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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이모지 10주년. 이모지의 존재의미를 생각해 보자

모던 이모지 10주년. 이모지의 존재

이모지. Emoji란 이모티콘에서 온 말이 아니라 에모지(絵文字)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지만 한국에서의 발음은 이모지로 굳어져 가는 것 같다. 특히 삼성이 갤럭시 S9과 함께 ‘AR 이모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로 한 이후, 에모지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는 느낌이다. 이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라 대개의 외국에서도 이모지는 이모티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모지라고 읽고 있다.

 

1999년 일본에서 등장한 세계최초의 이모지 176자는 뉴욕근대미술관(MoMA)에 영구수장품의 반열에 올랐다. 애플 매킨토시, IBM 씽크패드 등이나 오를 수 있었던 영예다. “디자인의 힘이 인간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근 20년 전에 생겨난 이모지이지만 올해는 이모지가 일본을 벗어나 세계의 공통언어로 개화하기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2008년 아이폰이 일본에 상륙하면서 이모지를 채택, 세계에 그 가능성을 알린 덕이다. 그 후 안드로이드와 손잡고 2010년부터 이모지를 유니코드로 가져오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정식 유니코드 식구가 된 김에 해마다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업그레이드해왔는데, 올해 2018년에도 157종의 새로운 문자가 또다시 추가되었다. DNA, 해적깃발, 대머리 등 새로이 추가된 라인업은 올해도 납득과 갸우뚱 사이의 미묘한 밸런스가 그 묘미다.

 

특히 빌게이츠 재단의 추천으로 모기가 이모지에 등장했는데 말라리아나 지카, 뎅구열 등 모기 관련 계몽활동에 만국공통어로 많이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종 안내를 위한 일종의 픽토그램의 대용으로 이모지가 활용될 수 있는데, 스마트폰 세대에게는 친숙한 상형문자인 덕이다.

 

이 친숙함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낳곤 한다. CarWink라는 제품이 등장했는데, 태양열 LED판을 뒷유리창에 붙이고 음성으로 조작해서 뒷차에게 이모티콘을 쏴주자는 것.

 

또한 페미니즘을 포함한 모든 사회운동이 억압받는 중국에서의 #MeToo는 쌀과 토끼의 이모티콘을 붙여서 쓴다. 발음이 비슷해서다. 상형문자의 나라 중국에서 이모티콘은 또 다른 상형문자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모지는 위험하기도 하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문화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두 손을 맞댄 합장 표시가 일부에서는 하이파이브로도 쓰인다. 더 심각한 것은 기종별로 이모지의 그림이 다르다는 점. 최근 다양한 기종에서 총의 이모지를 권총에서 물총으로 바꿔가고 있는 식이다.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얼굴 표정. 내 눈에는 귀여운 표정의 얼굴을 골랐지만, 받는 쪽에서는 음흉한 표정으로 찍힐 수도 있는 일이다. 이처럼 이모지의 표정은 삼성 다르고 또 LG 다른 지경이다.

 

이모지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하나 있다. 업무 메일에 이모지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이스라엘의 여러 대학이 세계 각국 사용자를 대상으로 공동 조사를 한 실험이 있다. 상대방을 잘 알지 못하는 업무 관련 비즈니스 메일에 이모지가 들어 있으면, 따스함은 약간 더 느꼈을지언정, 능력이 있어 보이는지 여부에서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와버렸던 것. 친한 사이에서는 이모지라는 가상의 표정이 실제 표정으로 변환되지만,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어색함이 더해지나 보다.

 

그래서인지 이모지를 다룬 영화 이모지 무비(국내 개봉명 이모티 : 더 무비)는 잔혹한 혹평 끝에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라즈베리상 9부문 중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등을 포함 4관왕을 차지했다. 재미없는 시나리오를 배우의 매력으로도 구할 수 없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 이모지는 우리를 여러 의미에서 구원하기도 한다. 만약 독자 여러분 중에서 공부하는 개발자가 있다면, 이 그림은 map/filter/reduce를 영원히 잊지 않게 해줄 것이다. 강렬한 그림문자는 이렇게 우리를 돕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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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