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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by 연예톡톡

정우성이랑 알바 동기였던 ‘일명 압구정 여신’의 최근자 근황

여러분의 노래방 18번 곡은 무엇인가요? 수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18번 곡 역시 다양할 것입니다. 하지만 1996년에 탄생한 ‘뮤지컬’이라는 곡을 즐겨 부르는 분들이 한 명 즈음 꼭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노래의 주인공은 돌연 은퇴하여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가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압구정에서 여신으로

통하던 과거


“내 삶을 그냥 내 버려둬~ 더 이상 간섭하지 마~” 제목은 모르더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알 수 있는 이 노래는 임상아의 ‘뮤지컬’이라는 곡입니다. 발매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꼽히고 있죠. 이 곡을 뛰어나게 소화해낸 임상아는 데뷔 전부터 유명했던 본 투 비 스타였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데뷔 전 임상아는 압구정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요. 그녀는 그곳에서 유명한 알바생이었습니다. 직원부터 손님까지 임상아를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여신으로 통하는 원조 얼짱이었죠. 놀라운 것은 배우 지망생이었던 정우성과 구본승도 그녀와 함께 알바를 하는 동료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그 카페는 연예계 관련 종사자들 유동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임상아는 자연스레 기획사 매니저들을 접하게 됐습니다. 많은 매니저들이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냈는데요. 인기 그룹 소방차 멤버들을 캐스팅했던 스타 발굴 전문 매니저 역시 임상아에게 ‘잼’이라는 그룹으로 바로 데뷔하자고 제안했죠. 이에 임상아는 “내 춤을 본 적도 없으면서 뭘 믿고 캐스팅하는 건지 모르겠다”라며 거절 의사를 밝혔습니다.


성공한 연예인

돌연 미국으로 은퇴


임상아는 1994년 화장품 광고 출연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드라마 <야망의 불꽃>, <형제의 강>,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통해 활발한 연기자 활동을 했는데요. 2년 뒤 그녀는 가수까지 도전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노래가 바로 주영훈이 작곡한 ‘뮤지컬’이데요. 임상아는 시원시원한 목소리와 파워풀한 성량으로 뮤지컬을 부르며 무대를 장악했죠. 이와 같은 영향력으로 그녀는 가요톱텐 1위를 차지하며 가요계까지 점령하게 됐습니다.


90년대에는 배우와 가수를 겸업하는 게 흔치 않았기 때문에 임상아는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뉴욕으로 떠났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은퇴에 대해 “일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이미지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답답했다.”라며 이유를 털어놓았습니다.


은퇴 후 임상아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뉴욕대 필름 프로덕션 과정을 밟았지만 꿈을 쉽게 이룰 순 없었습니다. 다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던 것인데요. 이런저런 시도와 고민 끝에 그녀는 디자이너가 되고자 미국 유명 디자인 학교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최종 입학했습니다. 한국에선 톱 가수 임상아였지만 뉴욕에선 유명 잡지사 VOGUE의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를 하며 밑바닥부터 시작했죠.


성공한 CEO

리한나, 비욘세가 단골


어시스턴트에서 정식 스타일리스트가 되어 경력을 쌓은 임상아는 2006년에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건 가방 브랜드 SANG A BAG을 론칭했는데요. 타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가방 제작 과정에 발생하는 장인들과의 갈등으로 공장 입장 거부까지 당하는 고생을 겪었죠.


고생 끝에 탄생한 상아백은 고급 가방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습니다. 에르메스 가죽 공방에서 발견한 악어 꼬리 원단 샘플에 아이디어를 얻어 활용하면서 상위 1% 최고급 악어백으로 자리 잡게 됐죠. 브룩 쉴즈, 비욘세, 앤 해서웨이, 리한나 등 미국의 대스타들은 물론 송혜교, 신은경, 삼성 이서현까지 상아백을 이용하면서 브랜드는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 임상아는 2008년 ‘보그에서 주목해야 할 신예 디자이너’로 선정됐습니다. 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 자신의 매장을 오픈했죠. 국내에서는 패션 디자인 펀드상까지 수상하며 연예인 임상아가 아닌 디자이너 임상아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유대인 남편과 이혼

극복하고 전진 중


임상아는 뉴욕 생활 중 재즈 기타리스트 제이미 프롭과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임상아는 불교였고 남편은 유대인이었지만 그녀는 개종을 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줬는데요. 재력가인 남편 또한 자신의 능력을 보태서 임상아의 꿈을 적극 지원해 주며 남다른 사랑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부부는 딸 올리비아를 낳으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죠.


하지만 유대인 남편과 임상아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문화와 종교에서 오는 간극으로 인해 부부는 결국 결혼 10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죠. 현재 임상아는 홀로 올리비아를 양육하고 사업까지 묵묵히 하며 싱글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이혼 후 힘들 법 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해 미안했다. 항상 내게 모든 걸 맞춰줬던 그에게 고맙다”라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녀는 최근 국내 모델 대표 기획사 에스팀과도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에스팀 전단 디자이너와 멘토로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바로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IT를 접목시킨 전략적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아이디어 넘치는 민족은 없다”며 끊임없이 아이디어와 결과물을 탄생 시키려는 그녀의 카리스마는 앞으로도 더 넓은 시장에서 빛을 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2021.03.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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