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도열차가 멈춘 순간에도 우리는 흔들리고 있다
1953년 증기기관차의 타임슬립 미스터리
열차에 실린 유일한 생존자의 메시지
문서 작업을 하다 보면 실수로 엑스 버튼을 누를 때가 있다. 아차 싶은 순간보다도 빠르게 당신은 문서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컴퓨터는 한 번의 기회를 주며 의사를 되묻는다. “정말 종료하시겠습니까?” 예 또는 아니오를 누르며 나는 종종 생각했다. 인생에도 팝업창이 뜬다면 과연 나는 취소 버튼을 눌렀을까.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다보면 ‘그때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현재 상태를 저장하시겠습니까?”에 아니오를 누르고 다시 처음의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 말이다.
과거로부터 온 열차
‘환도열차’는 미래로의 널뛰기를 하는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53년도에 부산에서 출발한 환도열차가 2014년 서울에 도착한다는 설정이다. 열차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로 발견되지만 지순은 그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전쟁 때문에 남편을 두고 피난을 가야 했던 지순은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서울로 남편을 다시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60년의 간극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순을 계기로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인물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팝업창을 띄운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갈 것인가? 현재의 모든 것을 버릴 것인가? 현재에 맞서서 살아갈 것인가?
죽으려고 살았어요. 살려고 죽었어요.
소리도 내지 않고 울음을 쏟는 가냘픈 지순에게 2014년은 너무 혼란스럽다. 지순이 현재를 이해할 하나의 실마리는 바로 “먹고 사는 문제”다.
전쟁 통에 그녀는 오로지 먹고 살고자 했다. 그때는 모두가 그랬다며 부산에 내려가 군인들의 잔반통에서 건진 꿀꿀이죽을 만들어 팔던 일을 순박하게 말한다. 2014년에 와보니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살고자 했다. 다만,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느냐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지순이 그토록 찾던 남편 양덕 또한 60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먹고자, 살고자, 하고 있었다.
평범한 일꾼이었던 최양덕은 전쟁중에 사망한 전당포 사장 한상해의 허울을 주워 한상해로 살아간다. 그리고 최양덕이 물질에 대한 더 큰 욕망을 움켜잡을 때마다 그의 손엔 피비린내가 남았다.
지순과 양덕 |
제이슨양과 그의 동료 토미 |
관점과 사실
극에는 다양한 관점들이 등장한다. 과거의 관점(지순), 2014년의 관점(NASA 조사관 제이슨양)과 같은 시간적 요소 뿐만 아니라 장우재 연출의 영화적 감각이 돋보이는 공감각적 시각들도 눈에 띈다. 관객석을 기준으로 중앙무대, 2층 복도, 3층 복도, 무대 뒷편과 무대 지반의 움직임까지 극의 전개 내내 눈을 두어야 할 곳이 많다. 한국 정부측의 조사관1은 줄곧 2층 복도에서 제이슨양과 지순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는 관객들보다도 높은 시선이고 무대 중심과는 더욱 멀다. 그러한 시선의 구도는 감시와 검열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건드린다.
이러한 관점의 존재감은 대사 중에도 등장한다. 지순의 사당패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사당패 부부가 언 강을 건너다가 부인이 그만 물에 빠져버리는데 남편은 어쩔 줄을 몰라 그 옆에서 발만 동동 구른다. 강 건너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도와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사당패가 언 강 한가운데서 논다며 웃는다. 지순의 눈에 2014년의 사람들은 언 강 건너편의 웃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소름 끼치는 상황을 두고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삶과 선택
“역겨움을 견디는 게 두려움을 견디는 것보다 쉬웠겠지.”
극중 후반부에 이르러 제이슨양이 조사관1과 갈등하다가 그에게 내뱉는다. 방관에 대한 뼈 있는 말이다. 저 대사가 특히 가슴에 꽂혔던 건 소시민적인 우리의 모습과 조사관1이 닮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떻게’ 살고자 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다.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지순, 욕망의 노예가 된 양덕, 적당히 방관하는 조사관1, 그리고 절뚝이는 한 발만을 현실에 걸친 제이슨양은 모두 우리네 모습이었다.
달리는 열차 밖의 풍경들이 뒷걸음치듯이 지순은 자신을 미래로 데려다 놓은 열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혹은 지순은 질문 그 자체였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기로 한 제이슨 양의 변화가 지순이라는 팝업창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현실을 사는 우리들에겐 인생의 팝업창이란 없다. 취소 버튼을 누르고 사건의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끊임없이 놓여있는 순간의 선택들도 곧 삶의 무게가 된다. 결코 가볍지 않을 순간들에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아직도 2014년 4월에 머물러 있는 풀리지 않는 질문은 어떤 팝업창을 띄우고 있는가. 우리는 어쩌면 보기에 넣을 선택지 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글 계란비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