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형 레인지로버 스포츠 럭셔리 SUV 끝판왕
시승기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시리즈는 2000년 이후 럭셔리 SUV 시장을 독점해왔다. 3년 전 마세라티 르반떼에 이어 지난해 람보르기니 우루스가 가세하기 전까지 1억원대 중반 대형 SUV 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차량 가격이 비싼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지만 브랜드 스토리에 럭셔리의 품격을 담고 있어서다. 영국에서 시작된 랜드로버 브랜드는 과거 튼튼한 차체와 험로 주파 능력으로 사냥을 즐기던 당시 귀족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고급 브랜드 레인지로버를 출시했고 이제는 체급별로 모든 라인업을 갖추며 지금의 SUV 전문 브랜드로 거듭났다.
럭셔리 SUV 끝판왕으로 불리는 레인지로버 시리즈의 두 번째 형님 격인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시승했다. 명성 만큼 럭셔리한지 살펴봤다.
미래를 엿보는 레인지로버 스포츠 인테리어
레인지로버 스포츠 실내는 한 마디로 미래 지향적이다. 첨단 장비를 접목 시키며 럭셔리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듀얼 모니터를 벨라에서 처음 선보인 이후 레인지로버 스포츠에도 적용했다. 실내에 복잡했던 모든 공조 시스템 다이얼을 없애고 두 개의 터치스크린으로 모든 버튼을 대신하는 방식이다. 사용법은 첨단 기술답게 꽤나 특이하고 불편(?)하다. 모든 기술의 얼리어답터가 치러야 하는 사서하는 고생이라고 할까.
탑승하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모니터 덕에 미래에서 온 스마트카를 탄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진다. 이 차량이 테슬라가 아닌 전통 오프로더를 만들어내던 브랜드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시대를 앞서가는 트랜드 세터의 느낌이 확 다가온다.
먼저 듀얼 모니터의 역할을 알아보자. 위쪽에 위치한 모니터를 이용해서는 내비게이션과 각종 차량 설정을 할 수 있다. 아래쪽 모니터는 주행모드와 공조와 관련된 온도, 시트설정이 가능하다. 터치감은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썩 만족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초기 스마트 폰의 화면을 넘기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시스템 터치 인식 및 구동, 처리속도가 조금은 느린 편이다. 빠릿한 요즘 스마트 폰에 익숙해진 사용자라면 신경이 쓰이겠다. 크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단점도 있다. 첫 번째 설정을 할 때에 일일이 메뉴버튼을 누르고 세부설정을 해야 한다. 직관성은 꽤 떨어진다. 처음 사용할 때는 마치 다른 사람의 휴대폰을 만지는 듯 낯이 설다. 특히 어느 페이지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당황스럽다. 또 화려한 장점 뒤에 잔 고장이 나면 모든 기능이 마비된다. 시승차는 1000km도 주행하지 않은 신차라 문제가 없다. 하지만 모니터 터치가 고장이 나면 달리는 것 이외에는 어떤 조작도 불가능하다. 한 겨울 시동을 걸고 모니터를 터치했는데 작동이 안 된다면... 냉방에서 달리는 수 밖에 없다. 레인지로버 오너 가운데 이런 불만을 털어 놓는 경우가 여럿이다. 내구성은 좀 더 지켜봐야할 듯 하다. 스마트 폰도 2년 정도 사용하면 기능이 확 떨어진다. 물론 스마트폰처럼 매 시간 만지작거리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지문이 남아 수시로 닦아주지 않으면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아쉽다.
3.0 디젤엔진, 놀라운 정숙성과 강력한 토크
스티어링 휠을 잡기 전까지 시동을 건 상태에서 디젤 차량인지 가솔린인지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숙성과 진동 억제가 우수했다. 가속 패달을 밟고 운전대를 잡아야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운전자를 제외하고 동승객은 이를 눈치 못 챌 정도로 떨림과 소음 방지에서는 우수했다.
주행질감은 아스팔트 위를 매끈하게 달린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스포츠 모델답게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세팅돼 있어 안정감이 느껴진다. 방지턱을 넘을 때도 출렁거림 대신 상당히 딱딱하다. 2톤이 넘는 거구 치고는 제법 빠른 제로백(7.3초) 성능을 보여준다. 고속에서도 불안한 감은 전혀 없다. 속도를 꽤 내도 단단한 차체가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는 느낌이다. 차체가 큰데다 문짝도 두꺼워 믿음이 간다. 가솔린 엔진의 폭발적인 힘은 없지만 디젤 특유의 토크가 엑셀을 끝까지 밟아도 차를 계속 밀어준다. 3.0 V6 엔진은 최대 306마력, 토크는 무려71.4kg.m에 달한다.
크기에 비해 아쉬운 실내공간, 폭 좁은 트렁크
먼저 길이는 4879mm로 현대차 팰리세이드(4980mm)와 비교하면 약 100mm 정도 더 짧다. 다음으로 실내 공간을 좌우할 휠베이스는 2923mm 로 팰리세이드(2900mm)보다 약간 길다. 문제는 뒷좌석 레그룸이 현저히 좁다는 점이다. 패키지 설계의 문제다. 3열까지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팰리세이드의 패키지와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두꺼운 시트와 뒤로 갈수록 차체가 낮아지는 쿠페형 디자인의 멋을 살리다보니 이런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휠베이스는 레인지로버와 같지만 길이가 100mm 정도 짧다. 트렁크가 더 작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트렁크는 제원상 752리터까지 채울 수 있지만 무엇보다 폭이 좁아 골프백을 가로로 실을 수 없다. 비슴듬하게 눕혀 2개가 최대다. 3개를 실으려면 뒷좌석 의자를 접어 차곡차곡 포개야 한다. 차량의 크기를 감안하면 실용성에선 점수를 따기 어려운 부분이다.
럭셔리 SUV 느끼게 해주는 탁월한 요소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럭셔리 SUV를 지향한다. 값비싼 차량임에도 제 값을 하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다. 첫 번째로 엄청난 두께의 중후한 도어다.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도어 두께만으로도 얼마나 안전할지 믿음이 간다. 팰리세이드의 '텅' 소리나는 강판과는 수준이 다르다. 도어를 여닫을 때마다 느껴지는 둔탁한 느낌이 기분을 좋게 한다. 설령 사고가 나도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만 같다.
두 번째는 고급 소파에 앉은 듯한 편안한 좌석이다. 고급 가죽을 사용해 피부에 닿는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브라운 톤 색상 역시 실내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해준다. 또 천장부분에 사용된 스웨이드 재질의 인조가죽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질감 좋은 가죽으로 마감해 만족감을 높였다.
소소한 배려도 눈길을 끈다. 차 폭이 넓다보니 센터터널과 운전자 사이에 생긴 거리를 고려해 팔걸이를 추가적으로 달았다. 조수석에도 장착해 탑승객까지 배려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에 좀 더 편안한 자세가 나온다. 또한 트렁크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버튼도 마련했다. 높게 올라가는 트렁크 입구 탓에 물건을 실고 내릴 때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배려다. 차체 높이를 최대한으로 낮추면 보다 편안하게 물건을 넣고 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들어 고급차들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시퀀스 방향지시등이다. 이는 테일 램프와 헤드라이트의 지시등이 물 흐르듯 깜빡인다. 각각의 형상에 잘 어우러지게 배치해 고급스러움을 더한다. 이러한 소소한 배려가 럭셔리 브랜드의 매력이다.
최근 레인지로버가 추구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기존에 없던 각종 첨단 장비를 새롭게 적용하면서 자신만의 트렌드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어려운 법!
차량에 적용된 각종 첨단 장비가 간혹 말을 듣지 않거나 그 기능에 쉽게 적응하지 못할 경우 소비자들은 역정을 낸다.전자장비의 태생적인 단점일 수도 있는 잔 고장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빠르게 발전하는 IT 전자장비를 자동차에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게 쉽지 않지만 레인지로버는 이런 험한 길을 가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게 럭셔리 브랜드의 숙명이다. 랜드로버의 도착지가 새로운 길을 찾아낸 개척자가 될지, 소비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줘 U턴을 할지 시간이 조금 더 흘러봐야 한다.
한줄평
장점- 디젤 엔진을 모를 정도로 조용한 실내,2톤이 넘는 거구의 날렵한 몸놀림
단점- 익숙하지 않은 인터페이스. 차량 크기에 비해 좁은 실내와 트렁크 공간
이데일리 오토in 카가이 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