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3, 테트리스, 그리고 존경받는 게임에 대하여
[김국현의 만평줌] 제64화
카카오가 얼마 전 출시한 ‘프렌즈팝콘’이 NHN엔터테인먼트가 작년 출시한 게임 ‘프렌즈팝’을 표절했다며 업계가 시끄럽다. 얼핏 보니 이름도 비슷하고 스크린샷도 비슷하다.
카카오는 어차피 이 게임의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캐릭터인데다가 게임 아이디어는 ‘매치3’류라서 괜찮다는 입장이다. ‘매치3’이란 3개를 이어 맞추는 게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은 게임이 3개를 맞추면 일어나는 변화를 둘러싸고 기획되어 왔고, 사실 인류가 즐겨온 상당수 유희의 기본은 끼리끼리 ‘패를 맞추는’ 일이다.
저작권은 표현을 보호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아이디어는 보호할 줄을 모른다. 게임의 아이디어를 유일하게 보호할 수 있는 것은 특허뿐이다. 실제 게임으로 구체화된 상태라면 특허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낙하하는 매치 게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것은 1984년에 나온 테트리스. 특허를 냈다면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는 냉전 공산주의하의 소련. 모든 아이디어는 공유되는 것이 덕목인 공산주의 사회에서 테트리스의 아버지, 알렉시 파지노프의 선의였는지 어쩔 수 없어서였는지 그는 이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고도 땡전 한 푼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구소련 정부는 판권을 아타리와 닌텐도에게 이중으로 팔아서 이 두 회사가 나중에 법정 분쟁에 빠지기도 했다. 알렉시는 소련 붕괴 후 미국으로 이민 가게 되고 테트리스 컴퍼니를 설립하여 차근차근 과거의 권리를 챙기기 시작한다.
일단 곳곳에 깔린 테트리스 유사 게임들에 내용증명을 보내기 시작한 것. 특히 앱 마켓에서는 효과적이었다. 애플과 구글은 괜한 송사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희대의 게임을 만든 노장 알렉시에 대한 존경 때문인지 별말 없이 유사 게임을 지워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의 내용증명에는 정작 특허에 대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84년의 소련에선 낼 수도 없었고, 냈더라도 지금쯤은 이미 특허 만료), 테트리스와 맞서 충분히 법정에서 싸워볼 만했지만, 소송의 길을 굳이 가는 게임 업체들은 별로 없었다. EA나 유비소프트처럼 쿨하게 상표권을 인정하며 라이센스를 받거나(EA는 이 권리 취득을 위해 인수까지 감행했다), 더 쿨하게 그냥 게임을 내려 버리고 다른 게임을 만들어 버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매치3류 게임들은 테트리스 같은 게임을 테트리스와 다르게 만들려다 퍼지게 되었다. 그 계기를 만든 ‘컬럼즈’라는 게임은 1990년 당시 세가가 테트리스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만들게 된 것. 그런데 이 게임은 한국에서 ‘헥사’라는 이름으로 모방되어 유명해진다.
모바일 시대가 된 후 아무래도 디자인을 입히기 쉽고 터치에 어울리는 매치3류가 흥하게 되는데, 매치3류의 정말 원조는 일본 PC 잡지에 1985년에 투고된 한 게임이라는 것이 정설이고, 컬럼즈, 샤리키, 다이아몬드 마인(이후 비쥬얼드로 개명), 주키퍼, 캔디 크러시 사가 등으로 그 계보는 이어진다. 3개 이상의 짝을 맞춘다는 매치3의 기본 형식에 어떻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넣는지에 따라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고, 계보에 이름이 오르는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애니팡 등 국산 매치3 게임들도 늘 있었지만, 게임 역사의 정사(正史)에선 빠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아이디어는 차용하고 표현만 달리한 것이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인정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고, 놀이는 익숙한 놀이 위에서 새롭게 피어난다. 장르란 그렇게 생겨난다. 하지만 유저와 게이머가 바보가 아닌 이상, 해도 너무한 것, 아무리 봐도 쿨하지 않은 것은 보면 안다. 그리고 그 순간 게임 프로듀서, 즉 종합 예술 감독의 존재의미라 할 수 있는 존경은 사그라지게 된다. 조직은 돈은 벌 수 있어도 인생으로서는 아쉬운 일이다.
유난히 모방과 표절 이슈가 많은 게임 강국 한국. 개별 사례는 누구의 잘잘못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나의 장르를 열거나 아니면 적어도 장르의 진화라고 칭할만한 게임이 왜 좀처럼 나오지 않는지, 거장이라고 불리는 게임 프로듀서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지는 걱정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