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하면 겁쟁이 프레임’ 황교안의 종로 딜레마
정치탐구생활
1년 전 보수세력 희망에서 차기 3위로 추락
4월 총선 출마지역 놓고 설왕설래 만발
‘이낙연과 빅매치’ 종로출마 정면돌파 관심
수도권 험지 출마·비례대표 후순위도 대안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총선 필승 자유한국당 광역ㆍ기초의원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중략∼ 미아리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을지로 길모퉁이에 나는 서있네.”(가수 설운도의 히트곡 ‘나침반’ 가사 中)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처지가 ‘대략난감’이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보수세력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마저 밀리며 차기 지지율 3위를 기록했다. 특히 4월 총선 출마지역 선택은 최대 난제다. ‘정치인 개인 황교안’이 아니라 ‘제1야당 한국당 대표’라는 점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다. 차기 라이벌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 출마를 사실상 확정 짓고 밑바닥 표심 공략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황 대표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우선 ‘반(反)문재인 연합전선’ 구축을 위한 중도·보수 통합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중진들에 대한 험지 출마 요청에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공개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이다. 정치적 승부수는 ‘서울 종로’ 출마다. 다만 종로 출마 카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종로, 명동, 청량리, 을지로, 미아리, 영등포 등 서울 지명 6곳이 나오는 가수 설운도 히트곡 ‘나침반’ 가사와 비슷하다. 정치적 대의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당선 가능한 험지 찾기가 무엇보다 절실해졌다.
정답은 ‘종로 출마’인데 위험부담이 너무 큰 선택
황 대표의 고민과 달리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황 대표는 이 전 총리와 더불어 여야를 대표하는 차기 1순위 주자다. ‘서울 종로’만큼의 상징성을 갖춘 지역은 찾기 힘들다. 서울 종로지역 현역이었던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낙연 vs 황교안의 빅매치’ 구도는 국민적 이목을 끄는 21대 총선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만큼 ‘종로 출마’라는 정면돌파를 선택하면 깔끔하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공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과 국민의 기대 역시 두 사람의 종로 빅매치였다. 특히 청와대가 위치한 서울 종로는 정치 1번지로 불린다. 역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한 여야의 정치적 거물들을 언론이 집중 조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윤보선·이명박·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들도 종로 지역구 의원을 지냈을 만큼 상징적인 곳이다.
문제는 황 대표의 종로 출마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다. 우선 당선 가능성이다. 물론 승리하면 최상이다. 정권교체를 주도할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보다 확고히 다질 수 있다. 다만 종로승리를 위해 올인할 경우 전국적인 지원유세에는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선거 패배는 악몽이다. 원내 진입 실패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대패할 경우 차기 대권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종로는 과거 한국당이 16대·17대·18대 총선에서 수성에 성공한 곳이지만 최근에는 기류가 바뀌었다. 정세균 전 총리가 19대·20대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출마한다 해도 승리를 담보하기 힘든 지역이 됐다는 점도 변수다. 이밖에 ‘이낙연 vs 황교안’ 종로 빅매치에 쏟아질 지나친 관심은 한국당이 강조한 정권심판론을 약화시키면서 총선 구도를 차기 대선 전초전 양상으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한국당으로서는 득될 게 없는 총선 구도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황교안 선택에 쏠린 눈
황 대표가 종로가 아닌 다른 지역을 선택할 경우 상황은 매우 복잡해진다. 전략적으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수도 있다. 다만 ‘도망자’ 또는 ‘겁쟁이’ 프레임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이낙연 전 총리와의 대결이 두려워 서울 종로를 피했다는 꼬리표다. 황 대표 본인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정치입문 이후 약 1년 동안 대정부 장외투쟁 주도는 물론 삭발과 단식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가면서 구축해왔던 문재인 대통령 대항마로서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망가진다. 여권은 장고에 접어든 황 대표를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김민석·신경민(서울 영등포을) 황희(서울 양천갑) 정춘숙(경기 용인병) 전현회(서울 강남을) 권혁기(서울 용산) 등 민주당 소속 출마 예정자들이 종로가 아니라면 본인의 지역구에 출마해달라는 다소 민망한(?) 읍소를 쏟아내고 있다.
만약 종로를 피한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종로에 버금가는 상징성을 갖춘 험지를 선택하거나 비례대표 후순위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다만 종로를 제외한 수도권 험지 선택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종로를 제외한 험지라고 할지라도 당선 가능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또 황 대표의 맞상대인 민주당 후보들의 정치적 체급이 떨어지면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망신’이다. 종로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선거에 매달리면 전폭적인 전국적 지원유세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례대표 후순위 선택은 배수진을 친다는 절박함을 강조할 수 있다. 게다가 당 대표로서 총선 기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과거 14·15대 총선 당시 제1야당 대표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택한 방식이다. 다만 공천과정에서 당내 파열음은 불가피하다. 홍준표·김태호 등 중진들의 험지출마를 요구할 명분도 약해진다. 황 대표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선택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황 대표의 결단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