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 소주'가 뭐길래 '오픈런'까지?
"MZ세대 '힙한 상품' 구매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것 감수"
지난달 25일 더현대 서울 지하1층 팝업스토어에서 힙합 아티스트 박재범이 '원소주'를 소개하고 있다. |
가수 '박재범 소주'로 알려진 ‘원소주’가 대박을 터뜨렸다. 원소주를 판매한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는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의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하는 것) 현상까지 벌어졌다. 판매 수량이 한정돼 있고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박재범이 만들었다는 점이 제품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4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5일 현대백화점의 더현대 서울 지하 1층에 오픈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원소주’ 팝업스토어는 전날 마감됐다. 오픈 기간 2만 병의 원소주 물량이 모두 완판됐다.
팝업스토어 가보니…"아침 7시부터 줄섰는데 구매 못해"
실제로 이투데이가 직접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지난달 28일에도 협소한 팝업스토어 공간은 인파로 빼곡했다. 매장 관계자는 줄선 고객들에게 “저희 오늘 구매는 더 이상 안 되고, 입장만 가능한데 그래도 줄 서시겠습니까?”라며 연신 양해를 구했다.
이날 아침 7시에 인천에서 집을 나선 신유민(20)씨도 대기줄을 기다렸지만 결국 구매하지 못했다. 신 씨는 “여의도역과 더현대 지하2층 연결통로에 처음 도착한 7시 40분쯤 앞에 30명 정도 있었다. 그런데 오픈 시간인 10시 30분이 가까워지자 뒤로 200명 가량 줄이 늘어났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이어 “오픈하자마자 (사람들이) 달리고, 새치기하고, 밀고 밟고 장난이 아니었다”라며 “제 앞앞 사람에서 (소주를 구매할 수 있는) 줄이 끊겼다. 아쉽게 구매는 못 하고 칵테일 바(bar)라도 이용하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려서 한 잔을 얻었다”며 손에 든 칵테일 잔을 들어보였다.
이날 팝업스토어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20대가 유독 많았다. 성북구 정릉에서 방문한 이해경(21) 씨는 아침 10시에 도착했지만, 오후 2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이 씨는 “가수 박재범의 오랜 팬으로 그의 레이블을 좋아한다”며 “운영기간이 짧아 이 기회를 놓치면 더는 방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방문 욕구를 자극했다”고 답했다.
차미지 원스피리츠 재무기획매니저는 “첫날 (방문) 예상 인원이 5000명 정도였는데, 첫날에만 1만 병이 넘게 팔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화제성과 높은 인기에 비해 맛은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나왔다. 강동구 고덕동에서 왔다는 진백호(23) 씨는 “기대보다 별로다. 청주와 위스키 언더락을 아주 조금 넣어서 희석한 느낌”이라며 “증류식 소주라 그런지 기존 소주에서 강하게 나는 알코올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가벼운 청주 향만 난다”고 말했다.
팝업스토어 오픈 기간 내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원소주를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했다는 게시물이 잇달아 공유되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제품을 사려고 오전 8시에 방문했는데, 이미 긴 줄이 서있다”, “오늘 구매에 실패해서 내일 또 방문한다” 등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팝업스토어 마지막 날인 3일에도 오전 10시 30분 백화점이 오픈한 직후 구매 예약이 바로 마감됐다.
셀럽이 만든 화제성ㆍ희귀성 더해져 기대 이상 인기
더현대서울 원소주 팝업스토어를 찾은 소비자들이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사진=정회인 기자) |
원소주는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지향한다. 제조 과정에서 100% 국내산 쌀을 사용하고 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감압 증류 방식을 통해 깨끗하고 부드러운 맛을 구현했다. 알코올 도수는 22도, 가격은 1만4900원이다.
소주 가격으로는 비싼데도 원소주가 인기를 누린 배경에는 희소성에 있다. 원소주는 판매 초기 1인당 12병 구매 한도를 정했다. 고객들이 원활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예약제도 시행했다. 그럼에도 원소주 인기가 치솟자 이후에는 구매 한도를 4병으로 제한했다.
젊은층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힙합 아티스트 박재범이 만들었다는 점도 제품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원소주를 만든 원스프리츠는 박재범이 작년 4월에 설립한 양조업체다.
이는 국내 대중 아티스트 가운데 최초의 주류 브랜드 시도이기도 하다. 해외에는 유명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주류 브랜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유명 힙합 아티스트이자 가수 비욘세의 남편 제이지는 샴페인 브랜드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을, 배우 조지 클루니는 2017년부터 데킬라 브랜드 ‘카사미고스(Casamigos)’를 운영 중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는 ‘힙한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려도 괜찮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이런 소비 트렌드가 원소주 팝업스토어 오픈 기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원스프리츠는 이달 말부터 자사몰을 통해 원소주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원스피리츠 차미지 매니저는 “이번 ‘원소주’는 낮은 온도(22도)에서 증류된 감압 방식 소주인데 비해 올해 하반기에 고온(80~95도)에서 증류가 이뤄지는 상압 방식 소주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 소주는 현재 원소주에 비해 더 진하고 묵직한 맛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동안 한국에서는 아티스트가 대표하는 술이 없었기 때문에 소주에 대한 인식이 약했다. 하반기에 출시될 소주가 현재 기획 중에 있으니 지속적인 기대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투데이/한영대 기자 ( yeongda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