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덕에 난민 인정 받아” 이란출신 중학생 2년만에 웃다
기독교 개종후 2016년 난민 신청
대법 기각후 강제추방 위기… 이란선 개종자를 반역죄로 처벌
친구들-선생님 응원집회-靑청원… 재신청 석달만에 마침내 지위 얻어
“도와준 친구들 3일씩 붙잡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
7월 19일 서울 양천구 목동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앞에서 이란 출신 A 군의 같은 반 친구들과 교사들이 A 군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동아일보DB |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해야 합니다.”
19일 이란 출신 A 군(15)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같은 중학교 동급생들은 이런 내용의 입장문을 냈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 군의 사연을 올리고 A 군의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면서 난민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자신들은 잊혀지길 원하지만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이날 A 군의 난민 지위를 승인했다. 2016년 5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이후 2년 5개월 만이다. A 군은 이날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많이 도와준 덕에 가능했다”며 “한 사람당 3일씩 붙잡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이란에서 태어난 A 군은 7세였던 2010년 사업을 하던 아버지 B 씨(52)를 따라 한국에 왔다. 서울서 초등학교를 나와 현재는 중학교를 다닌다. 그가 난민 신청을 낸 것은 2011년부터 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가면서 기독교를 믿게 됐기 때문이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이란은 개종자를 반역죄로 처벌한다. 최고 사형도 당한다.
하지만 처음에 서울출입국·외국인청은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2016년 난민 불인정 결정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따르는 이란에서 기독교인은 종교 박해를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받아 승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적극적 포교행위를 하지 않는 한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고 14세란 나이가 종교적 신념을 갖기 너무 어리다”며 1심 결과를 뒤집었다. 상고했지만 올해 5월 대법원은 심리를 열지 않고 기각했다. 결국 A 군은 강제 추방당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그 사이 A군은 세례와 견진성사(세례성사 다음에 받는 의식)를 받고 천주교로 개종했다.
같은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나선 것은 이때다. 같은 반 여학생은 “공정한 난민 심사를 받게 해달라”며 올해 7월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했다. 같은 달 A 군이 난민지위 재신청을 하던 날 친구 50여 명이 응원 집회를 열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A 군과 학생들을 찾아 격려했다. 이달 초 친구들은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 난민 심사가 극적으로 수용된 건 친구들이 사회적 관심을 높여준 데다 A 군의 종교적 신념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권종현 난민과장은 ”성당 신부님과 교인 등 주변인들을 만나보고 탄원서와 서명 등을 살핀 결과 A 군의 신앙심이 확고해졌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A 군은 우여곡절 끝에 난민 지위를 얻었지만 난민 심사는 매우 까다롭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1994년 이후 지난달 말까지 난민신청자 4만5354명 중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868명(1.9%)뿐이다. 올해 상반기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 484명 중 362명(74.8%)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지만 누구도 난민 지위를 얻지는 못했다.
이는 난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무관치 않다. A 군 학교의 오모 교사는 “학생들이 A 군을 돕겠다고 나서자 학교로 많은 항의 전화가 왔다. 학생들을 향한 비난 댓글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이제 잊혀지고 싶다고 한 이유다. A 군은 난민 인정을 받아 내년에 고교 진학이 가능하다. 그는 “디자이너 겸 모델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박은서 clue@donga.com·황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