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 중 눈치 보면서 랩 연습하던 남학생의 현재 모습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환경’이 좋아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그런 게 사실이기도 한데요. 하지만 위인들의 성공 사례나 연예인들의 과거를 보면 불우하거나 시골에서 나고 자라 부단히 노력해서 우뚝 선 케이스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만나 볼 스타 역시 청주의 시골에서 홀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랬던 그는 과연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청주 작은 동네의
미용실 원장 아들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독보적 존재감을 뽐내며 이슈가 된 ‘원슈타인’을 기억하시나요? 이국적인 생김새와 달리 그는 1995년 충북 청원군 북일면에서 태어난 본 투 비 한국인입니다. 본명은 ‘정지원’이죠. 어머니와 여동생이랑 살던 그는 미용실 일을 하는 어머니 때문에 친척 집에 맡겨질 때가 많았는데요.
그는 친척 집에서 많은 노래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케이윌의 노래 ‘1초에 한 방울’이란 노래의 MR을 다운로드하고 가사를 쓰며 음악 활동까지 하게 됐죠. 이처럼 음악은 놀 거리가 없고 시간이 많던 그에게 위안을 건네는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래퍼가 되기 위해
서울로 상경
청주공고로 진학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홀로 ‘혼자 지*이야’라는 곡을 녹음하고 친구들에게 들려줬는데요.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천재가 아니냐”는 호평을 보였죠. 이에 자신감을 얻은 원슈타인은 더 넓은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이때 그는 중학교 때 감명 깊게 봤던 영화 ‘프랑켄슈타인’에 자신의 이름 정지원 중 ‘원’을 붙여 ‘원슈타인’이라는 랩 네임을 짓게 됐습니다. 게다가 미용실 원장인 어머니가 직접 해준 펌까지 갖춰 완전히 개성적인 래퍼로 거듭났죠. 하지만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의점 알바 등을 하며 랩 연습을 해나갔지만 ‘이 넓은 서울에 시골에서 올라온 내가 낄 곳이 있을까’하는 두려움과 고민에 휩싸인 채 지냈죠.
매드클라운이 내민
구원의 손길
우울 속에서도 원슈타인은 끝까지 힘을 냈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쇼미더머니에 끊임없이 지원했죠. 하지만 쇼미더머니4, 쇼미더머니777, 쇼미더머니8 무려 세 시즌에 출연한 것에 반해 그는 모두 1차 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항상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급하게 출연하고 다른 참가자들의 눈치만 보다 보니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이죠.
다시 청주로 돌아간 그는 힙합 뮤지션들과의 교류도 없이 홀로 음악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이랬던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래퍼 매드클라운인데요. 매드클라운은 원슈타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자신의 레이블에 영입하기 위해 벤츠를 끌어 그가 살고 있는 청주의 마을까지 찾아갔죠. 이때 원슈타인은 ‘내가 뭐라고 찾아오셨을까’하는 신기함과 뿌듯함에 그의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쇼미더머니9 합격 후
‘싱잉랩’ 탑클래스 등극
레이블의 지원으로 다시 용기를 얻은 원슈타인은 쇼미더머니9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진가를 발휘했죠. 그는 1차 예선에서부터 주목을 받고 ‘우승후보’라는 평까지 받으며 합격했습니다. 비록 최종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좋은 발성과 비음이 섞인 듯한 특색 있는 음색, R&B와 힙합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싱잉랩(Singing Rap)’ 스타일을 선보인 그는 쇼미더머니9의 최대 수혜자라는 수식어를 달게 됐습니다.
쇼미더머니에서 유명세를 얻고 예능까지 진출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힌 원슈타인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힘들었던 일들을 벗어내고 이겨내는 과정을 음악에 담으며 현재나 미래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음악을 들었을 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밝혔죠.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앞으로도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