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왜 퀄컴과 극적으로 화해했나?
스마트폰도 기본적으로 전화기다. 통신망에 붙기 위해서는 모뎀이라는 칩이 필요하다. 스마트하기 위해 계산을 위한 프로세서와 함께 가장 중요한 칩이건만 어째 사람들의 관심은 높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즈음은 CPU라는 말 대신 스냅드래곤과 같은 SoC에 CPU고 모뎀이고 GPU고 칩 하나에 다 들어가 있어서일 수도 있다.
모뎀은 그간 퀄컴이라는 회사가 거의 압도적 존재감을 내보이며, 거의 독점 상태를 유지해왔다. 퀄컴은 어려웠던 시절 외롭게 CDMA라는 현대 무선통신의 돌파구를 만든 회사인만큼, 알짜 특허로 보호받고 있다. 모뎀은 그냥 으레 거기 있으려니 하는 기능이었고, 대안도 마뜩잖았기에 화제가 될 리도 없었다.
그런데 퀄컴은 영리해서, 칩만 팔지 않고, 칩을 사가려는 이들에게 꼭 특허 라이센스까지 끼워 팔았다. 완성된 폰의 도매가에서 5% 정도를 받았다. 적잖은 돈이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1조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린 것도 결국 이런 행태 때문이다. (그러나 퀄컴은 물론 불복했고 기나긴 행정소송이 시작된다.)
애플도 막대한 라이센스료를 지불해왔지만, 이 비용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애플처럼 자신감 과잉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애플은 결국 퀄컴이 부당한 라이센스료를 청구하고 있다고, 2017년 소송에 돌입한다. 퀄컴은 특허침해라며 애플을 역제소하고, 독일과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 일부 모델의 판매금지명령까지 얻어내며 긴장은 극도로 고조된다.
아무리 퀄컴의 공로는 인정하고 또 아이디어는 보호되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날로만 먹는다면 어찌 혁신이 이뤄질 수 있겠냐며 애플은 호전적이었다. 삼성과의 특허소송전 이래 노하우가 붙은 애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기의 대결이라 불리는 싸움이 그렇게 또 애플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당시의 애플로서는 퀄컴과 척지게 되어도 모뎀쯤은 어떻게든 할 수 있으리란 낙관이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LTE 칩쯤은 만들 수 있는 곳이 없진 않았다. 그중 하나는 인텔이었다. 또 하나는 애플 자신이었다. 애플이 최근 직접 만들어내는 프로세서들은 꽤 훌륭하다. 넘치는 자신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뎀 칩에 연관된 기술자가 어느덧 천 명이 넘어가고 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CPU와는 달리 모뎀은 세대별로 규격이 크게 요동치는 분절적 점프를 한다는 점이었다. 하위 호환성을 유지하며 세대(G)간 점프를 하려면 다양한 특허와 경험이 필요했다. 멀리 있을 것 같았던 5G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퀄컴의 특허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자유를 찾아 떠난 그곳 역시 퀄컴의 손바닥 안처럼 보였다. 여기저기서 5G 개막의 축포가 들리자 애플은 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애플은 통신망에 관한 한 서두르는 회사는 아니었다. 애플은 3G 때도 LTE 때도 1년이나 뒤늦게 제품을 내놨다. 늦게 나와도 애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늦어도 애플은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 덕이다. 하지만 2년 이상 늦어지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게다가 늦어지는 이유가 완벽함을 추구해서가 아니리라는 것도 이미 소문이 다 난 상태다. 뒤늦게 나온 제품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면, 이는 품질의 애플로서는 두려운 미래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전화기에서 가장 중요한 칩 중 하나를 어설픈 공급자에게만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어설픔이란 기술적일 뿐만 아니라 법적이기까지 한 상황이다. 이미 중국과 독일에서 일부 아이폰은 수입 금지가 되어버렸다. 제품이 못 나올 수 있다는, 아니 제품을 팔지도 못할 수 있다는 더 근원적인 불안이 엄습했다.
이 불안의 밤이 얼마나 지났을까. 애플과 퀄컴은 극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인텔은 기다렸다는 듯이 5G 모뎀 칩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발표한다. 마음고생이 심했었나 보다.
애플과 퀄컴은 6년간의 라이센스 계약인데, 6년이면 애플로서도 적잖은 준비기간을 확보한 셈이다. 어차피 퀄컴의 특허로부터는 당장은 자유로울 수도 없다.
최근 발견된 내부 문서에 따르면 그렇게 퀄컴 따위 별로라며 강한척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퀄컴은 베스트”라고 내부적으로는 이야기했단다. 실제로 퀄컴 모뎀과 인텔 모뎀을 동시에 쓰던 시절, 각종 아이폰 벤치마크는 퀄컴 모뎀이 우수하다는 결과를 내보이곤 했다. 지난 이야기지만 아이폰은 퀄컴의 칩에 제약을 걸어 인텔과 비슷한 퍼포먼스가 나도록 조율하기도 했다.
그건 그렇고 어차피 작년부터 전면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인텔 모뎀을 애플이 올해 신모델부터 당장 거둬들일 수는 없을 터다.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베스트인 부품을 다시 쓴 제품은 그렇다면, 내년에 5G로 만나보게 될 듯하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아이폰의 교체 적기는 내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안드로이드 진영은 퀄컴의 칩을 독점해서 5G로 치고 나가 아이폰과 차별화하고 싶었지만. 뜻밖의 전개로 아쉬워하고 있다.
그저 기업과 기업이 으르렁거리는 뉴스일 뿐이지만 관심이 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폰을 사기에 적합한 시기에서부터, 혁신의 대가를 사회가 얼마만큼 언제까지 지불해야 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고민까지, 미래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 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