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 빨간물약을 커피숍에서?…성공한 CEO들의 격이 다른 '덕질'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사진제공=JTBC) |
빽다방의 신메뉴가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이 메뉴, 비주얼이 심상치 않은데요. 이는 ‘디아블로 IV(Diablo IV, 디아블로 4)’ 출시를 기념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블리자드)가 빽다방과 함께 손잡고 선보인 시즌 한정 메뉴입니다.
7일 블리자드와 더본코리아에 따르면 이날부터 빽다방에서 신메뉴 ‘디아블로 에너지드링크’ 음료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디아블로 에너지드링크는 ‘디아블로4’ 세계관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게임 속 ‘치유 물약’을 모티브로 개발됐습니다. 강렬한 빨간색이 치유 물약을 연상케 할 뿐 아니라, 카페인이 함유돼 피로 해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빽다방과 디아블로, 언뜻 보면 그저 희한한 조합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면 ‘덕질’(팬 활동)의 일환으로 이해되는데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평소 게임 ‘덕후’(한 분야에 푹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줄임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협업도 열혈 게이머 백 대표와 블리자드 간 서로의 팬심으로 성사됐다는 후문이라, 양측은 각각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백 대표 외에도 ‘덕업일치’의 행보를 걷고 있는 경영인들은 많습니다. 덕업일치란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생계를 위해 취미를 포기했던 과거와 달리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덕업일치의 삶도 각광받고 있죠. 덕업일치를 이룬 경영인들과 그 사례들을 살펴봤습니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빽다방과 협업해 선보인 ‘디아블로 에너지드링크’. (사진제공=더본코리아) |
백종원, 게임에서 만난 길드원 채용까지?…게임·음식에 ‘진심’
백 대표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게임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블리자드의 또 다른 인기 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와우)의 열혈 유저임을 꾸준히 드러내왔는데요. 유명한 언데드 흑마법사 플레이어 ‘용개’를 언급하거나 게임을 하다가 아내인 배우 소유진에게 타박받은 일화 등을 공개하면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함께 게임을 하던 유저가 취업을 사유로 게임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백 대표가 그를 직원으로 채용한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인 박규민 더본코리아 대리는 2019년 한 예능에 출연해 게임과는 별개로 회사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슈퍼바이저로 9년째 근속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당시 박 대리는 백 대표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희귀 아이템의 획득 권한을 두고 백 대표가 자신을 구슬린 사실을 폭로해 큰 웃음을 줬습니다.
숱한 예능에서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백 대표는 본업인 요식 사업에도 충실합니다. 최근에는 ‘예산형 구도심 지역 상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산군과 상호협약을 맺고 추진한 예산시장 프로젝트를 통해 시장 리모델링을 계획, 자신의 레시피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판매하는 ‘백종원 가게’를 오픈하면서 시장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프로젝트 시작 후 예산시장 총방문객은 68만 명을 넘어섰고, 재개장(4월 1일) 두 달 만에 48만 명이 방문하면서 소위 ‘대박’이 났죠.
여기에 더본코리아는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더본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2821억7700만 원을 기록했는데요. 이는 전년과 비교해 45% 늘어난 수치입니다. 영업이익도 257억6000만 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습니다. 순이익은 159억6000만 원으로, 모두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죠. 이는 빽다방을 포함한 홍콩반점, 새마을식당, 한신포차, 역전우동, 빽보이피자 등 더본코리아의 25개 가맹점 수가 빠르게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음식과 게임을 향한 백 대표의 ‘덕심’이 자사 프랜차이즈 메뉴 개발에 아이디어를 주고, 역대급 매출로 이어진 겁니다.
정용진(왼쪽) 신세계그룹 부회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출처=뉴시스, 하이브 제공) |
정용진·방시혁·이웅열도 덕업일치 행보…열정은 곧 실적?
‘야빠(야구 광팬)’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야구 사랑도 유명합니다.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사상 ‘가장 적극적인 구단주’로 꼽히는 정 부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는 곧 야구단의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2021년 SK 와이번스를 인수해 KBO리그에 등판한 SSG 랜더스는 지난해 개막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줄곧 1위를 지키는 ‘와이어 투 와이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역사를 썼고,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면서 통합 우승을 완성했습니다.
정 부회장의 야구 사랑은 단순한 팬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야구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프로야구 산업화’에 중점을 두고 있죠. 정 부회장은 “야구장에 가서 우리의 진정성과 우리 기업의 상품성이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했어야 했고,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떠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뛰는지 확실히 알아야만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며 야구장을 자주 찾는 이유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기업의 목표를 설립하고 진행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장 분위기를 직접 체험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공교롭게도 야구장에 오는 팬들과 우리 기업의 고객이 동일했다. 야구장에 찾아 주시는 팬분들이 아침에 스타벅스에 가고, 오후에 이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또 신세계푸드에서 식품을 드신다”며 “그만큼 야구는 유통업과 직접적인 시너지가 난다. 시간을 점유하는 점, 소비자 접점이 크다는 점에서 유통업과 시너지가 발생하는 스포츠는 야구라고 생각했다”고 야구단과 신세계그룹 운영의 교집합을 강조했죠.
그런가 하면 연예업계에도 소문난 덕후가 있습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2005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빅히트)를 설립한 방 의장은 2013년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출범시켰는데요. 해를 거듭할수록 BTS는 활동 영역을 넓혀갔고, 전 세계적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로 거듭났습니다. 빅히트를 전신으로 한 하이브는 국내는 물론 해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입지를 굳히게 됐죠.
‘중소기획사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성공에는 방 의장의 ‘덕심’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이브 소속 그룹 팬들 사이에서 방 의장은 ‘배운 덕후’라는 평을 듣곤 합니다. 평소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아이돌 문화 등에 관심이 많았던 방 의장이기에 아이돌 팬덤이 원하는 콘텐츠를 떡하니 선보일 수 있다는 거죠. 실로 방 의장은 과거 한 토크쇼에 출연해 “순정 만화와 로맨스 영화에 눈물 흘리곤 한다”며 “순정 만화는 나의 삶이다. 자기 전에 무조건 본다. 한 페이지라도 봐야 잠이 들 정도”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각종 콘텐츠 덕질로 습득한 요소들은 소속 그룹에도 녹아들었습니다. ‘화양연화’ 세계관을 통해 BTS 멤버들은 각각 특정한 이야기를 가진 캐릭터로 분했죠. 4월 방 의장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그룹 르세라핌의 앨범 ‘언포기븐’ 트레일러 ‘번 더 브릿지(Burn the Bridge)’도 공개 이후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인 연출로 눈과 귀를 즐겁게 했는데요.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앞으로 나아가라고 / 그 문 뒤에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이 있으니까 / 우리, 저 너머로 같이 가자” 등 트레일러에 깔린 내레이션은 르세라핌 멤버들이 직접 쓴 글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세심한 연출을 발견한 팬들의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재계의 골프 고수로 알려진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자사의 기술을 접목한 골프공 개발에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요. 첨단 신소재로 개발한 골프공 ‘아토맥스’(Attomax)는 세계기록위원회(WRC)로부터 세계 최장 비거리 기록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해 6월 열린 세계 최장 비거리 골프공 아토맥스 WRC 공식기록 인증식에 참석해 “코오롱의 핵심 가치인 ‘원앤온리’(One&Only) 정신으로 처음 시도한 결과물이 세계 최고로 인정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도전으로 세계 신기록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명예회장이 코오롱 공식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이었죠. 이 명예회장은 “앞으로도 골프 관련 행사엔 참석하겠다”고 밝히며 골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 회장. (출처=파타고니아 홈페이지) |
경영인의 덕심, 기업에도 순기능
해외에서도 덕업일치의 사례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암벽 등반 매니아였던 이본 쉬나드는 직접 등반 장비를 만들어 쓰기에 이르렀는데, 이를 사업화한 게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의 시발점이 됐죠.
이본 쉬나드 회장을 포함한 ‘덕후 기업인’들에겐 자신이 즐기던 취미에서 시장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사업으로 연결해 성공을 거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같은 모습은 진정성을 부각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뿐 아니라 소비자들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면서 소통 기회까지 제공하는 순기능으로 작용하죠.
MZ세대를 중심으로 임금 자체보다 가치관, 취향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에서 나아간 ‘워라블‘(work-life blending·일과 삶의 혼합)을 추구하게 된 상황. 덕업일치가 다수의 화두로 떠오른 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 yxxj@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