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 치킨논쟁’…작은 고추는 맵고 작은 치킨은 옳다
1인1닭, 당모치, 치느님, 치멘, 오저치고…. 이렇게나 치킨에 진심인 민족이 있을까요. 치킨 하나에 쏟아지는 수많은 신조어와 수식어.
하지만 그 수식어는 결단코 진실입니다. 당.모.치. 당연히 모든 치킨은 옳기 때문이죠.
야속하게도 그 금액은 날로 치솟고 있지만, 그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또 그와의 저녁 약속을 잡고야 마는데요. 일방적 애정이지만 그는 언제나 뜨겁고 바삭하게, 거기다 촉촉하게 반겨줍니다. 이렇게 치킨은 우리와 함께하죠.
그런데 이런 치킨에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는데요. 여러 방송에서 맛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알린 황교익 씨입니다.
황교익 씨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 육계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작고 그래서 맛이 없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적었는데요. 그러면서 농촌진흥청 발표자료를 첨부, 정부가 인정한 내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국내 닭고기 시장만 1.5kg 위주의 소형 닭 위주로 생산되고 있다며, 작은 닭 생산의 문제점으로 닭고기 생산비의 가중과 경쟁력 약화, 맛없는 닭고기가 생산됨, 닭고기 소비 창출이 어려움 등을 꼽았죠.
양계협회는 바로 반발했습니다. 23일 대한양계협회는 ‘황교익의 치킨 폄훼 내용과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애꿎은데 화풀이한다지만 이건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다”고 분노를 표출했는데요. “치킨 소비를 저해하는 행위를 지속할 경우 우리 닭고기 산업 종사자는 실현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처절하게 복수할 것”이라고 비난했죠.
황교익 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하림 등 육계 계열화 회사가 3kg 닭 논란에 대해 일언반구 하지 않고 있는 까닭은 현재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다. 1.5kg 닭으로 내니까 병아리를 2배나 더 팔아서 이득이고 사료를 20~30% 더 팔아서 이득”이라며 “그렇게 해서 재벌까지 됐는데 아쉬울 것이 없다. 소비자만 봉”이라고 양계협회에 화살을 겨눴죠. 또 “북한의 대남 비방 성명인 줄 알겠다”며 “대한양계협회는 큰 닭이 맛있고 경제적이라는 제 말에 인신공격과 협박을 했다”고 반박했는데요.
쉽게 조용해지지 않을 것 같은 닭싸움. 근데 진짜 작은 치킨은 맛이 없을까요?
우선 해외 닭은 3kg, 한국은 모두 1.5kg으로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축산물등급판정 통계연보상 규격을 보면 12호(1151~1250g)가 20.3%로 가장 많고, 11호(1251~1350g) 18.1%, 13호(1251~1350g) 14.2% 수준인데요. 이는 도체중을 기준입니다. 도체중은 생체에서 두부, 내장, 족 및 가죽 등 부가식 부분을 제외한 무게를 뜻하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12호는 생닭 기준 1.7kg 정도로 추산됩니다.
즉, 황교익 씨가 지적한 1.5kg 닭은 도체중 1kg 안팎으로 10호(951~1050g)에 해당하고 그 비중은 9.1% 정도죠. 규격이 가장 큰 16호(1551~1650g) 이상도 2.5%, 15호(1451~1550g)는 6.2% 수준입니다.
치킨에 사용되는 닭은 업체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10호 닭을 사용하는데요. 업체가 이 크기의 닭을 선호하는 이유는 크면 튀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기 안에서 물이 새어 나와 바삭한 튀김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황교익 씨의 말대로 미국 일반음식점에서는 이보다 좀 더 큰 닭을 사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미국은 한국처럼 치킨 1마리를 기준으로 해서 판매하는 것보다 부분 육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거기다 미국은 가슴살을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 가슴 부위가 큰 닭을 더 많이 사용하죠.
단순히 “작은 건 맛이 없고, 큰 것이 맛있다”로 평가하기보다 선호하는 부위의 차이, 요리법의 차이로 볼 수 있는데요. 특히 한국 치킨 요리는 그저 ‘튀기는 것’에서 멈추지 않죠, 각종 양념과 다양한 조리법으로 ‘색다른 것’을 창조합니다. 치즈, 고추, 파, 양파 등 특유의 향을 강조하며 치킨 맛을 더 끌어올리기 때문에 ‘크기’보단 양념과 튀김의 ‘조화’에 더 비중을 두는데요.
이 ‘조화’에 열광하는 건 한국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가 ‘한국 치킨’에 열광하고 있는데요. 유튜브 채널 ‘영국남자’를 보면, 한국 치킨 맛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영국인들을 수두룩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먹던 치킨은 ‘그저 튀긴 닭’이었을 뿐이라며 한국 치킨에 향한 찬사를 늘어놓죠.
K드라마 속 ‘치맥’은 전 세계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 맛을 탐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새콤한 사각 무절임과 한국식 양념이 거부할 수 없는 맛을 자랑한다’며 극찬하기도 했는데요. 치킨 브랜드 제너시스BBQ가 지난달 5일 글로벌 외식업 전문지 ‘네이션스 레스토랑 뉴스’에서 발표한 ‘미국 내 가장 빠르게 성장한 외식 브랜드 25위’에서 5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그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죠.
황교익 씨는 8월, 떡볶이를 ‘정크푸드’라 말하며 떡볶이를 학교 앞 금지 식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요. 당시에도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깎아내렸다는 비난을 받았었죠.
입맛이란 건 각자의 취향입니다. 누구에겐 모든 스트레스를 타파해줄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기도, 누구에겐 그저 조미료로 떡칠한 살찌는 음식일 수 있죠. 사람은 다르니깐요. 하지만 그 ‘다름’으로 다른 이들을 평가하는 건 많은 비난을 불러옵니다. 그 누군가에겐 치킨도 떡볶이도 언제나 항상 옳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 kk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