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타본 BMW·벤츠… 독일차가 달라졌다?!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소소하게 요즘 차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세 번째 주제는 최근 시승한 독일차들입니다. 올 초에 저는 BMW의 320d와 메르세데스벤츠의 GLC를 타볼 수 있었는데요. 그동안 독일차 시승이 뜸했던 터라 오래간만의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차량 시승이었습니다.
역시나 둘 다 좋은 차였는데요. 시승을 통해 이들 브랜드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는 꽤나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강점과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하되, 또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면서 스스로의 외연을 넓히려는 모습을 시승기에 곁들여서 한번 얘기해 해보겠습니다. 휴일차담 두 번째 편, 독일에서 경험한 운전문화에 대한 글에도 많은 호응과 좋은 의견 남겨주신 독자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참 자연스러운 차, 7세대 320d
7세대 뉴 320d 하얀색 모델을 300km 이상 시승한 뒤의 소감을 한 마디로 줄이면 ‘참 자연스러운 차’ 정도가 될 듯합니다. 시내 주행과 더불어 서울에서 평창을 다녀오는 고속도로에서 제법 고속으로도 달려보고, 그러다 급감속도 해보고 했는데, 거의 모든 순간에,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BMW의 7세대 뉴 320d. BMW코리아 제공 |
밟으면 확실하게 달려주고 제동하면 자연스럽게 서 주고.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게 뭔지를 보여주는 느낌입니다. 가격이 5000만 원 중반(320d 럭셔리)인 320d는 사실 BMW에서는 ‘엔트리’로 봐야할 차입니다.
하지만 “한 번의 시승으로 브랜드를 좀 느낄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에 BMW코리아에서 어렵지 않게 추천한 차가 바로 지난해에 새로 출시된 뉴 320d이기도 합니다. BMW의 상징과도 같은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날렵하고 재빠른 3시리즈 차량이 ‘운전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BMW의 입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그리고 실제로 어떤 동적 성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승이었습니다.
BMW의 7세대 뉴 320d. BMW코리아 제공 |
이 자연스러움은 사실 이 차를 타다가 제 차, 싼타페(TM)로 돌아왔을 때 더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2년 가까이 탄 차임에도 320d를 타본 다음에, 제 차의 브레이크 답력이 초반에 많이 몰려 있다는 점을 새로운 사실처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살짝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차가 울컥거리는 느낌이어서 그랬습니다.
시내 주행에서 느끼는 변속의 질감 역시 ‘내 차로는 따라갈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었구나’라는 걸 나중에 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 물론 차량의 크기와 편의성 그리고 가격을 감안하면 당연한 차이일 수 있겠지요. (지금도 저는 제 차가 더 좋습니다. ^^)
BMW의 7세대 뉴 320d의 내부. BMW코리아 제공 |
그래도 BMW인데… 라고 생각하고 보면 내장재의 질감과 수동 트렁크 등이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본연의 기본 성능을 느끼면서 왜 적지 않은 사람들이 BMW의 팬이 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시승이었습니다.
320d, BMW의 이미지 바꿔놓는 주행보조
그리고 이 시승에서 꼭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입니다. 과격한 코너링 등등으로 차량의 성능을 테스트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처지입니다. 이런 것보다는 요즘 활용성이 커지고 있는 ADAS를 늘 꼼꼼히 테스트 해보곤 하는데요.
320d를 타면서 가장 뜻밖이었던 부분이 바로 ADAS였습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적절한 수준의 차선 유지는 이미 일반화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진장한 운전의 즐거움(Sheer Driving Pleasure)’을 슬로건으로 앞세우는 BMW이니만큼 적당한 수준의 ADAS가 적용돼 있지 않을까 예상했었습니다.
BMW의 7세대 뉴 320d의 운전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운전대의 버튼으로 켤 수 있다. |
하지만 웬걸! 320d는 상당히 강력한 ADAS로 차를 통제했습니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비롯한 ADAS를 켜면 도심의 저속 주행에서도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면서 주행했고 신호등에 걸려 멈춰 섰다가 앞차가 출발하면 알아서 차를 출발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ADAS는 사실 종종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요금소를 앞두고 차선이 갈라지거나 늘어나는 상황 등에서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차를 끌고 가는 상황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실, 어느 브랜드 할 것 없이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요. 320d 시승 중에서도 차선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제가 운전대를 잘 쥐고 있음에도 차가 상당히 강하게 운전대를 돌리려는 것을 느끼면서 ‘아, 정말이지, 강려크한 ADAS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운전의 즐거움’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ADAS
사실 ADAS 기술은 어느 특정 회사의 전유물도 아니고 사실 거의 평준화되어 있는 기술이긴 합니다. 시스템 자체를 글로벌 부품사를 통해서 공급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강도 높게 적용할 지에는 각 브랜드의 철학이 반영됩니다. 예컨대, 안전을 중심으로 차를 홍보하는 볼보의 경우 운전자가 ADAS에 너무 의존하지 못하도록 세팅을 하는 식입니다.
BMW의 7세대 뉴 320d의 내부 |
BMW 입장에서는 지난해 완전변경 출시된 3시리즈이기에 최신의 기술을 넣었다고 보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이런 ADAS를 비롯한 첨단 기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는 않는 모양새입니다. 주행 성능을 앞세운 ‘프리미엄 브랜드’가 이런 기능으로 승부할 이유는 없다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운전자들이 ADAS에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는 딜레마 역시 적지 않은 브랜드가 ADAS 홍보에는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아무튼, 이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저는 BMW 7세대 3시리즈의 ADAS를 경험하면서 BMW도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잘 하는 것을 계속 잘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거기에 적응하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BMW의 기본기를 잘 유지하되, 2020년 이후의 흐름을 감안한다면 적극적인 ADAS 적용은 사실 당연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BMW의 7세대 뉴 320d. BMW코리아 제공 |
디테일이 남다른 벤츠 GLC
이런 측면에서 또 하나 얘기할 차가 최근에 시승한 메르세데스벤츠의 ‘더 뉴 GLC 300 4MATIC’입니다. 지난해 다수의 AMG 차량을 경기 용인의 트랙에서 타본 이후 오래간만에 타본 벤츠였는데요.
소비자 가격 7000만 원가량의 이 미드사이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괜찮은 공간감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센터페시아에 3개의 송풍구를 배치한 실내 인테리어 역시 전통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줬습니다. 센터페시아와 운전대는 물론 내장 디자인 곳곳에 은색으로 금속 느낌을 주는 마감재를 활용한 것이 고급감에 큰 몫을 하는 듯 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더 뉴 GLC 300 4MATIC’의 내부.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
요즘 메르세데스벤츠가 SUV 모델들이 보여주는 좀 남성적이랄까, 강인하달까. 아무튼 그 특유의 외관을 사실 저는 좀 선호하지 않긴 하는데요. 구석구석에는 운전자를 편하게 해주는 장점이 많이 눈에 띄는 차였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소개해 드린 칼럼식 변속 레버는 확실히 편리했습니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한 번 더 꾹 눌러서 작동시키는 방식의 ‘오토홀드’도 좋았습니다. 소소하지만, 주차할 때쯤 되면 오토홀드 버튼을 따로 눌러서 꺼야하는 불편을 덜어주는 것이지요. 정면을 바라보는 손과 발로, 운전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 조금 오버하자면 이래서 다들 벤츠, 벤츠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편안함의 상징 벤츠가 숨긴 ‘야성’
무난한 SUV일 수도 있는 GLC를 시승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사실 ‘야성’입니다. ‘스포츠 모드’ 그리고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선택하는 순간 GLC는 제가 벤츠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더 뉴 GLC 300 4MATIC’.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
가속 페달을 밟으면 4기통 엔진(직렬 4기통 M264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 최고 출력 258마력, 최대 토크 37.7kg·m)이 맞나 싶은 수준의 가속력과 배기음을 느끼게 해줬습니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아이가 “너무 빨라”라고 말을 하는데 정말 그럴 법한 가속력이었습니다.
내 차도 4기통인데 도대체 뭐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 라는 물음에 대해 한 국산차 업계 관계자는 “연비 신경 안 쓰고 엔진 세팅하면 출력이야 뽑을 수 있죠”라고 말을 해주긴 했습니다만. 아무튼 가족용 SUV 아닐까 싶은 차를 무슨 스포츠카처럼 뽑아놨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더 뉴 GLC 300 4MATIC’의 엔진룸 |
벤츠하면 편안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을 고쳐야 하는 상황.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측은 E클래스나 S클래스 세단이라면 여전히 특유의 편안함을 강조하지만 C는 물론 A클래스로 내려오면 얘기가 다르다는 설명입니다. 스포티한 주행감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등급에서는 거기에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GLC에 대한 저의 인상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에서는 “A클래스 세단까지 타본다면 더 발칙함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젊은 층을 겨냥한 차들은 더 스포티하게 내놓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 역시 당연한 일입니다. 브랜드 고유의 특징을 잘 유지하되 등급과 모델에 따라서 적절한 고객층을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모든 제품의 기본입니다.
요즘 차들은 버튼 하나로 손쉽게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으니 그 모드에 따른 차이를 확실하게 만들면 평소엔 편안한 가족용, 주말엔 스포츠한 주행용과 같은 식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차를 쓸 수 있다는 점도 브랜드들이 잘 활용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예로 들자면 요즘의 벤츠는 메르세데스 뒤에 △벤츠 △AMG(고성능) △마이바흐(최고급차) △EQ(전기차)를 붙이면서 차별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GLC 300 4MATIC’의 주행 모드 선택 화면 |
SUV 파는 슈퍼카 브랜드
고정된 브랜드 이미지를 뛰어넘으려는 변신과 영역 확장은 눈을 조금 넓혀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멀리 가지 않고 현대자동차부터 볼까요. 현대차는 대중차 브랜드이지만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드는데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올해 출시한 제네시스의 첫 SUV GV80는 주변의 시선을 단번에 모으는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연속적인 저 RPM 주행시의 카본 누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현대차는 제네시스에 꾸준히 힘을 집중하면서 정면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N’ 라인을 통해 고성능차 영역에 도전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궈내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강원도 인제 스피디움에서 운영하는 드라이빙 아카데미에 여러 차례 다녀왔다는 수입차 업계의 한 자동차 매니아는 “벨로스터N을 타보면서 기존 현대차의 이미지가 깨질 정도로 화끈한 경험을 했다”는 얘기도 합니다. ‘가성비 좋은 차’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현대차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출시된 현대차 ‘벨로스터N’의 8단 습식 더블 클러치 변속기 모델. 현대자동차 제공 |
기본기 좋은 대중차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독일 폭스바겐은 어떨까요. 지난해 독일에서 시승해 본 신형 투아렉과 티록에서도 저는 작지만은 않은 변화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국내에도 출시된 신형 투아렉에 처음 앉았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개의 대형 스크린이었습니다. 운전석 전면의 12.3인치 계기판과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15인치 중앙 터치스크린을 모두 디지털화하고 자연스럽게 이어붙인 ‘미래지향적 디자인’은 폭스바겐에 대한 ‘다소 낡은’ 저의 이미지를 한방에 무너뜨렸습니다. B 세그먼트 SUV인 티록에서는 곳곳에 마련한 USB 단자가 더 친절해지고 있는 폭스바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폭스바겐 투아렉의 내부. |
슈퍼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가 SUV 모델인 우루스로 돌풍을 일으키는 상황입니다. 주행 성능만 얘기하려면 더 작고 날렵한 세단에 집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스포츠카’ 그 자체라 할만한 포르셰 역시 SUV인 카이엔의 히트로 큰 사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SUV가 대세인 시대에는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고 또 옳은 전략인 셈입니다.
좋은 브랜드를 구축하고 거기에 좋은 이미지까지 얹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주 긴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그리고 시기마다. 각기 다르고 또 끊임없이 달라지는 고객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면서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 모든 브랜드의 숙명인 듯 합니다. 고객들의 낙점을 받기 위해 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은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