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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주행거리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전기차를 타면서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단연 주행거리에 관련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 차 주행거리 몇km나 되냐”, “그 주행거리밖에 안 나오는 차 타고 다니다 길바닥에 서버리는 것 아니냐” 등의 과잉 걱정부터 시작하여, “주행거리 1,000km 나오는 전기차 나오기 전에는 전기차 안 산다”라는 등 과한 참견조의 말을 듣기도 합니다. 전기차를 타보지 않았거나, 또는 충전이 덜 되어 있던 렌터카나 셰어링카 전기차를 경험하고 부정적 선입관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참견을 많이 하기 마련입니다. 전기차를 만으로 3년 넘게 운영 중인 필자가 생각하는 전기차 주행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집에서 완속 충전 중인 아이오닉5

집에서 완속 충전 중인 아이오닉5

"매일 500km 넘게 장거리를 탄다는 극단적 가정을 깔고 전기차를 바라보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통상 국내 출시된 6,000만 원 이하 가격대의 전기차들은 복합 주행거리 제원이 최대 400km대 수준이기에, 500km 넘게 못 가는 전기차는 사고 싶지 않다는 소리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 가정을 하는 분들이 감안하셔야 할 점은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자들의 1개월 평균 주행거리는 1,000km 이하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비사업용 기준으로 서울시 승용차 보유주들의 일 평균 주행거리는 29.2km 수준으로, 1개월로 치면 1,000km도 채 되지 않습니다. 땅이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 지리적 특성상 A to B로 편도 500km 이상 소요되는 여정은 아무리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동선을 잡아봐도 쉽지 않으며, 그 정도로 긴 이동은 일상적인 출퇴근이라기보단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장거리 여행일 것입니다.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의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 정도로 긴 여행은 이동시간이 3~5시간가량 소요되며, 아무리 강철 체력이라 하더라도 휴게소에서 휴식을 최소 2~3번은 취하면서 이동했을 것입니다. 내연기관차였다면 하다못해 급유도 1~2회 이상 일어나겠죠. 출발지에서 배터리를 충분히 완충해둔 상태에서 여정을 출발한다면, 급속충전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1회 중간 충전으로 우리나라에서 어디든 못 갈 곳은 없습니다.


500km 가량의 장거리를 매일 탄다고 하면 1개월이면 15,000km가 되고, 1년이면 18만km가 됩니다. 그 정도 주행거리를 달리면 자동차도 감가가 매우 큰 폭으로 이뤄지기에, 그렇게 극단적인 장거리를 뛰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자동차 통근족이라 하더라도 보통 1일 주행거리는 많아야 왕복 100km 이하 수준일 것이고, 그런 조건이라면 전기차도 집에서 자주 충전해준다는 조건 하에 충분히 스트레스 없이 유지할 수 있습니다.

현대 EV스테이션 강동에서 초급속 충전이 진행되는 모습

현대 EV스테이션 강동에서 초급속 충전이 진행되는 모습

"주행거리에 대한 극단적인 기대보다는 급속충전 기술 및 인프라 향상을 기대해보자"

앞서 문단에서의 전제와 마찬가지로, 통상 국내 출시된 6,000만 원 이하 전기차들은 60~80kWh 정도 용량의 배터리를 가지고 있으며, 평균 전비 효율 수준을 5~6km/kWh로 잡으면 500km 미만 수준 주행거리를 가지게 되는 셈입니다. 이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배터리를 2배 이상 늘리면 주행거리도 쉽게 늘릴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쉬운 가정을 한다면 연비 나쁜 고급 대형세단들도 연료탱크 200리터짜리 달고 소형 하이브리드카처럼 주행거리 1,000km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례는 없을 것입니다.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도 60~80kWh 수준 배터리를 달고도 중량이 2톤이 넘어 고생하는 전기차들이 배터리를 2배 용량으로 키운다면 물리법칙상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무거워질 것입니다. 완전 충전에 소요되는 시간도 배 이상으로 늘겠죠. 그렇게 불편하고 극단적으로 비싼 차를 단지 주행거리 1,000km으로 나온다고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최근엔 통상의 400V 고전압 시스템보다 훨씬 빠른 충전을 지원하는 800V 시스템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e-pit 등 350kW대 초급속 충전설비를 이용하면 20%에서 80%까지의 충전에 20분 미만 수준으로 아주 빠른 충전이 가능해집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같은 수도꼭지로 양동이에 물을 받는다 하더라도 수압이 더 센 수도꼭지가 더 빨리 물을 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통상의 400V 시스템을 사용하는 전기차들이 40분을 물려도 80% 근처에도 못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800V 시스템은 실로 획기적인 기술입니다. 이렇게 빠른 충전은 충전설비마다의 회전 속도를 단축해 이용자들에게도 더 쾌적한 충전과 여정 경험을 가능케 해줄 것입니다. 장거리 여정은 차보다 사람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기에, 그 시간을 활용해 사람이 쉬는 동안 전기차도 에너지를 충전하여 다음 여정에서의 에너지를 보탠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이고 편리한 전기차 운용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전기차 주행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자택에 저속 또는 완속 충전 여건을 마련하여 오버나이트 충전을 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나라는 충분히 전기차를 편리하게 운용 가능한 여건입니다. 800V 초급속 충전 대응 가능한 전기차 및 충전 인프라도 자국의 제일 큰 자동차 제조사가 두 팔 걷고 열심히 보급에 힘을 쓰고 있고요. 따라서 우리나라는 전기차 입문하기에 아주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으며, 주행거리에 대해 너무 비현실적인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갖지 않으셔도 좋겠다는 내용으로 글을 마쳐봅니다.


EV라운지 파트너 필진 아방가르드 evloun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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