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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회장 아닌 의장일까...벤처 창업자들이 '의장' 타이틀을 다는 이유

최근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55) 이사회 의장과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45) 우아한형제들 이사회 의장은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이다.


또 다른 공통점도 있다. 회장이나 대표이사, 혹은 CEO가 아닌, '이사회 의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범수 의장과 김봉진 의장 외에도 최근 미국 증시 상장을 밝힌 국내 1위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의 김범석 의장, 넷마블의 방준혁 의장, 펄어비스의 김대일 의장 등 IT 기업 창업자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대표' 직함 대신 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이투데이

(연합뉴스)

IT 업계,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 맡는 경우 많아…"경영은 대표에"

IT 업계에서는 회사의 '미래'와 '현재'를 의장과 CEO가 각각 맡으며 조직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의장은 회사의 업무 집행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는 이사회의 의장을 의미한다. 이사회 의장은 보통 이사회의 리더로서 경영진이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반면, CEO는 통상적인 경영 활동을 수행하면서 경영진의 최고책임자로서 경영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쉽게 말해,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는 CEO를 이사회 의장으로 대표되는 이사회가 견제하고 감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카카오의 경우,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여민수·조수용 대표가 '공동대표'를 맡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이 이사회 의장이며, 김범준 대표가 대표이사 직함을 달고 있다. 쿠팡도 창업자인 김범석 이사회 의장과 강한승·박대준 2인 각자 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스타트업도 창업자가 대표직을 넘겨주고 이사회 의장직을 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투데이

(뉴시스)

이사회 의장직 맡는 이유는…"전략·방향 등 큰 의사 결정 위해"

IT 기업 창업자들은 왜 유독 '이사회 의장직'을 선호하는 것일까.


업체들은 대부분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보다는 회사의 전략이나 방향과 관련된 큰 의사결정을 위해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말 김범석 전 대표의 이사회 의장 취임 소식을 알리며 "(김범석 전 대표는) 쿠팡주식회사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더욱 큰 시야의 전략 수립과 고객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혁신을 만드는 일에 전념할 계획이다. 회사는 앞으로 한층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역할 분담으로 쿠팡의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CEO인 제프 베이조스도 올해 3분기 안에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밝히면서 '신제품과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베이조스는 "아마존의 CEO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이 부여됨과 동시에 소모적인 일이었다"며 "그러한 책임을 갖게 되면 다른 일에 관심을 두기 어렵다"고 사임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이사회 의장으로서 신제품과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집중하려 한다"며 "의장으로서 앞으로도 아마존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계속 관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니지어 출신인 IT 기업의 창업자가 경영에 익숙하지 않아 CEO에게 이를 맡긴다는 분석도 있다.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인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2013년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을 때 "초기에 회사를 세우고 나서 엔지니어 출신으로 외부와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선배들에게 상담도 했다"며 "그때 선배들에게 너는 너의 장점에 집중하고 부족한 부분은 좋은 인재를 영입해 보완하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는 큰 전략과 방향을 짜고 경영은 김범수 전 NHN 대표(현 카카오 이사회 의장), 최휘영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 대표, 김상헌 대표 등 탁월한 경영진에게 맡긴 것이 지금 봐도 좋은 모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B2C 기업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외부의 비판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있다. 각종 기관의 표적이 되는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막후에서 결정권을 행사하는 이사회 의장이 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네이버 쇼핑·검색 알고리즘 조작 의혹이 불거지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가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해명한 바 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 역시 2019년 과방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불거진 실시간 검색어 조작 논란에 대해 설명했다. 국회는 이해진 네이버 GIO,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게도 국감 출석 요구를 했지만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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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6일(현지시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P뉴시스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있어…"견제 역할 아닌, 사실상 경영 참여"

한편, IT 기업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에 대해선 일부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주주 보호 차원에서 경영진을 감독하고 견제해야 하는 이사회 의장이 사실상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를 이끄는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사실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다른 사람으로 두고 이사회 의장으로 하여금 대표이사를 견제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며 "그런데 지금 IT업계에서 하는 건 이거랑 전혀 관습이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찬 교수는 "미국에서는 CEO를 하다가 이사회 의장을 하면 이사회 의장이 무서워서 CEO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이사회 의장이 너무나도 막강한 대표이사를 견제하는 것이 원래 취지인데, 지금 이사회 의장이 너무 힘이 센 것이다. 사실상 경영의 무게중심은 CEO에 있지 않고 이사회 의장에게 있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투데이/정대한 기자(vishalist@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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