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재해석될 때 받는 영감
[IT강국의 품격] 덴마크 편
덴마크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가 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었고, 제일 선망하는 장난감은 왜 레고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꽤 오랜 세월이 걸렸다.
덴마크다운 것.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촉매가 되는 것이었다. 상식을 재해석해 만인에게 영감을 주는 일이다.
이야기꾼은 태고부터 있었지만, 창작 동화라는 장르를 만든 안데르센은 발레 및 연극에서 영화, 만화까지 영감을 주지 않은 구석이 없다.
장난감 블록은 레고가 처음이 아니었지만, 특허까지 받은 그 철컥하는 결합방식은 서로 연결하여 키워가는 즐거움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어짐이 필요한 모든 곳에 영감을 주었다. 컴퓨터 업계의 얼마나 많은 장면마다 레고가 비유적 의미로 등장하는지 돌이켜 보면 이 장난감이 영감을 준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엔지니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코드가 서로 철커덕 들러붙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레고를 좋아한다고 직접 밝히기도 한 비야네 스트롭스트룹(Bjarne Stroustrup)은 그렇게 C를 재해석해 C++를 만들어 만인에게 영감을 주었고, 아네르스 하일스베르(Anders Hejlsberg)는 파스칼을 재해석해 터보파스칼과 델파이를, 그리고 또 C++과 자바를 재해석해 C#을, 자바스크립트를 재해석해 타입스크립트를 만들어 멀티플 콤보로 영감을 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이 두드러져 업계는 자극받고 또 움직인다. 이 덴마크다움이 가장 빛을 발한 분야는 건축 설계를 포함한 디자인일 것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기능주의는 ‘덴마크 기능주의(Danish Functionalism)’의 풍토를 낳았는데, 그 위세는 소프트웨어 공학에서의 스캔디나비안 스쿨(학파) 이상이다. 뱅 앤 올룹슨 같은 디자인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는다.
레고의 설명서는 말 한마디 없이도 명료하다. 스웨덴의 이케아도 조언을 구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 영감은 정말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IT의 본산 미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조나단 게이가 만든 플래시 기술은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레고가 알려준 기술 디자인의 영감 덕이었다.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대학 시절 레고로 잉크젯 프린터를 만들었다. 엄청나게 큰 포스터를 싸게 찍을 수 있었다고 하니, 그 자유분방함의 원점에도 레고가 있었다. 레고 숭상의 전통은 창업 후에도 이어져 1996년의 구글 서버는 레고로 그 케이스를 만들었다.
덴마크는 누구에게나 먼 나라지만 모두 각자의 추억 속에서 덴마크를 기억한다. 거대 기업은 없지만, 세계 어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강국의 품격이란 그런 것이다.
국토는 남한의 반, 인구는 서울의 반. 선진국마다 있다는 그 흔한 양산형 자동차 대기업 하나 없지만, 덴마크인은 이에 불안해하지도 불만을 가지지도 않는다.
“우리에게는 대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비 기술이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스포츠카를 수제로 만드는 작은 회사는 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간다. 무리해서 산업을 육성하지도, 철마다 덴마크형 무언가를 만들겠다고 정부가 나서지도 않는다. 남들을 눈치 보며 뒤따르려 애쓰지 않다 보니 상식을 재해석할 여유도 생긴 것이다. 상식의 재해석이란 결국 비즈니스 찬스다. 포브스가 조사한 기업하기 좋은 나라 1위는 덴마크였다.
이러한 자세와 여유는 행복을 가져다주나 보다. UN이 조사한 2016년 세계행복도보고서에서 덴마크는 또다시 1위를 차지했다. 큰 기업도 많고 수많은 ‘한국형’ 무언가도 늘 생겨나는 한국은 57번째로 행복한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