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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가 자백한 이유? 여자 좋아하다 휘말려서…”

이수정 경기대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

동아일보

희대의 악마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공공의 안전을 위한 강한 제재와 인권 침해 우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죽을 수 있다는 걸 감수하고라도 총을 살 자유를 주는 게 맞을까, 아니면 자유를 제한해 못 사게 하는 게 맞을까. 이수정 교수는 “인권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억울하게 죽지 않을 권리 또한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영국 BBC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됐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14명을 살해하고 30여 명을 강간·강간미수했다고 자백한 이춘재가, 안 나와도 그만인 자리에 나와 결국 자백을 한 것은 또 무슨 까닭이었을까.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인 이수정 교수(55)는 “조사팀이 면밀히 연구한 뒤 여성 프로파일러를 투입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재 조사에는 그의 제자인 프로파일러들이 상당수 참여했다.》


―이춘재가 유전자(DNA) 증거 제시, 프로파일러와의 신뢰 형성 등 때문에 자백했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휘말려서 그런 거다.” (휘말려서?)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다 끝났기 때문에 자백을 할 이유가 없다. 사실 프로파일러들과의 면담도 안 나오면 그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백받는 게 쉽지 않을 거라 봤다.” (그런데 왜 나온 건가.) “초반에는 DNA 검사란 게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좀 보냈다. 그런 얘기를 주로 여성 프로파일러가 많이 했는데, 여성과 얘기하는 자리가 생겼다는 게 이춘재가 계속 면담에 나온 이유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이춘재는 성도착증으로 연쇄 성폭행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다. 그렇게 성적인 관심이 많은 사람이 20여 년간 교도소에 있었다. 그러다 수사관을 떠나 여성과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니 그것만큼 흥분되는 일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자리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말린 거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분을 수사팀이 굉장히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해서 공략한 게 성공한 것 같다.”


※조사에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았던 공은경 경위(40·여) 등 남녀 베테랑 프로파일러 9명이 투입됐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이춘재는 자백 직전 여성 프로파일러에게 “손 좀 잡아 봐도 되느냐”고 물었고, 프로파일러는 “조사가 마무리되면 악수나 하자”고 응대했다.


―이춘재 같은 희대의 살인마가 어떻게 수십 년간 1급 모범수로 지낼 수 있는 건가.


“교도소 안에는 여자가 없으니까…. 물론 체격이 작기 때문에 감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맞았을 테니 조심도 했을 테고…. 범죄자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춘재는 성적인 욕망과 연관된 것이 아니면 온순한 사람이다. 성폭행이 목적이었고, 성폭행을 하다 보니 살인까지 간 경우다. 범죄자들도 일반적인 사고는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단지 자기가 흥미를 갖는 부분에서 아주 다른 양식으로 반응할 뿐…. 교도소 안에서도 음란물을 갖고 있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교도소에 어떻게 음란물이 들어갈 수 있는지 의아하긴 하다.) “하하하. 교정본부에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더라.”


※최근 출소한 한 수감자에 따르면 편지 왕래가 자유로운 허점을 이용해 마약을 녹인 물에 적셔 말린 종이에 편지를 써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춘재는 범행 시 같은 방식을 거듭 사용했는데 그러면 잡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모를 수 없는 것 아닌가.


“성도착적인 면도 있고, 시그니처(범행 인증)이기도 한데….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검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았겠지만 꼭 해야 욕망이 풀리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같은 스타킹도 이춘재는 피해자 손목을 묶을 때 주로 썼는데,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목을 조르는 데 썼다.” (왜 굳이 스타킹을?) “표현이 적절치는 않지만 스타킹은 느슨하기 때문에 살인에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강호순에게 물었다. 스타킹을 사용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몰라요’라고 할 게 뻔해 그 대신 ‘목을 묶은 뒤에 뭘 했냐’고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 “담배를 피우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더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더 큰 이유였던 거다. 그래서 금방 죽지 않는 스타킹을 선택한 거고….”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간 복역한 윤모 씨(52)가 다음 주 중 재심 청구를 할 예정이다. 가혹행위도 있던 걸로 보이지만 살인을 허위 자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미국에서도 1980년대 DNA 검사가 일반화되면서 많은 살인 사건의 범인들이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인보다 장애인, 미성년자 등에게서 허위 자백이 많이 발생한다. 수사관이 몰아붙이는데 끝까지 저항을 못 하는 거다. 일명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도 가출 청소년들이 수사기관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한 경우다.” (한 명도 아니고 어떻게 여러 명이 전부 허위 자백을 할 수가 있나.) “16세 이하 아이들은 의사결정 능력이 성인 같지 않다. 자백하면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한 아이가 너무 힘드니까 허위 자백을 했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그 허위 진술서를 보여주며 이렇게 답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 비슷하게 된 거다.”


※2007년 5월 경기 수원고에서 10대 소녀가 죽은 채 발견됐다. 검경은 가출 청소년 5명과 지적장애인 2명을 범인으로 몰았으나 모두 허위 자백으로 드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동아일보

경찰은 1990년 12월 윤모 씨(당시 19세·사진)가 화성 연쇄살인 9차 사건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임이 드러나고, 일본에서 진행된 유전자 감정 결과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배경이 이 9차 사건이다. 동아일보DB

―장애인도 비슷한 이유인가.


“수원 사건 당시 경찰은 지적장애인과 조현병 환자 두 명도 범인으로 몰았다. 공범이라고….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데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변호사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계층에서 허위 자백이 많이 생긴다. 윤 씨도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지 않았나.” (국선변호인은 뭐하고 있었기에….) “국선변호인? 윤 씨의 첫 국선변호인은 재판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 다음 국선변호인은 사건 기록도 안 보고 장애인이니 관대하게 처분해 달라고만 하고…. 사비로 변호사를 쓸 수 있었다면 허위 자백을 당할 리도 없다.”


―허위 자백이 아니라면 당시 수사관들이 지금 들고일어났어야 하는데 조용하다.


“들고일어나면 자기가 그랬다는 걸 다 드러내는 건데 누가 하겠나. 다 어디에 숨어있겠지. 공소시효도 다 끝났으니까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이나 청구해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 그 질문은 너무 어렵다. 아직도 고민하고 있고…. 내가 천주교 신자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사형제에 반대한다.” (그런데 왜 고민인가.) “면담 중에 강호순이 나에게 물어본 게 있다.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뭘 물었기에….)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느냐고…. 그 순간 ‘아, 이 사람들이 남은 그렇게 죽여 놓고도 자기 목숨은 신경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형제가 폐지되면 이제는 아무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데….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그런 공포심마저 덜어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어갔는데…. 사형제 폐지가 과연 정당한 건지 잘 모르겠다.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것과 사형제를 폐지하는 건 다른 것 같다.”


―수많은 범죄자와 흉악범들을 봤는데…. 당신은 사람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나. 교육이나 교화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나.


“심리학자 중에는 아마 사람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는 쪽인데, 인간의 본능 자체는 착한 쪽은 아니고 욕망 충족적이다. 성범죄자는 가장 욕망 충족적인 부류인 거고….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범죄자들은 더더욱. 그 대신 관리는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자발찌 등도 불가피하지만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스토킹방지법이나 인권 침해 논란이 있지만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에 대해서는 강제 치료도 필요하다고 보는 거다. 국가가 공공의 안전을 유지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하나.”


―이춘재 같은 흉악범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토킹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에 침입하려고 했던 일명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남성이 1심에서 강간미수는 인정되지 않고 주거침입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간의 착수가 없었기 때문에 강간미수인지 강도미수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온 국민이 폐쇄회로(CC)TV를 봤는데…. 그래서 스토킹방지법을 만들어 예비 단계에서의 행위도 처벌하자는 거다. 이춘재도 귀가하는 여성 뒤를 쫓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스토킹방지법이 있다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잡아서 처벌할 수 있다. 법안은 제출돼 있지만 이번 국회는 사실상 다 끝났고 내년 총선 뒤에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당장 내년 말에 조두순이 출소한다. 이미 얼굴이 공개됐는데 동네 주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을까.


“외국에는 중간처우시설이라는 게 있는데, 출근할 때는 전자발찌 등을 차고 나가고 퇴근 후에는 반드시 들어와서 아침까지 못 나가게 하는 일종의 강화된 기숙사 정도로 보면 된다. 안에서는 술도, 음란물도 금지시키고….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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