생산을 개시했다. 이 UFS는 갤럭시 등 최신 안드로이드폰에 내장되는 규격으로 종래의 eMMC를 꾸준히 대체해 왔다. 속도는 4GB 정도의 데이터를 3초에 읽어내는 수준. UFS 규격은 카드로도 이미 나와 있는데 UFS 카드는 마이크로SD와 생김새가 흡사하지만 호환성은 없다. 그래서인지 별로 퍼지지는 않았지만 삼성 노트북에 채택된 모습을 보면 콤보형 리더기가 마이크로SD도 더불어 읽어 주기는 하나 보다.
폰의 용량이 늘어나고, 매체를 뽑았다 꽂는 식으로 데이터를 옮기는 일은 구닥다리로 여겨지는 시대이기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메모리 카드는 자기 자리가 있다.
신속하게 교체하여 데이터의 보관과 초기화가 순식간에 가능하기에 사용 시나리오를 늘릴 수 있고, 메모리 적재를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제조원가를 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영상 장비 등에서는 여전히 애용된다.
영상계의 노포 소니는 CFexpress카드를 들고 나왔다. 얇지만 빈약한 SD카드로는 만족 못했던 디카 업체들은 그 크기상 속도 개선 여지가 있던 ‘컴팩트 플래시’적 전통에 집착해 왔다. 니콘은 XQD, 캐논은 CFast등 제각각의 갈래를 만들어 왔는데, 이제야 이들이 (XQD에서 계승된) CFexpress로 통일되는 것은 아닐까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왜 모두 새로운 표준을 만들려 할까? 그야 현재의 표준이 제공하지 못하는 차별적 기능을 먼저 제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우선일 것이다. 예를 들면 속도였다. 점점 파일 용량이 커지면서 이를 받쳐 줄 매체가 필요하다는 명분은 소비자를 설득하기에도 충분했다. 또 하나의 더 주요한 욕망이 있다. 기능을 금방 따라 잡혀도 차별화하고 싶어서다. 시장을 사실상 표준으로 장악하면 그 표준이 제품을 지켜 주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제조사들은 이 유혹에 약하다.
실제로 이들 신규격은 모두 기본 초당 1~2GB 안팎의 읽기 속도를 자랑하며 차별화한다. 시중에서 지금 살 수 있는 보통 마이크로SD카드의 속도가 잘해야 초당 100MB 정도이니 혹하긴 한다(마이크로SD 카드는 속도를 x 배수로 표현하곤 하는데, CD-ROM의 초당 150KB의 배수라는 뜻. 1,000배라고 해도 초당 150MB).
그러나 마이크로SD '익스프레스' 규격이 이번 MWC에 등장하는 반전이 진행되었다. 속도는 초당 1GB에 육박한다. 다른 거대 카드들에 비하면 딸리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SD카드다. 하위호환성마저 있어, 구형 기계에도 속도는 안 나지만 꽂을 수 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마이크로SD 천하는 당분간은 계속될 것이다.
물론 마이크로SD에도 단점은 있다. 내구성이 약하다는 점. 나도 개인적으로 별 이유 없이 맛이 간 두 장의 카드를 혹시 포맷할 수 있지는 않을까 보관하고 있으나 이제 놓아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또 너무 작다는 점도 단점이다. 분실 우려도 그만큼 커진다.
사실 클라우드와 5G라는 시대는 이런 물리적 매체를 우회한다. 기기 안에 필요충분한 메모리를 선탑재하고, 수시로 클라우드 쪽에서 뽑아가 주는 편이 사용성이 좋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UFS도 카드보다는 임베디드가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애플의 생태계에서는 이미 메모리 카드는 사라져 가고 있다. 아이폰에는 아예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없음은 물론, 맥북 등에서 리더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일반인들은 별도의 독립된 DSLR 따위 말고 최신 아이폰으로 그냥 찍으라고 말하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프로 기분으로 전용 영상 장비를 집에 하나 들이고 싶다면 메모리 카드 규격의 움직임에도 신경 써야 한다. 모처럼 산 신상품이 사양길에 접어든 매체 규격을 쓰고 있는 것처럼 쓸쓸한 일은 없음을 그 옛날 베타맥스 비디오의 교훈은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