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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스포츠중계 전설의 절제와 건강

50년 마이크 인생 송재익 캐스터

월드컵 축구 6회 연속 중계

숱한 화제를 뿌린 멘트 제조기

술 담배 안하고 철저한 자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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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캐스터의 전설로 불리는 송재익 씨(80).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70대 후반 축구 중계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목소리는 건강 상태를 알리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몸이 피곤하면 목소리도 달라진다. 나이가 들면 피부에 주름이 생기듯 정상적인 노화과정으로 성대가 위축된다. 노화 때문에 충분한 호흡이 이뤄지지 않으면 목소리를 크게 내고 힘들고, 조금만 말을 해도 목이 쉽게 피로할 수 있다.


스포츠 중계의 전설로 불리는 송재익 캐스터(80)의 음성은 80대에 접어들었어도 여전히 활력이 넘쳤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카타르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며칠 전 전화로 연결됐을 때였다.


그는 1970년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해 50년 넘게 마이크를 잡았다. 한때 최고 인기 스포츠였던 복싱 중계로 이름을 날리다가 1986년 멕시코부터 2006년 독일까지 6회 연속 월드컵 축구 현장을 지켰다. 1999년 정년퇴직 후 2002년 한일월드컵 때 복귀해 한국 축구의 4강 신화의 현장을 전달했다. 77세였던 2019년부터 2년 동안 현역 최고령 캐스터로 프로축구 K리그 중계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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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성(왼쪽)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1998프랑스월드컵 최종예선 한일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 이 경기 중계를 맡은 송재익 캐스터는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불후의 명언을 남겼다. 스포츠동아 DB

특히 그는 어록제조기로 세월을 뛰어넘는 불후의 멘트를 남겼다. 해외에서도 화제가 된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를 비롯해 “보신각 종 치듯 한 헤딩골”, “꽁치 그물에 고래가 걸렸네요.”, “저런 행동은 마치 자갈밭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문을 읽는 행동이군요.”, “한국 수비 깨진 쪽박처럼 물이 줄줄 새는군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송재익 캐스터 주요 어록>


▲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 1997년 9월 일본 도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한일전.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2-1)이 터지자.


▲ “보신각 종 치듯 한 헤딩골” “꽁치 그물에 고래가 걸렸다.” : 2004아테네 올림픽 조별리그 한국-말리전 조재진의 추격골, 상대 자책골에 대해.


▲ “6만3000 송이의 장미꽃이 활짝 핀 대구월드컵경기장입니다. 장미의 특색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향기, 하나는 가시입니다.” :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미국전. 붉은 악마 한국 응원단이 가득 들어찬 경기장 묘사.


▲ “두 손을 치켜들고 맞잡으십시오. 종교가 있으신 분은 신에게 빌고 없으신 분은 조상에게 빕시다. 무등산 산신령님도 도와주십시오.” :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스페인 8강전. 홍명보가 승부차기에 나서기 전.


▲ “깨진 쪽박입니다. 물이 줄줄 새고 있습니다.” : 1997년 서울 잠실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예선. 한일전(0-2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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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축구 중계의 황금 콤비로 불린 송재익 캐스터(오른쪽)와 신문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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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익 캐스터가 신문선, 홍명보 해설위원과 축구 중계를 하고 있는 장면. SBS 캡쳐

오랜 세월 방송을 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그는 “건강하게 목소리를 잘 지킨 것 같다. 나이 먹을수록 경력 보다는 체력이 중요했다”고 덧붙였다. ‘절제와 겸손’을 인생의 모토로 삼은 덕분에 스포츠 중계에서 장수할 수 있다고도 했다.


목을 쓰는 직업이지만 예전부터 성우가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음성을 지닌 송 캐스터는 평생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술도 멀리 하고 있다. “선친께서 맥주회사에 다니면서 약주를 즐기셨어요. 빈병 장수가 우리 집 앞에 자주 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죠. 카투사로 군 복무하던 시절 귀하던 양담배를 쉽게 피울 수 있는 유혹도 마다했어요. 목이 갈라지거나 안 좋아지는 일을 피했던 것 같아요.”


송 캐스터는 소식(小食)을 실천하고 있다. 아침은 우유, 과일, 채소 위주로 간단히 들고 저녁에는 점심 식사량의 절반 정도만 먹는다. 따뜻한 물도 자주 마신다고 한다. 매일 1시간 30분 동안 5km를 걷는다.


그는 캠핑의 원조를 자처한다. 1990년대 후반 캠핑카를 마련한 뒤 틈나는 대로 전국의 공기 좋은 곳을 찾아 그저 ‘멍때리기’로 마음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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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면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한양대병원 제공

송창면 한양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송재익 캐스터의 경우에는 절제가 중요한 열쇠가 된 것 같다. 좋은 목소리를 지키려면 성대를 아껴 써야 하며 위산 역류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측 성대가 접촉을 하면서 목소리가 나오는데, 성대가 접촉할 때 과도한 마찰력이 생기거나 충격이 생기는 경우 성대에 결절, 폴립, 낭종, 부종 등이 생겨서 목소리가 악화되는 악순환을 거치게 된다. 성대에 무리를 가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대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음성 사용 시간이 과도하게 길지 않아야 하고, 발성 강도가 세지 않아야 한다.


송 교수는 “업무 상 음성을 많이 사용하는 경우라면 최대한 목에 힘을 빼고 발성할 것을 추천한다. 시끄러운 환경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목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조용한 환경에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으면 좋다”고 덧붙였다.


성대에 물리적 충격을 줄이는 것과 함께 화학적인 공격으로부터 성대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고, 커피나 탄산음료 등 카페인을 자주 마시거나 야식을 즐기는 경우 새벽에 자는 동안 위산 역류가 일어날 수 있다. 식도 입구와 성대가 같은 부위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위산 역류로 인한 역류성 후두염이 생기는 경우 성대가 위산이라는 강력한 액체에 노출되어 점막 손상이 일어난다.


위산 역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잠이 들기 전까지 위에 음식이 남아있지 않도록 소화가 잘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마지막 식사 후 3 시간이 지난 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성대가 건조하지 않도록 충분한 수분 섭취를 하는 것이 좋다. 물을 자주 조금씩 마시고 물 한 잔에 레몬 반개를 넣어 입안과 목을 자주 적셔주는 것도 권한다.


걷기 등 유산소운동으로 폐활량을 확보하면 건강한 목소리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송 교수는 “듣는 사람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음성변화가 생겼다면 후두 내시경을 받아 목구멍에 생기는 암이 없는 지 확인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폐암, 식도암, 갑상선암 등의 질환도 목소리 변화를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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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해설위원과 복싱 중계에서 호흡을 맞춘 송재익 캐스터. 동아일보 DB

일상생활에서 좋은 목소리를 위한 습관을 묵묵히 따랐던 송 캐스터는 아나운서 초기에 토크 프로그램을 원했으나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다. “1970년 입사하고 수습 때 처음 받은 월급이 1만 원이었어요. 수습 끝나니 2만 원 주더군요. 몇 만원 하던 금성 녹음기를 사서 효창운동장에서 선배들을 따라하며 중계 연습을 했습니다.” 스포츠 캐스터로 남다른 공을 들인 그는 복싱 중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70년대와 80년대 최고 스포츠는 복싱이었습니다. 스포츠 캐스터라며 누구나 욕심을 냈죠. 복싱 중계는 시청률이 높았고 외국 출장의 특전도 많았습니다.”


송 캐스터는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김득구와 레이 멘시니의 프로복싱 세계타이틀전을 중계했는데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이날 김득구는 투혼을 발휘하다 링에서 쓰러진 뒤 삶을 마감했다. 후일 송 캐스터는 김득구의 삶을 다룬 영화 ‘챔피언’에 캐스터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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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아나운서 활동을 하며 스포츠 캐스터의 전설로 불리는 송재익 씨(80).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70대 후반에도 축구 중계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송 캐스터는 한국 축구가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일화도 떠올렸다. “아즈테카 구장의 수용인원이 11만 명이나 됐습니다. 운동장에 압도됐죠. 잔디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한번 드러누워 봤죠. 현지 임원이 빨리 일어나라고 하더군요. 허허.”


송 캐스터는 경기 시작 3시간 전에 축구장을 찾아 꼼꼼하게 준비를 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공을 위주로 중계를 하는 게 아니라 상황 위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미리 가서 근처에 뭔 산이 있는지, 그 계절에 피는 꽃은 뭔지 환경을 파악해 두곤 했죠.” 그는 “중계가 있으면 아내가 김장독을 묻어달라고 해도 안 해준다. 혹시 허리라도 삐끗할까 싶어서다”라며 웃었다.


송 캐스터는 70대 후반의 나이로 축구 중계를 할 때 어린이들에게 사인 요청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잘 모를 것 같아서 이유를 물어보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부탁을 받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3대에 걸친 애청자를 뒀다는 보람과 뿌듯함이 컸다.


“한국 축구에 많은 성원을 보내주기를 바란다. 건강해야 축구도 즐길 수 있다”는 송 캐스터의 바람에서 반세기 TV 브라운관을 관통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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