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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고통을 그린 화가

[이은화의 미술시간]〈122〉

동아일보

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 1896년경.

머리 빗기는 매우 사적인 영역의 일상이다. 머리를 빗겨 주는 것도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한 에드가르 드가는 머리 빗는 여자도 종종 그렸다. 그 주제를 가장 대담하게 다룬 게 바로 이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 속 여성의 모습이 왠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화가는 왜 이런 모습을 그렸을까?


전체적으로 붉게 처리된 그림 속 배경은 19세기 파리의 어느 가정집 실내다. 연분홍 블라우스를 입은 하녀가 주인 여자의 긴 머리를 빗겨 주고 있다. 임신부로 보이는 주인은 강한 빗질에 이끌려 몸이 뒤로 젖혀진 채 고통스럽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두피를 누르고 있다. “아야, 아파. 좀 살살 빗겨 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긴 머리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상황이자 고통이다.


드가는 여자들이 어떻게 머리카락을 잡고 빗는지, 잘 빗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모델들을 통해 여자들의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느낌을 알기 위해 모델의 머리를 몇 시간씩 빗겨 주기도 했다. “그분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모델을 서는 네 시간 내내 내 머리만 빗겨 주거든요.” 드가의 모델이 한 말이다. 당시 다른 남성 화가들과 달리 드가는 누드화를 그릴 때도 모델과 ‘아무 일’이 없었다. 오직 그림에만 집중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여성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성 모델들이 고통과 싸우는 것을 보는 걸 즐겼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엔 관능미 넘치는 매혹적인 여성이 아니라 피곤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상 속 여성들이 많다.


이 그림 역시 긴 머리 임신부의 일상 속 불편과 고통을 담고 있다. 하녀의 머리와 팔에서 주인의 몸을 따라 이어진 대각선은 그 고통의 흐름을 나타낸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건 분명 피처럼 붉은색일 터. 그림 전체가 온통 붉은색인 이유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이 그림은 드가 사후, 앙리 마티스가 구입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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