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X, exe로 환복한다. 실시!
사실 지금 남아 있는 액티브X도 90% 정도는 이미 제공되는 웹표준으로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정상적 웹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정례 개편 때 자연스럽게 걷어냈을 것들이다.
문제는 10%다. 웹에서 하기 힘든 일들을 억지로 하던 시절의 유산(遺産, legacy)들이다. 예컨대 위변조 방지용 인쇄 기능 및 각종 전자 서명 등 한국형 업무들은 꽤 많고, 이들은 한국형 전자 정부의 본질이기도 하니 이들을 갑자기 내칠 수도 없다.
이러한 한국형 공공 업무들은 이미 소위 ‘전산 리거시(legacy)’로 완전히 뿌리내린 셈인데, 이를 건드리는 일은 다른 여느 차세대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도 없는 영역이라면 대안을 시도하고 제시할 주체도 없다. 따라서 제대로 전산 리거시를 뒤엎겠다고 도전하는 일은 대개 무모한 일이다. 스타트업이 괜히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 무모함보다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쉽기에 그리들 하곤 한다.
그러나 이 무모한 프로젝트도 다른 정부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실패할 것 같지는 않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불가피한 경우에는 EXE를 내려받아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라 밝혔기 때문이다. 액티브X는 일사분란하게 EXE로 바뀔 수 있다.
현재로써는 아마도 매우 높은 확률로 액티브X는 사라지지만, EXE는 창궐하는, 결과적으로 리거시의 본질적 내용은 전혀 바뀌지 않은 무늬만 차세대 시스템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EXE 방식을 ‘기술 중립성 높음’으로 평가하고 있다. 브라우저에서의 중립성은 어떨지 몰라도 안드로이드에서 맥까지 다른 OS에 대한 중립까지는 미처 신경이 돌지 않은 듯하다. 아니면 리거시 코드의 존재가 너무도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하기도 싫은 것이다.
문제는 그 불가피한 10%를 봐주는 순간 다른 90%도 변하지 않아도 괜찮을 명분을 얻는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 애초에 그 10%의 불가피하다는 업무들조차 그런 방식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는 일인지 원점에서 되돌아가 되짚어 볼 부분도 많다. 관공서나 금융기관 시스템 사이에 서로 전송되면 그만일 공문서를 굳이 인쇄를 해서 다시 제출하게 해야만 하는지 등등 그냥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관례가 시스템화된 부분이 대다수다. 사실 과도한 ‘공인’ 인증서 의존도 일종의 문화인데, 인감이 있는 나라의 전통문화가 전래한 것뿐이라 여기면 만사가 다소 너그러워진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웹으로 원래 잘 안되는 것들은 윈도우 프로그램 그대로 다른 기종에서도 돌릴 수 있는 가상환경 제공에 세금을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Wine 등 선행 연구를 적극 활용, 오픈소스로 리거시 EXE를 돌릴 수 있는 가상 환경을 설계하고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하는 길도 있다.
이 ‘기술 중립적’ EXE 구동 실행환경은 PC는 물론, 맥, 리눅스, 안드로이드 등에서 정부 자신을 위한 가상공간을 마련해줄 터니 시민의 개인 기계를 지저분하게 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사실 이미 컴퓨터에 익숙한 이들은 각자 나름의 가상 머신을 공공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서 꾸리고 있다. 이 팁을 이제 더 많은 시민을 위해 공개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리거시 때문에 같은 고민을 하는 세계인들 모두가 고마워할 노력과 기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에 리거시를 몰아넣으면, 웹에는 웹에 어울리는 것들만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자 속 물건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천천히 고민해 보면 된다. 이런 리거시 자산의 가상화는 가장 널리 쓰이는 리거시 탈출법이다.
갑자기 억지로 등 떠밀려 바꾸느라 세금으로 일하는 시늉만 하느니,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정리를 하는 길을 찾는 편이 낫다. 갑자기 모든 리거시를 없애고 새로 만들겠다고 무리하는 대신, 그 리거시를 모아서 뚜껑을 덮어주는 일부터 시작하는 편이 현실적이지는 않을까?
언제나 미래는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