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좋아했던 탁구, 은퇴 후 제주서 지도자로 ‘인생 2막’”
전인상 씨가 탁구 서브를 넣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탁구를 즐긴 그는 은퇴를 앞두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해 탁구도 치며 지도자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인상 씨 제공 |
“1979년 충남대에 들어갔는데 탁구서클(현 동아리)이 없었어요. 중고교시절 대전 시내에서 탁구 좀 쳤는데…. 그래서 친구와 탁구서클 ‘한우리’를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동그라미’란 탁구서클을 만들었죠. 한우리는 2년 정도 운영하다 제가 군대하면서 없어졌고, 동그라미는 아직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취미가 직업이 되는 시대가 됐다. 스포츠를 즐기다 ‘스포츠인’으로 전업한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탁구광 전인상 씨(62)도 평생 즐기던 탁구 덕에 은퇴 후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2020년 말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서 은퇴한 전 씨는 그해 말 삼다도 제주도에 터를 잡고 탁구 지도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정년을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
“돌이켜보니 어려서 클 때까지 30년은 부모님 품에서 살았고, 또 30년은 직장을 잡고 가족들을 돌봤습니다. 이젠 나머지 30년 이상은 노년기로 이어집니다. 제가 이 시기를 잘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00세 시대지만 현실은 60세쯤이면 정년퇴직을 해야 합니다. 정년 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죠. 그래서 전 평생 좋아했던 탁구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 탁구 2급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습니다. 지난해엔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어요. 올해부터 초등학교 방과후 지도자로 활동합니다.”
대학시절부터 탁구를 즐긴 전인상 씨는 은퇴를 앞두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해 탁구도 치며 지도자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인상 씨 제공 |
전 씨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탁구의 이에리사 정현숙 등이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일어난 탁구 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중고교 시절부터 대전 시내에 들어선 탁구장을 돌아다니며 친 것이다. 사실 대학에서도 서클을 만들어 탁구를 치기는 했지만 실력이래야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를 익히는 등 열정만큼은 프로급이었다. 그렇게 2년을 활동하다 군에 입대하고 복학한 뒤 취업준비하면서 한동안 탁구를 잊고 지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대한육상연맹에서 사람을 뽑아 지원했죠. 선수들과 지도자들을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야 해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탁구 칠 엄두도 내지 못했죠. 육상연맹 사무실이 서울 을지로에서 잠실로 옮겼고 1990년대 초반 청담동에 있는 대원탁구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다시 탁구와 연을 맺게 됐습니다.”
탁구의 신세계가 펼쳐졌다. 선수 출신 코치가 직접 레슨을 해주고 있었다. 과거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다. 선수출신에게 조련 받아 실력이 향상된 마니아들이 모여 있는 탁구장들도 여러 곳 소문이 났다. 전 씨는 대한항공 선수 출신 권영랑 관장에게 원포인트레슨을 받기도 하는 등 탁구 실력을 닦았다. 일을 마치면 어김없이 탁구장으로 달려가 1,2시간 땀을 흘렸다. 실력이 비슷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대원탁구동호회를 만들어 대회에도 출전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생활체육 탁구대회에 출전해 복식 우승, 단식 3위를 하는 등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탁구는 직장생활의 해방구였어요. 일하며 얻는 모든 스트레스를 탁구공에 실어 날렸보냈습니다. 탁구를 치면 한두 시간은 잡생각 없이 탁구에 집중할 수 있었죠. 제 삶의 큰 활력소였습니다.”
전인상 씨가 탁구 스매싱을 하고 있다. 대학시절부터 탁구를 즐긴 그는 은퇴를 앞두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노인체육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해 탁구도 치며 지도자로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다. 전인상 씨 제공 |
실력이 늘자 탁구 치러 가면 어서든 대접도 받았다. 탁구 좀 치자 육상연맹에서 일한다고 하니 ‘육상선수 출신이라 역시 발이 빠르다’고 엉뚱한 칭찬을 하기도 했다. 어떨 땐 ‘체육과 출신이어서 잘 친다’고까지 했다. 그는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영문과 출신이다. 각종 육상대회가 전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출장이 잦았던 그는 항상 탁구 라켓을 가지고 다녔다. “난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일 끝나면 바로 탁구장으로 달려갔다. 몸이 찌뿌드드해도 탁구 한두 시간 치면 바로 컨디션이 좋아졌다”고 했다. 탁구를 너무 많이 쳐 ‘엘보’가 오긴 했지만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다.
전 씨는 탁구를 잘 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도 했다. 처음엔 펜홀더 라켓으로 시작했다. 속칭 ‘일펜(일본식 펜홀더)’다. 그는 “한 10년 일펜으로 쳤는데 백핸드 공격이 잘 안돼 중국식 펜홀더(중펜)로 바꿨다”고 했다. 2000년대 초 등장한 중국 탁구 스타 왕하오(39)가 기술을 완성한 것으로 펜홀더인데 뒷면에도 라바(고무판)를 붙인 라켓이다. 그는 “당시 중펜 사용법을 잘 몰라 왕하오가 치는 모습을 CD로 구워서 계속 보면서 탁구를 쳤다”고 회상했다.
“당시는 PC통신이 유행할 때였죠.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전 유니텔 탁구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었죠. 온 오프라인 친교 모임이었습니다. 회원들과도 정보를 교류하며 탁구를 쳤습니다. 다음카페의 4050탁구동호회에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중펜이 손목에 무리를 줘 2010년 쯤 지금의 쉐이크핸드 라켓으로 바꿨습니다.”
서울 오금동 박현철탁구장에서 쉐이크핸드 라켓 기술을 배웠다. 박현철탁구장이 경기 성남 분당으로 옮겨 갔을 때도 원정까지 가서 탁구를 쳤다. 생활체육탁구에서 일펜으로 3부 리그 정상급까지 갔고, 중펜으로도 계속 정상급을 유지했다. 지금은 탁구인구가 많아져 4,5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인상 씨가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단식 4부에서 준우승한 뒤 상장과 트로피를 받고 포즈를 취했다. 전인상 씨 제공 |
2007년 KADA로 옮겨서도 탁구는 멈추지 않았고 각종 대회에서도 성과를 냈다. 2014년도 도닉배전국오픈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2016년 강동구의회의회장배 탁구대회 복식에서도 1위를 했다. 2019년 제2회 에리사랑시니어탁구대회 단식에서도 우승했다.
“서울 사는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할까요? 꽉 막힌 빌딩 숲을 떠나 탁 트인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강원도 원주, 강릉 등도 생각했지만 제주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주에 친구가 살고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은퇴하고 바로 제주로 내려왔습니다.”
제주에서의 삶은 자연스럽게 탁구가 주가 됐다. 제주탁구클럽에 가입해 활동했다. 외지인으로 제주에서 정붙이고 잘 살 수 있게 된 원동력에 매일 만나는 회원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전 씨는 지난해 말 열린 제주도탁구협회장기 탁구대회 백두부 복식에서 우승했고, 4부 단식에서 준우승하는 등 실력을 과시했다. 올해부터 초등학생을 지도로 나서지만 향후 시니어들에게도 지도할 계획이다.
전인상 씨가 제주탁구클럽에서 게임하고 있는 모습. 전인상 씨 제공 |
“탁구는 사계절 언제든 칠 수 있습니다. 자기 몸만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제가 제주도 장애인복지관에서 레슨해준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 타고, 목발 짚고도 칠 수 있습니다. 탁구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아 최고의 실버스포츠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는 탁구를 치면서 지도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어린이들에게는 탁구로 희망을 전하고, 어르신들께는 건강과 행복을 전하고 싶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