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타고 어디 가냐 묻자 "미국요!"…31년째 행방불명
1992년 11월 23일. 일본의 버블 경제가 붕괴하고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던 시점에 한 일본인 남성이 헬륨풍선을 타고 미국에 가겠다며 모험을 떠났다. ‘풍선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남성은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던 스즈키 카와(당시 52세)다.
‘풍선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 (사진=엑스 갈무리) |
스즈키는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던 이로, 음악교재 판매회사를 운영하며 음악회를 열고 마지막 피날레로 풍선을 날리는 이벤트를 하는 등 살아왔다. 하지만 여러 사업을 이어가던 중 스즈키는 큰 부채를 안고 도산했고, 그때부터 ‘풍선을 타고 태평양을 횡단, 미국에 가 돈을 번다’는 꿈을 꿔 왔다고 한다. 자신이 풍선으로 미국에 가는 것에 성공하면 큰 인기를 얻고 돈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여러 번 ‘풍선 비행’을 시도해왔다. 1992년 4월, 스즈키는 큰 풍선 2개와 보조 풍선 2개를 자신의 몸에 감고 도쿄에서 하늘로 날아올랐고, 고도 약 5600m까지 날아올랐다가 24km 떨어진 민가 지붕에 불시착했다. 당시 스즈키의 비행은 일본 현지 언론 카메라에 실시간으로 잡혔고, 민가 지붕에 떨어지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첫 번째 비행에 실패한 스즈키는 11월 23일 또다시 ‘풍선 비행’에 시도했다. 이번에는 큰 헬륨풍선 4개에 작은 보조 풍선 수십 개를 붙인 개량형 곤돌라를 가지고 나왔다. 이 곤돌라는 바다 위에 불시착했을 때를 고려해 노송나무를 사용해 부력을 높였고, 무게추로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도 얼지 않는 오키나와 소주를 담았다고 한다. 스즈키는 이 곤돌라에 ‘판타지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목표는 대기권 위쪽에서 부는 제트 기류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당초 일본 당국에서는 안전사고를 이유로 스즈키의 판타지호 비행을 허가하지 않고 로프에 매달린 채 시범 비행을 하는 조건을 붙였다고 한다. 이날 시험 비행을 구경하러 나온 스즈키의 지인인 대학 교수도 그가 미국 횡단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스즈키는 두 번째 시험 비행에서 갑자기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곤돌라에 묶인 로프를 풀었다. 당황한 교수가 “어디로 가느냐”고 외치자 스즈키는 “미국이에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게 스즈키는 일주일치 식량과 담요, 휴대전화, 낙하산 등을 갖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상공으로 사라진 스즈키는 다음날인 24일 오전 6시까지 자신의 부인에게 “(풍경이) 예쁘다. 보여 주고 싶다”는 연락을 취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비행 3일째인 25일 돌연 판타지호에서 구조 신호가 발송됐고, 일본 해상초계기가 스즈키를 찾기 위한 비행에 나섰다.
일본 초계기는 미야기현 금화산 앞바다 동쪽 800㎞ 지점에서 스즈키를 발견했으나, 스즈키는 초계기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SOS 신호를 정지시켰다. 결국 초계기는 스즈키가 계속 비행하려는 의사가 있다고 판단해 추적을 중단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스즈키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스즈키는 행방불명이 된 채 31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소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