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쌍한 강아지 살려주세요” 후원금 1억 모아 생활비 펑펑
경찰, 동물보호단체 대표 사기혐의 檢송치… ‘어금니아빠’ 사건과 닮은꼴
A 씨가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 SNS에 올라온 개 농장 사진. 동물보호단체 SNS 캡처 |
‘치료비가 없어서 불쌍한 강아지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구해주세요.’
2017년 10월경 아파서 신음하는 강아지의 사연과 사진이 한 동물보호단체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라왔다. 글을 올린 사람은 이 단체 대표 A 씨(36). 회원 한 명이 ‘제가 20만 원 낼게요’라고 말을 꺼내자 다른 회원들도 잇달아 기부를 시작했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100만 원가량의 후원금이 모였다. A 씨는 몇 시간 뒤 ‘병원에 다녀왔다’는 메시지를 대화방에 남겼다. 회원들은 ‘우리를 대신해 강아지를 돌봐줘 너무 고맙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며 A 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A 씨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기견을 도와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돈은 대부분 강아지 치료가 아니라 A 씨의 생활비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강아지 치료한다고 해놓고는…
서울 중랑경찰서는 지난달 31일 개 농장에 갇히거나 버려진 강아지를 구하고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사기)로 A 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2016년 11월 이 단체를 설립한 뒤 98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아 이 가운데 800만 원가량만 실제 강아지를 구하거나 치료하는 데 쓰고, 나머지 9000만 원은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들이 후원금 사용명세 공개를 요구하자 A 씨는 사용명세의 금액 부분을 포토샵으로 조작한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 씨가 실제로는 유기견을 구할 의도가 없으면서 후원금을 모으려고 회원들을 속인 것으로 판단했다.
A 씨는 개 농장에서 데려온 강아지를 검진조차 하지 않고, 반지하 월세방에 방치하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된 단체 회원들은 사비로 강아지의 검진과 치료를 해줬다. 회원 B 씨는 “A 씨에게 치료비를 달라고 하니 ‘회원이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 돈을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회원들이 올해 1월 A 씨를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명할 것도, 더 말할 것도 없다”고만 했다.
감시 허술한 ‘임의단체’ 만들어 법망 피해
A 씨의 수법은 ‘어금니 아빠’로 후원금을 모금해 사적으로 쓴 이영학(35)과 닮은 점이 많다. 이영학은 12년간 딸의 치료비 명목으로 12억8000만 원을 모금해 11억2000만 원을 차량 구입, 문신 시술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이영학 역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언론 인터뷰 등을 활용해 후원자를 모았다.
이영학 사건 이후 개인과 단체가 받는 기부금에 대한 감시망이 허술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법망은 이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 A 씨는 가장 만들기 쉽고 규제가 허술한 ‘임의단체’로 설립했다. 임의단체는 설립자가 관할 세무서에 설립지원서만 제출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또 회비나 후원금 규모가 3억 원 이상이면 국세청에 결산서류 등을 신고해야 하지만 3억 원 미만이면 신고 의무가 없다.
전문가들은 기부금 사기를 막으려면 기부자 스스로가 ‘스마트 도너(donor·기부자)’가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감정에 치우쳐 기부하면 기부를 악용하는 이들을 걸러낼 수 없다”며 “해당 단체가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고 사용명세를 투명하게 공개하는지, 해당 단체의 운영진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등을 다각도로 따져보고 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