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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륙이 가르쳐 준 리얼타임 인생론.

영화 ‘퍼스트맨(2018)’은 달착륙이라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긴 스크린 타임으로 풀어 놓았지만, 더 긴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그것은 아마도 딸을 잃은 마음의 상처처럼 어떤 영웅적 위업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아픔이란 것이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일어나고 버티고 또 언젠가는 의미를 남기기도 하고 무언가를 해내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의 달착륙 장면은 밋밋한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게 그려지지만,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9년 7월 20일, 달착륙선은 모함으로부터 분리되어 달을 향했다. 그러나 달과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굉음과 함께 콘솔에는 에러가 떴다. 콘솔이라고 하기도 뭐한 그 기계는 디스플레이와 키보드를 합쳐 급조한 조어인 DSKY(디스키라 부름)라는 것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도어락 수준의 UI였다. 명령어 입력도 암호처럼 두자리 수를 외워서 하나하나 꾹꾹 눌러야 했고, 출력도 전자계산기 수준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키감 하나에도 민감해져 투덜대지만, 그 당시 우주 비행사들은 터치도 쿼티키도 없이 편의점 전자레인지같이 생긴 콘솔을 꾹꾹 누르며 달에 다녀왔다.


어쨌거나 달 궤도에 접어들자 그 콘솔은 굉음과 함께 1202라고 표시되며 번쩍이고 있었다. 수많은 훈련을 거친 우주 조종사들이었지만 겪어 본 적이 없는 에러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에러는 아닐까.’


지금이라도 임무 취소(ABORT) 버튼을 누르면 착륙 모듈 따위 달에 떨어뜨려 버리고 재점화하여 모함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급등하는 심박수에 휴스턴에 정보를 부탁하는데, 돌아온 대답은


“We are GO on that alarm (그 경고에도 GO)”


하지만 이 알람 경고는 계속 몇 번이나 이어진다. 다시 다급해 휴스턴을 불러 보지만, 돌아온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점점 더 달에 가까워져 오니 이번에는 1201 에러가 뜬다. 아까보다 다소 더 길어진 회답시간. 이제는 돌아갈 수도 없다.


“같은 유형이다. GO”


그다음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의 해피엔딩이다. 달착륙선 다리에 붙은 TV 중계 카메라는 기가 막히게 사다리를 내려가는 암스트롱을 포착했으며, 우주인들은 훌륭한 인증샷을 멋들어지게 찍고 귀환했다. 라이브 방송과 인증샷의 중요성은 아폴로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남긴 큰 유산이었다.

리얼타임 인생론

그런데 그 알람 경고들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메모리가 과부하로 꽉 찼다는 뜻이었다. 실은 그 알람 하나하나마다 컴퓨터는 리부팅을 하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있던 레이더 설정으로 예기치 않은 정보가 쏟아져 들어와 컴퓨터에 과부하가 걸렸던 것.


그러나 마감 직전에 뻗어버려 자료는 날린 채 모래시계만 보여주던 우리들의 워드프로세서와는 달랐다. 이 컴퓨터는 곧바로 리부팅된 후 엔진 조정과 같은 주요 작업을 속행했고, 그러다 다시 과부하로 리부팅되기를 반복했던 것이었다.


‘이럴 줄은 몰랐지만, 이럴 때를 대비한’ 설계가 무려 50년 전의 빈약한 컴퓨터에는 준비되어 있었다. 리얼타임 OS의 전통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모름지기 목숨이 걸린 운영체제라면 궤도를 계산하고 하강 엔진을 조작하는 것과 같은 가장 중요한 일을 정확한 시간에 해내야 한다. 최우선순위의 일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빈틈없이 해내야 한다. 강제로 리부팅되더라도 핵심 정보는 잘 보관하고, 뻗어도 핵심 명령만은 무조건 수행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순위대로 명령을 확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런 현대적 리얼타임 OS는 예기치 않은 양의 뜻밖의 데이터가 유입되는 돌발상황에도 중요도가 낮은 정보는 과감히 씹고, 이에 지쳐 반복적으로 리부팅하면서도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켰다. 어떻게든 엔진 조작만큼은 놓지 않았으며, 입출력은 순식간에 복원되었다. 우리 모두가 본받을만한 회복탄력성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정말 중요한 일이란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중요도가 낮은 정보에 휘둘리며, 몰려드는 뜻밖의 데이터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뻗어 버리곤 한다. 리부팅하면 될 일이건만 때로는 근거 없는 낙천주의에 때로는 자존심에 이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정작 삶에서 중요한 일은 놓쳐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라면서도 리얼타임 OS처럼도 그 순간을 살고 있지 못하다.

아폴로 프로젝트가 남긴 것

아폴로 프로젝트는 많은 것을 남겼다. 공통점이 있다면 기술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낙관이었다.


아폴로 프로젝트에는 당대 최첨단 기술이었던 집적회로(IC)가 활용되었는데, 손톱만 한 크기에 트랜지스터가 두어 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그 크기의 자리에 10억 개가 들어간다. 그만큼 세상은 발전했다.


실리콘 혁명을 촉발한 계기는 이처럼 아폴로 프로젝트였다. 60년대에는 이 프로젝트가 당시 칩 수요의 60%를 가져갔다고 하니 압축성장을 촉발한 것만은 사실이다. 반도체의 가능성을 깨닫게 해 인텔을 창업하게 된 실질적 계기를 주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인터넷도 그 기원은 아폴로 프로젝트이니, 동결건조식품과 같은 생활밀착형 혁신을 가져왔다는 사실들은 굳이 세지 않더라도, 분명 달착륙은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가져왔다.


여기에 1202 에러의 교훈과 더불어 아폴로 13호의 드라마 같은 귀환극에서 볼 수 있듯이, 인생은 생각처럼 되지 않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고, 간절히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큰 교훈을 대하 드라마 풍으로 알려준다.


조종간과 페달로 비행기를 모는 대신 컴퓨터가 디지털로 운전하는 시대도 아폴로 프로젝트 덕에 시작되었다. 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시간당 9달러에 외주된 소프트웨어 시스템은 보잉 737 맥스를 떨어뜨렸다.


우리는 진보하고 있는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도 69년에 TV 앞에서 품었던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은 어느새 잊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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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