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니까 건물주다
[김국현의 만평줌] 제7화
영세자영업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만 명 이상 줄면서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고용할 여력조차 없는 이들 자영업자들은 상반기에만 10만 7000명이 폐업했다. 10만 7000번의 아픔이 우리 주위에 저미고 있었던 것.
메르스의 여파가 적지 않았을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경기 침체 탓일 것이다. 그리고 그 침체의 근원 역시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결국은 ‘수요 부족’이다. 돈을 쓸 만한 이들이 돈을 벌지 못하고, 또 무리해서라도 돈이 풀릴만한 재미도 줄고 있다.
자영업의 테크트리
(1-A)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예기치 않게 밀려남 = 준비되지 않은 창업.
(1-B) 준비 안 된 티가 남
(1-C)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해 망함.
(2-A) 취업포기 또는 실직 등으로 준비를 못했기에 프랜차이즈에 의존.
(2-B) 하지만 프랜차이즈도 트렌드, 반짝 상승 기류는 언젠가 빠짐.
(2-C) 초기투자, 수수료 및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망함.
(3-A) 꿈을 찾아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창업.
(3-B) 성공의 문턱! 가게와 골목이 유명해짐 = 상권이 발달하며 월세가 올라감.
(3-C) 월세가 한계허용치를 넘거나 건물주의 여러 사정(재건축, 지역 개발)에 의해 쫓겨남.
이 코스들은 어쩌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겪게 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이들 자영업자의 소득이 감소하다 보니 당연히 내수 활성화는 요원한 일이 되어 간다. 이들이 잘나가야 판촉도 하고 단장도 하면서 그 지역 경제도 덩달아 돌아갈 텐데.
게다가 시대는 O2O니 뭐니 동네 자영업자에게까지도 최첨단 마케팅과 소통을 은근히 강요한다.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시간도 없는 이들에게 O2O 시대의 스마트 판촉과 집객 전략이라니, 홈페이지 관리조차 힘들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프랜차이즈 및 각종 제휴 체인으로 하나 둘 투항하게 되면, 개성을 지닌 동네 가게는 점점 사라져 간다.
사실 이 악순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비용 압박의 가장 큰 파이에 해당하는 임대료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건물주의 일거수일투족에 창업자는 일희일비한다.
얼마 전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으로 권리금이 합법화되었다. 공간의 가치를 올려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권리금을 회수하게 함으로써 상가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것. 하지만 이걸로 세상이 완벽해지지는 않는다. 합법화된 자릿세를 낼 여유가 없는 젊은 세대는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건물주도 자신의 건물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재산권 형성을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실제로 보증금과 월세를 처음부터 높게 책정하기 시작했다. 목 좋은 공간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공간은 여전히 건물주의 것이니까.
정든 가게가 떠나고 난 뒤에야 지금까지 건물의 가치를 올려 준 것은 그 가게였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깨달음도 잠깐. 세입자들은 또 찾아온다. 버티니까 건물주다. 다만 그곳은 점점 재미없는 골목이 되어 갈 뿐이다. 그리고 떠난 사람의 수만큼, 재미없어진 정도만큼 경제의 ‘수요 감소’는 일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