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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파이낸셜뉴스

예당호에 피어오른 물안개, 사라진 백제의 눈물인가

Weekend 레저

충남 예산

후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 '임존성'

봉수산 둘레 4㎞ 걸쳐 쌓인 성곽..일부 복원지역 빼면 옛모습 그대로

봉수산 아래로 펼쳐진 '예당저수지'

해질녘이면 황금색 물빛 장관..수면위로 걷는 산책로 연내 완공

임존성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카메라를 손에서 뗄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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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존성 성벽길은 말을 타고 달려도 넉넉할 정도의 폭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 땅이 충청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내포 땅이 바로 지금의 충남 예산이다. 이곳에는 삼국시대 백제 부흥의 꿈이 좌절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1300여년전 백제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 함락되면서 의자왕이 무릎을 꿇었다. 백제 유민들과 왕자도 전리품으로 당나라에 끌려갔다. 하지만 당시 백제 유민들은 신라와 당나라에 맞서 끝까지 싸웠다. 그 마지막 장소가 바로 봉수산을 둘러싸고 있는 '임존성'이다. 이들은 이 성에서 3년간을 버텼다. 하지만 백제 유민을 이끌던 장수의 배신으로 난공불락의 성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배신한 장수가 바로 임존성의 성주였던 흑치상지였다. 백제 유민을 이끌던 장수가 적군의 선봉에 서게 되자 결국 백제 부흥의 꿈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산군 광시면과 대흥면, 홍성군 금마면이 만나는 지점에 해발 483.9m의 봉수산이 솟구쳐 있다. 이 산 산정에 조성된 임존성은 높은 곳에 우물을 파서 물을 그 안에 모았다가 적의 공격 때 물꼬를 터뜨려 1차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고 결정적인 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임존성은 약 4km의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2.5m, 폭은 3.5m인데 남쪽의 성벽은 굴곡이 심하다. 외벽은 돌로 쌓여 있고 안은 흙으로 메워진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말을 타고 달려도 넉넉할 정도의 폭이다.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의자왕의 사촌 동생 복신, 도침과 흑치상지가 3년여 동안 후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했다. 백제의 산성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커서 산성 연구에 많은 기초가 되고 있다. 성곽 정상에선 남에서 서로 뻗어 줄기를 같이하는 오서산, 백월산, 가야산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이 성의 특징은 네 모서리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곳보다 2m 정도 더 두껍게 조성했으며 성 높이도 다른 지역의 성보다 더 높게 축조했다. 광시면 마사리 방향에서는 성 아래까지 임도를 이용하면 승용차로 주차장까지 오를 수 있다.


임존성의 남서쪽 일부 성곽은 최근 복원해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대신 봉수산 동북쪽과 북서쪽 나머지 구간을 찾아가면 무너져내린 옛 성곽 모습이 남아있다. 임존성에선 예당저수지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저수지는 대륙의 바다처럼 넓고 푸르다. 예전엔 아산만까지 배들이 오갔다고 한다. 응봉면 평촌삼거리부터는 도로도 예당저수지와 나란하다. 길가로 물에 반쯤 잠긴 버드나무와 낚시꾼이 머무는 좌대 풍경도 또 다른 볼거리 중 하나다. 한갓진 풍경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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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임존성과 예당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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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 저수지는 지난 1962년 예산군과 당진시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한다고 해서 예산군과 당진시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중부권 최고의 낚시터로 알려져 있다. 겨울철 얼음낚시 외에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계속 낚시할 수 있다. 주로 붕어, 잉어를 비롯해 뱀장어, 가물치, 동자개, 미꾸라지 등 민물에 사는 물고기 대부분을 만나볼 수 있다.


예당저수지를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선 물가를 따라 한 바퀴 걸어보는 게 좋다. 수변 도로를 따라 승용차나 자전거를 이용해 돌아보는 것도 일반적인 여행법이다. 저수지를 돌다보면 '물 위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군락들이다. 드문드문 수몰나무들이 서 있는 풍경은 장관을 이룬다. 수몰된 나무는 바람이 없고 수면이 잔잔하면 마치 잘 닦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이른 아침에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오를 때에나 해질 녘 수면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 때도 보기에 좋다.


예산군은 올 12월 완공을 목표로 수면 위로 걸을 수 있는 수면산책로를 짓고 있다. 또 응봉면 후사리에 길이 402m의 출렁다리도 만들었다. 수면산책로의 일부 구간으로 보행교 402m, 산책로 355m, 데크로드 1.7km 구간이다. 이 수면산책로와 출렁다리가 모두 완공되면 예산 대표 명물로 알려질 전망이다.


예산은 백제 멸망의 아픔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말기의 혼란했던 상황도 엿볼 수 있다. 조선 말 세도가인 안동 김씨 일가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왕권에 대한 야심을 숨기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어느날 지관을 불러 '왕이 될 지세'를 물었다. 이에 지관이 '2대에 걸쳐 왕이 날 자리'라고 선택한 곳이 현재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이다.


하지만 이 자리는 원 주인이 있었다. 당시 이곳엔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여기에 불을 지른 뒤 그 자리에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가야사가 있던 장소 맞은편 기슭에 보덕사라는 작은 절을 지어줬다고 한다. 남연군 묘에 올라 등지고 풍경을 살펴보면 왜 여기가 당시에 명당으로 꼽혔는지 알게 된다. 왼쪽으로는 옥양봉과 만경봉이 청룡의 세를 이룬다. 오른쪽으로는 가사봉과 가엽봉, 원효봉이 백호의 형상을 이룬다. 이른바 '좌청룡, 우백호'에 정면으로는 탁 트인 덕산 벌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기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묘를 이장한 지 7년여 만에 흥선대원군은 고종을 낳았다. 고종이 왕위에 등극하면서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쥐었다.


고종에 이어 흥선대원군의 손자인 순종까지 왕위에 오르면서 지관의 말대로 됐지만 순종을 마지막으로 조선의 500년 역사가 막을 내렸다.


조용철 기자 yccho@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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