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도 없이 이커머스와 경쟁? 규제에 갇힌 대형마트 [생존 위기 몰린 전통 유통업계 (上)]
월2회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
2012년부터 유통법에 발목 잡혀
입점업체·소상공인도 함께 타격
온라인·식자재마트는 '반사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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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가 갑작스럽게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지난 13년간 대형마트의 경영난을 부추긴 유통산업발전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제정으로 대형마트의 월 2회 공휴일 휴업 의무화가 대표적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농협 하나로마트와 중소 식자재마트들만 반사이익을 봤다는 지적이다. '규제 대못'인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려는 국회의 움직임도 탄핵정국 속에 요원해진 상황이다.
■13년 발목 잡은 '규제 대못'
5일 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매달 2회 의무휴업을 13년간 이어오며 막대한 영업타격을 받고 있다.
지자체 이해 당사자의 합의로 의무휴업일을 선택할 수 있지만 대부분 지역들이 대형마트 최대 매출이 나오는 일요일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자체 재량으로 자정부터 오전 10시 사이 영업시간이 제한된다. 이 때문에 이커머스의 핵심 경쟁력이 된 '새벽배송'도 금지됐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의 온라인 구매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배송의 매출 비중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새벽배송이 안 되니 이커머스와 경쟁은 엄두도 못 낸다"고 푸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휴일 손님이 평일의 2배는 오는데 주말영업을 하지 말라고 하면 타격이 크다"며 "특히 과일, 채소 같은 경우 매장이 하루만 휴업해도 선도가 급격히 떨어져 납품하는 산지 농민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라는 법의 취지도 유명무실하다. 최근 산업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가 주말에 영업하는 지자체에서 주변 상권의 매출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을 휴일에서 평일로 바꾼 대구와 청주 지역의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대형마트가 없는 지역과 비교해 대형마트 주변 상권의 매출이 3.1% 신장했다. 특히 주변 요식업(3.1%)과 일부 유통업(편의점 5.6%, 기타 유통 6.7%)의 매출이 늘어났다.
■규제 사각에 식자재마트만 반사이익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식자재마트 등이 반사이익을 봤다. 식자재마트는 준대규모 점포에 가깝지만 매장 면적이 3000㎡보다 작고 기업형슈퍼마켓(SSM)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식자재마트 사업체 수는 총 1803개로 2014년 대비 74% 증가했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2012년도에 유통산업발전법이 생길 때는 당연히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서로 경쟁 상대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대형마트가 주춤하는 사이에 식자재마트, 온라인 유통업체 등 규제를 받지 않는 업체가 커지고 환경이 빠르게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구와 충북 청주시, 부산, 경기 의정부·고양시, 서울 서초·동대문·중·관악구 등에서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바뀌었지만 갈 길이 멀다. 현 정부도 출범 당시부터 유통법 개정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계엄·탄핵 정국이 이어지며 법안 통과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아가 야권을 중심으로 규제 강화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영학과 교수는 "유통법이 제정된 2012년과 현재는 유통환경이 전혀 다르다"며 "마트와 골목상권이 다 같이 고사 위기이므로 전향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유정 기자 yesyj@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