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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부처 머무시는 다섯 봉우리, 오대산

5만 부처님이 머무는 산

연꽃 모양으로 뻗어 오른 오대산 다섯 봉우리

산에 사는 이에게도, 지나는 이에게도 쉼터가 되는 산


고도가 한껏 높아진 평창군으로 들어서자 날씨가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맑았다가 다시 흐렸다가,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못 내린 듯하다. 근 두 달째 이어진 장마, 그렇게 심술을 부리고도 여전히 미련이 남았는가. 진부나들목을 빠져나와 상원사로 가는 내내 그야말로 번뇌 가득한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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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부처가 머문다는 오대산으로 향하는 길이다. 적멸보궁을 거쳐 비로봉에 오르기까지 날씨도 내 마음도 번뇌를 마치고 적멸(寂滅)에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을까. 그 숱한 번뇌가 끝이 어디일까마는 삿된 마음 하나는 버릴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5만 부처님이 머무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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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五臺山)이란 이름은 산 전체가 거대한 사찰이라 여긴 자장율사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난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사리를 모시고 귀국해 적멸보궁에 봉안하고 월정사와 상원사를 세웠는데, 오대산을 이루는 다섯 봉우리에 각기 1만의 부처가 상주한다는 큰 뜻도 있다. 자장율사가 열반하고 난 이후에는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와 효명태자가 다섯 봉우리 사이마다 암자를 세워 5만 불보살에 공양을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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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진신 사리를 모신 중대 사자암의 적멸보궁을 중심으로 동쪽 동대산(동대 관음암)에는 관음보살이, 서쪽 호령봉(서대 수정암)에는 아미타여래가, 남쪽 기린산(남대 지장암)에는 지장보살이, 그리고 북쪽 상왕봉(북대 미륵암)에는 미륵보살이 계신다. 산 전체를 아우르며 부처의 가피력이 가득하다는 믿음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변하지 않아 유난히 기도하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연꽃 모양으로 뻗어 오른 오대산 다섯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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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다섯 봉우리 사이마다 위치한 사찰과 암자들은 마치 연꽃잎처럼 뻗어 올라간 봉우리에 감싸이듯 들어서 있다. 비슷한 고도를 가진 다섯 봉우리가 연꽃 봉오리가 이제 막 잎을 벌려 피어난 모양을 닮아 있는 것이다. 가장 높다는 비로봉만 해도 해발 1,563m이다. 해발 1,300m만 넘어도 높은 산에 속하는데 봉우리 모양은 소담하다. 어느 한 곳 모나지 않고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바람이 타고 내린다. 계곡은 험하지 않고 온순한 모양새로, 맑은 물이 골짜기를 흘러 오대천 계곡에 흐른다. 청명하고 깨끗한 산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아닌 게 아니라 오대산은 예로부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 시대 학자 성현은 에서 오대산 서대 수정암에 있는 우통수의 물맛을 충주 달천수, 속리산 삼파수와 함께 조선 3대 명수로 꼽는다고 기록했다. 를 비롯한 많은 문헌에서도 이 우통수를 한강의 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1918년 조선총독부 실측 이후 태백시 금대산 자락에 있는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가 되었지만, 계곡을 흐르는 물을 보고 있자니 왜 이곳에서 한강이 시작되었다 했는지 이해된다. 맑은 물 그대로 흘러 흘러 한반도 중심에 흐르기를 바라는 마음 아니었을까.

산에 사는 이에게도, 지나는 이에게도 쉼터가 되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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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등산로는 상원사를 출발점으로 해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에 오른 후, 상왕봉과 북대 미륵암을 거쳐 임도를 따라 하산하는 코스다. 계단식 5층 구조로 지은 중대 사자암의 다섯 지붕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솟아오른 오대산 다섯 봉우리를 의미하는데 마당에 서서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오대산 줄기가 깊고 온화하다. 속세에서 다투었던 모든 것이 화해하고 공존하는 듯한 산줄기를 보며 마음도 후덕하고 둥글둥글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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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적멸보궁을 향하는 돌계단을 오른다. 적멸보궁을 보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아 길도 평탄하게 잘 깔렸다. 적멸보궁 들어서기 직전에 용안수로 마른 입을 적시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겁도 없이 다가온다. 하긴 적멸보궁 가는 길에 누가 해치겠는가.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축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까지 모두 다섯 군데에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에는 부처상이 없다. 부처상이라도 만날 요량으로 찾아왔다가는 붉은 방석만 보고 가야 한다. 하지만 실망은 이르다. 수미단에 놓인 붉은 방석은 부처님 앉아계심을 상징하고, 자장율사가 묻었다는 정골 사리도 적멸보궁 뒷편 언덕 어딘가에 묻혀 있다. 매일 아침 올라와 종일 기도하고 저녁이 되어야 산에서 내려가는 불자들도 화엄 가득한 산이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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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을 향해 오르면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1.5km 등산로를 부지런히 걷다 보면 하늘이 열리고 비로봉이 나타난다. 평평한 비로봉 위에서는 날만 맑다면 백두대간 능선도 볼 수 있다. 대관령부터 오대산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험하지 않아 대간을 걷는 사람에게는 휴식 같은 길이다. 온화한 성품 그대로 산에 사는 이들에게도, 산을 지나가는 이들에게도 쉼터가 된다.


비로봉에서도 잔뜩 흐린 통에 상왕봉을 거쳐 북대 미륵암으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해 왔던 길로 내려와 상원사와 월정사까지 쉬엄쉬엄 둘러보았다. 흙먼지를 털고 월정사 적광전에서 삼배를 드리고 나오니 그제야 하늘이 갠다. 드디어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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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길잡이]


백두대간 중심에 솟아있는 오대산은 부드러운 능선을 가진 전형적인 흙산이다. 오대산 국립공원 내에 월정사, 상원사, 적멸보궁, 밀브릿지약수 등 많은 사찰과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비포장도로로 승용차 기준 20분이 소요되며,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을 지나 비로봉에 올라서는 데에는 2시간 30분이 걸린다. 비로봉에서 상왕산, 북대 미륵암을 거쳐 임도로 하산할 경우 총 산행시간은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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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트립 in 김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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