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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떠난 자리, 정류장

405번 간선버스

버스가 떠난 자리, 정류장

이 여행은 행선지나 버스 그 자체의 이 야기와는 좀 다른, 버스를 타고 떠나는 버스정류장 여행이다. 우리가 버스를 타기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하고, 머물게 되는 공간이 바로 버스정류장이다. 그곳에서 승객들은 각자 타야 할 번호를 떠올리며 버스를 기다린다. 예전에는 타야 하는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요즘에는 버스의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나 등등의 수단들이 있어서 조금 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정류장 또한 스마트해져서 어디에 몇 번 버스가 다니고 몇 분 후 도착하는 등의 정보가 제공되면서 버스가 머무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형태나 기능 면에서는 나날이 발전하는 정류장이지만 그곳에 머무는 정서만 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듯하다.

 

정류장이란 곳은 어딘가 미묘한 감정이 흐르는 곳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정류장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만나는 단골 배경이 되는데, 그렇기에 버스를 기다리는 곳 또는 버스를 타고 떠나면 텅 비어 남겨지는 곳인 정류장은 기다림과 떠남이라는 감정이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정류장’하면 왠지 잔잔한 이야깃거리들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버스 좌석에 앉으면 사람들은 보통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나 건물, 사람들을 구경하곤 하는데, 버스가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정류장을 눈여겨 보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서울에서 흥미로운 정류장 여행을 하려면 간선버스 405번 노선이 제격이다.

 

405번 버스는 405A, 405B번으로 나뉘어 있는데 용산구 관내에서 A는 시계 방향, B는 반시계 방향으로 분리돼 운행한다. 염곡동에서 출발해 양재역, 서초역, 고속터미널역을 지나고 한강을 건너 보광동, 남산으로 향하면 우거진 나무와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는 남산 소월길에 다다른다. 이어서 서울의 중심인 시청을 거쳐, 서울역, 숙명여대, 효창공원, 용산구 남단을 지나 한강을 다시 건너오게 되는 노선(405A번 기준)이다. 그럼 이제, 405번 버스가 시작되는 염곡동 구룡사 정류장에서 405A번에 탑승해 가장 좋아하는 좌석에 앉아 창밖을 통해 정류장을 감상하는 여행을 떠나보자.

버스가 떠난 자리, 정류장

'쉼표, 256 또 다른 여정'

405번 버스가 달려 한강을 지나 남산 소원길로 향할 때에는 조금 집중해서 창밖을 내다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버스정류장들이 곳곳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남산 산기슭에 위치한 소월길은 시인 김소월의 이름에서 따온 길 이름이다. 한국 대표 서정시인의 호를 갖고 있는 길인 만큼 이 길은 더욱 특별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 소월길에는 15개의 정류장이 있는데 특히 서울시의 아트 254 쉘터 프로그램으로 인해 탈바꿈된 ‘예술 정거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트쉘터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 건축가, 디자이너가 함께 예술 정류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각각의 정류장의 이름은 시민들이 직접 쓴 글씨를 공모받아 적용되었다.

 

하얏트 호텔 앞 정류장의 이름은 '쉼표, 256 또 다른 여정'으로 스가타 고&김현근 작가가 시인 김소월의 시 '가는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시 속의 화자에게는 그리운 사람이 있는데 그리운 마음이 들어 길을 떠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그냥 갈까 하다가 다시 한 번 더 그리운 이에게로 마음이 향한다. 버스정류장의 형태도 버스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휘어지다가 다시 뒤쪽으로 매끄럽게 빠지는 모습이, 떠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리운 이에게로 향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의 운동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 같다.

버스가 떠난 자리, 정류장

보성여자중고교 정류장 '휴식'

*이 컨텐츠는 지콜론북의 신간 『더버스: 청춘의 서울여행법』 본문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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