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IT. 그 추억과 미래의 연표
주말에 마트에 갔더니 최신형 TV를 파격가로 제안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제전은 가전 신제품을 가정에 보급하기에 최적의 시즌이라 한다. 실제로 올림픽은 이처럼 기술 보급의 선봉일 뿐만 아니라, 신기술의 시험대이기도 했다.
IT가 올림픽과 만나게 된 것은 1960년 캘리포니아 스쿼벨리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이었다. 올림픽에 도입된 컴퓨터는 세계 최초로 하드디스크 드라이브가 채택된 IBM의 전산기였는데, 1950년대의 기술이었기에 여전히 진공관을 쓰고 있었다. 물론 채점표는 천공 카드로 입력되었던 시절. 경기 결과는 기록·계산되어 호텔에 진을 치고 있던 보도진에게 텔레타이프, 그러니까 전신(電信)으로 보내줘 인자(印字)되었다.
온라인에 연결된 컴퓨터가 처음으로 쓰인 것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결과가 네트워크를 타고 바로 프린트되었던 것. 이때도 역시 주역은 IBM이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결과를 즉시 계산하여 경기장은 물론 프레스센터 등에 동시에 경기결과를 네트워크로 쏴주었다. 약 200대의 모뎀이 동원된 이 첨단 정보 체제 덕에 이 대회는 올림픽 최초의 위성 중계 방송도 가능했다. 쿼츠 시계의 세이코와 리코의 인쇄기는 이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노출되며, 올림픽이 자국 산업의 훌륭한 마케팅 도구가 될 수 있음 또한 알렸다.
생각해 보면 IBM은 올림픽 기술의 주인공이자 큰 수혜주였다. 그러나 40여 년의 파트너십은 시드니(2000)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데, 손꼽히는 실패 올림픽 애틀란타(1996) 덕이라는 풍문이 많다. 이 대회는 대회 유치 선정 과정의 로비 의혹 및 지나친 상업화로 눈살을 찌푸렸을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는 느려터졌고, 결과는 집계가 제대로 안 되어 종이를 들고 뛰어다녀야 했다. 그야말로 IT 대참사가 일어났던 것인데, 1996년은 웹의 대중화가 시작되고 PC가 폭발하던 시기. IT의 복잡도가 늘어나면서 10개 회사의 장비와 시스템이 통합되는 거대 SI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다. IBM은 올림픽 베테랑이었으나 그 모든 것을 메인프레임과의 IBM 하에서 통합하면 되었던 ‘왕년’이 아니었던 것.
그렇게 또 하나의 시대는 가고, 또 새로운 시대는 펼쳐진다. 그 시절은 공교롭게도 한국의 PC방에서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e스포츠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이번 개막식 드론쇼 등을 선보이며 올림픽의 비중 있는 탑 스폰서로 등극한 인텔은 평창 올림픽에 앞서 e스포츠 대회를 평창에서 개최했다. IOC가 올림픽에 e스포츠를 넣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살려, 마치 올림픽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을 주고자 한 셈이다.
물론 전자오락 따위가 어디 감히 스포츠 정신을 논하느냐는 시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노보드 등도 90년대에는 스키장에서도 금지된 비주류 ‘X 게임’이었다. 98년 나가노에서 스노보드와 함께 정식 종목에 채택된 것은 빙판 위의 체스라고 분리는 ‘전략 게임’ 컬링이다. 체형이 푸짐한 아저씨가 선수로 나오기도 하지만 땀이 범벅이 되는 것으로 보아 운동량이 상당해 보인다. 그러나 e스포츠도 프로의 세계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신경계와 근육을 조율해야 하며 자기절제를 통한 체력 관리를 수반하는 육체 스포츠의 세계다. 미래 언젠가는 올림픽, 패럴림픽 뒤에 이어서 사이버올림픽이 열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또 언젠가 그 뒤에는 로봇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 12일 횡성에서는 올림픽을 기념하여 로봇 스키대회가 열렸다. 팀별 지원금 포함 총 18억 원의 국가 예산이 투하되었다. 한편 2020년의 도쿄 올림픽에서는 인공지능 심판이 고려되고 있다. 3D 센서로 선수들의 관절 움직임과 심판들의 판정을 비교 입력하여 인공지능 심판을 학습시키자는 것. 언젠가는 기계에게 유난히 잘 통하는 묘기 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올림픽의 형식은 미래와 조율해 간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도 있다. 그건 바로 ‘올림픽에서만큼은’이라는 유예의 정신.
이번 평창 동계 올림픽. 시작하기 전까지 꽤나 시끄러웠다. 특히 지난 국정농단이 동계스포츠를 둘러싸고 펼쳐진 탓인지, 올림픽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지다 못해 냉소적이 된 것 또한 적적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개막식도 무난히 끝났다. 베이징(2008)의 블루스크린이나, 소치(2014)의 불이 켜지다가 만 오륜기, 그리고 성화 점화와 함께 불에 휩싸인 서울 올림픽 비둘기도 없었다.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올림픽이지만, 여전히 입장에 따라 올림픽에 대해 다른 의견은 잠잠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차피 근대 올림픽이란 결국 국위선양을 위한 홍보의 장. 당연히 개최국만의 지방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행사로, 애국심을 조장하기 위해 엔지니어링되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근대의 국제 스포츠란 역설적으로 이때만큼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신사협약이다.
이때만큼만은. 올림픽에서만큼은. 국기를 흔들고 지역을 응원하며 혹시나 쌓이기도 하는 감정의 앙금을 충분히 분출한 후, 대회의 막이 내린 뒤에는 세계 시민의 일상으로 차분히 돌아가기로 한 것이니까.
대한민국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