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열면 파도… 재택근무 덕에 강릉서 한달 살아요”
‘슬로 라이프’ 찾아나선 직장인들
한 달 살기, 일주일 살기를 위해 전국에서 강원 강릉에 모인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순긋해변에서 저녁을 즐기고 있다. 한 참가자는 “퇴근 후 서핑을 하든, 함께 식사를 하든 일상 업무와 완전히 분리된 자유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파도살롱 제공 |
“한 달 동안 해변으로 퇴근합니다.”
‘집-회사’만 반복하던 출퇴근 공식에 ‘해변’을 더해 집-회사-해변-집이 된다면?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산하면서 직장인들의 국내 ‘한 달 살기’가 큰 인기다. 코로나19 이전 한 달 살기는 태국 방콕, 치앙마이, 베트남 다낭, 프랑스 파리, 싱가포르 등 해외 유명 관광지나 국내에선 제주도를 중심으로 유행했다. 보통 휴직, 퇴직 또는 장기 휴가를 활용해 대학생이나 퇴직자, 은퇴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에 가까웠다.
하지만 최근 비대면 근무 확산으로 업무를 하면서도 국내 여러 중소도시를 거점으로 한 달 살기가 가능해졌다. 대도시를 벗어나 즐길 수 있는 ‘슬로 라이프’가 한 달 살기의 장점으로 꼽힌다.
8년 차 출판사 편집자인 안유정 씨(36)는 최근까지 집인 서울을 벗어나 강원 강릉시에서 지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집에서만 처박혀 일하기 싫다”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머리를 스쳤다. 실제로 업무 효율도 나날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일을 이어가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다 강릉을 찾았다. 시내에 한 달간 머물 방을 얻었고 매일 공유 오피스로 출근해 원격 근무를 시작했다.
일과는 이전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오전 8시 반쯤 일어나 개울을 따라 걷다 다리를 건너 공유오피스까지 이어진 1.5km 길을 걸어서 출근한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는 주변 관광지를 돌아보거나 주로 사무실 근처 해변을 찾았다. 주말에는 동해안 일대를 편리하게 구경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안 씨는 “직장과 집이 있는 서울을 벗어나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아무리 바빠도 지인, 업무 관계자가 미팅을 요청할 때마다 만나야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을 놓지 않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업무 효율도 늘었다”고 했다. 그는 한 달 살기 후 매일 적어둔 일기를 묶어 책도 발간했다.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서 3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27)에게 원격 근무는 코로나19 이전까지 꿈도 꾸지 못했던 일상이다. 회사에서 노트북을 지급하며 재택근무를 권장했다. 김 씨는 “특정일에는 회사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주일, 며칠씩 강원도 공유오피스에서 근무한다. 사무실 개념이기 때문에 회사만큼 업무에 최적화되고 탁 트여 있는 주변 자연환경 덕분에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강릉에서 공유오피스 ‘파도살롱’을 운영하는 최지백 대표는 “올해 고객은 한 달에 30명이 넘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서울 경기 지역에서 찾아오는 30, 40대 직장인이 많다”고 했다. 정보기술(IT) 개발자, 디자이너, 프리랜서에 국한됐던 고객의 업종은 점차 일반 기업 직장인으로 다양화하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들도 국내 한 달 살기, 일주일 살기 열풍을 탄 ‘디지털 노마드’ 직장인 모시기에 힘쓰고 있다. 전남, 전북, 경남 등에서도 시골 한 달 살기, 폐가 한 달 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내놨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참가자를 모집한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에는 약 1000명이 몰렸다.
여행 및 액티비티 플랫폼 ‘와그’의 선우윤 대표는 “장기 숙박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일도 하는 2인 이하 규모의 한 달 살기가 늘었다. 기존 유명 관광지인 부산, 제주, 강원도를 비롯해 여러 지역 도심 인근 소도시까지 한 달 살기 상품 종류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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