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이모' 말고, '랜선 이모' 로 통하는 사회
1인 가구 시대 '현실' 관계 말고 '랜선' 관계 맺는 사람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존재 '랜선' 관계
현대인에게 감정적으로 도움이 되는 존재
(사진=유튜브 '띠예' 캡쳐) |
“애기야ㅠㅠㅠㅠ너무 귀여워..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바다포도 옴?? 먹는 거 진짜 너무 귀엽다. 혹시나 애기라고 말하는 게 싫으면 미리 사과할게ㅠㅠ 자막도 너무 귀엽고 귀 아플까봐 미리 말해주는 예쁜 마음씨 잘 봤어!! 너는 행복한 길만 걸어라”
“귀여운 것도 넘 귀엽지만 바다포도 너무 맛있게 먹는다ㅠㅠ 오물오물 ?? 말랑말랑한게 넘 사랑스러워.. 예쁜 것만 보고 들었으면 좋겠다. 이모가 응원해요!!”
최근 구독자수가 70만명이 넘은 인기 초등학생 유튜버 띠예의 동영상에 달린 답글이다. 마치 아는 사람이 답글을 단 것처럼 사랑과 관심이 넘치지만 이들은 남이다. 이처럼 남의 아이와 인터넷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고 자신을 ‘랜선 이모’, ‘랜선 삼촌’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는 ‘랜선' 관계는 현대인에게 감정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랜선’ 관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현실 관계를 도외시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1인 가구수는 5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8.6%를 차지한다. ‘나 혼자 사는’ 시대의 사람들은 현실 관계 대신 ‘랜선' 관계를 만들고 있다. ‘랜선’이란 랜(LAN)선, '인터넷망 등으로 연결된' 이라는 의미다. 방송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알게 된 남과 일종의 ‘현실' 관계와 같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랜선 이모’, ‘랜선 삼촌’, ‘랜선 언니’, ‘랜선 집사’ 등과 같이 사용된다.
(사진=슈퍼맨이 돌아왔다 비하인드컷 윌리엄) |
‘랜선 이모/삼촌’은 2013년 이후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 어디가’ 등에 등장했던 아이들이 인기를 끌면서부터 등장했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치 자신의 조카인 것처럼 아이들을 예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발해지면서 ‘랜선 이모/삼촌’들은 더욱 쉽게 귀여운 아이들이 담긴 사진 혹은 동영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의 인기를 보여주듯 카카오톡에 '고독한 윌리엄'과 같은 카톡방도 등장했다. 이 카톡방에는 약 1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고독한 윌리엄' 방에서는 윌리엄과 관련된 사진과 동영상만을 공유한다. 이정민(26·여) 씨는 "귀여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며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고 있는 윌리엄을 배경사진으로 해놓은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이러한 '랜선이모/삼촌' 열풍에 대해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랜선 이모’ 등과 같은 용어가 등장한 것 같다”며 ‘랜선 이모’ 등장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용자가 쉽게 접근 가능하고, 본인의 요구에 잘 부합된다고 하면 흔쾌히 좋아하고 즉각적으로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이런(‘랜선 이모/삼촌’)과 같은 현상을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랜선이모'를 자처한 박소영(여. 24) 씨는 "방송이나 SNS로는 아이들의 예쁘고 귀여운 모습만 볼 수 있어서 좋다"며 "아이를 직접 낳기는 두려운데 방송이나 SNS 상의 아이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한다"고 말했다.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랜선'을 통해 관계 맺기에 바쁜 현상에 대해 임 교수는 “인터넷상의 관계는 나의 욕구를 즉각적으로 채워줄 수 있다. 기존의 매체와는 다르게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며 “사실상 ‘현실’ 관계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랜선’에 의존한 관계가 ‘현실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임 교수는 “사실상 ‘랜선’을 통한 관계는 영구적이지 않을 거라는 의구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랜선’을 통한 관계가 현대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하나의 관계가 영구적이지 않더라도 또 다른 ‘랜선’ 관계를 맺으면 되기 때문”이라 말했다. “마치 예전에도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 더욱 편한 관계였던 것”처럼 “‘랜선’ 관계는 늘 내 옆에 있는 존재와 같은, 마치 0촌과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랜선’을 통한 관계에만 집중해 현실의 관계에 소홀히 하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