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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울음소리 끊긴지 오래… 교사들은 학생 보내달라 통사정”

저출산 고령화로 ‘소멸위험 1위’ 경북 의성군 가보니

“아기 울음소리 끊긴지 오래… 교사들

경북 의성군 읍내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버스정류장 의자에 노인들이 앉아있다. 시내에 아이를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한 곳도 없었다. 의성=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불볕더위에 폭염을 잠시 식히는 여우비가 내린 16일 정오경 경북 의성군 시외버스터미널. 비도 피하고 점심도 먹을 겸 한 해장국 식당으로 부랴부랴 들어갔다.


“젊은 총각이 어디서 오셨데이?”


손님이 많지 않은 식당에 들어서자 70대로 보이는 남녀 어르신들의 눈이 일제히 기자를 향하면서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슬쩍 봐도 식당 내 손님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들이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전국에서 ‘소멸 위험’이 가장 높은 지방자치단체로 꼽힌 의성에 도착해 처음 들른 식당에서부터 ‘인구 층이 역시 고령 세대구나’라는 느낌이 바로 피부에 와닿았다.


식당을 나와 역전오거리 주변을 둘러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이 눈에 띄었다. 도로 양쪽 건물은 약국과 노인요양병원, 사설 노인복지센터 간판으로 가득하다. 복지센터에서는 고용된 복지사들이 노인들을 직접 방문해 비용을 받고 수발을 들어준다.


외관이 제법 세련된 오피스텔형 아파트는 꽤 오래 입주자를 찾지 못한 듯 빛바랜 분양 광고 현판이 걸려 있었다. 폭염 때 사람들로 붐빌 만한 아이스크림 할인 마트는 ‘365일 영업’이라는 안내판이 무색하게 문이 잠겨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주로 이용하는 의류·화장품 매장, 네일숍 등은 시내를 한참 다녀도 찾기가 어려웠다.


‘1973년 3월 30일 개교해 졸업생 3084명을 배출하고 2017년 3월 1일 폐교하였음.’


읍내에서 차로 20분가량 외곽으로 나가 찾아간 가음면 가음중학교 터에 세워진 폐교를 알리는 ‘교적비’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절벽’과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 황폐화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들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불과 몇 년 전까지 학생들이 학교에 등하교할 때는 주변 지역도 활기가 찼는데 학생들이 점차 줄어 지난해 결국 문을 닫을 때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13일 주민등록인구통계를 활용해 분석한 전국 228개 시군구와 3463개 읍면동 지역의 ‘소멸위험지수’를 발표했다.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가임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고령자 수로 나눈 값’이다. 가임 여성 인구수가 고령자 수의 절반인 0.5 미만이면 ‘저출산 고령화’ 지역으로 지역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는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아기 울음소리 끊긴지 오래… 교사들

경북 의성군은 소멸 위험 가능성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6월 기준 소멸위험지수가 0.151이었다. 65세 이상 10명 대비 가임 여성이 약 1.5명에 불과한 셈이다. 의성군 전체 인구 5만3166명 중 가임 여성은 3112명. 65세 이상 인구수는 2만567명이다. 2013년 7월 0.199에서 6년 연속 내리 하향세다.


올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기적 같은 은메달을 따내며 ‘국민 자매’가 된 여자 컬링 대표팀 4명이 의성 출신이어서 이곳의 마늘이 유명하다는 얘기 등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컬링 자매’의 고향에 ‘소멸 위험’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전체 인구가 크게 줄어든 의성에서 느낀 소멸 현실화의 위기감은 통계로 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 “의성은 10∼20년 후 대한민국 지방의 모습”

“아기 울음소리 끊긴지 오래… 교사들

지난해 3월 폐교한 경북 의성군 가음중학교가 텅 비어 있고 운동장과 주변에는 풀이 무성하다(왼쪽 사진). 가음중학교의 옛터에 폐교를 알리는 검은색의 ‘교적비’가 서있다(오른쪽 사진). 의성=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의성군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의성군청에서 의성경찰서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이다. 이 도로의 카페, 제과점, 식당 등에서는 그나마 젊은 남녀들을 간혹 볼 수 있었다.


결혼과 출산의 실태를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예식장, 산부인과부터 찾았다. 주변 상인들에게 물으니 의성경찰서 인근 예식장 두 곳은 명맥만 유지한다고 했다. 분만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 시설은 아예 없다고 했다. 의성 영남제일병원 관계자는 “군에서는 유일하게 산부인과 의사가 있으나 외래 진료만 가능하지 분만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의성군청은 올해 5월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원스톱으로 돕는 ‘출산통합지원센터’를 착공해 건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출산장려금을 늘리고 다자녀 가정 학비지원제도를 도입하는 등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인구 유입 효과가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라는 게 현지 분위기다.


경북도의 유일한 여성 도의원인 임미애 의원(의성·더불어민주당)을 읍내 사무실에서 만났다. 임 의원은 “내가 1990년대 초반 의성에서 아이를 출산할 당시에도 주변 사람들이 ‘끊긴 아기 울음소리를 오랜만에 들었다’고 했다. 그때도 늘 위기라고 했다. 학교는 한 학기 끝나면 한 학급씩 없어졌다. 내 아이도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보내 달라고 해서 힘들었다”며 자신의 경험까지 섞어 이곳의 인구 절벽 실태를 설명했다.


임 의원은 “고령화에 따른 소비 패턴 변화, 그로 인한 일자리 부족 현상, 침체된 교육 환경 등이 악순환으로 반복돼 쉽게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 의원은 “의성이 10년 혹은 20년 뒤 대한민국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인구 10만 명 이하 도시에서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의성을 지방 혁신의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가장 뚜렷하게 위기가 나타나는 곳을 기회를 찾는 시범 지구로 삼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교육 패러다임 못 바꾸면 살길 없어


임 의원의 설명처럼 군내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 모집에 비상이 걸려 있었다. 이미 면 단위에 소재한 초등학교 중학교 여러 곳이 최근 몇 년 사이 폐교했다.


의성군을 대표하는 학교로 1979년 3월 개교한 의성고교 역시 인구 감소로 학교 문을 닫을 뻔했다. 지난해 신입생을 45명밖에 받지 못했다. 2학년 과정에서 최소 인문, 자연계 각각 1개 반 편성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하마터면 어려울 뻔했다. 의성고 정동욱 교사는 “당시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1개 반 편성 기준이 대도시는 23명인데, 상대적으로 인구가 극히 적은 의성군도 22명이다. 현실적으로 기준이 낮아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올해는 신입생을 66명이나 받았다. 여기에는 학교를 지키려는 교사들의 처절한 노력이 있었다. 교사들은 학부모를 찾아가 자녀를 보내 달라고 통사정했다. 이제는 이런 일이 의성에서는 흔하다고 한다. 의성 출신으로 수원에 거주하다 다시 의성에 돌아온 윤영준 의성고 체육교사는 “학생 한 명이 너무 귀하다. ‘의성이 먼저다’라고 읍소하면서 예비 학부모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해왔다”고 했다.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이탈을 막고 새로운 학생 유입을 위해 학교는 수업 방법과 지원 시스템을 모조리 바꾸는 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 성적에 관계없이 개별 학생의 성적과 장래 희망에 맞게 심화 수업을 하고 진학 지도도 하고 있다.


장학 혜택을 늘리고 전교생에게 중식비까지 지원하는 건 기본. 1학년 학생들을 미국으로 데리고 가 아이비리그 탐방까지 했다. 윤 교사는 올해 5, 6월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함께 대구, 전주에서 벌어진 온두라스, 보스니아와의 한국 대표팀 월드컵 친선 경기를 관전하기도 했다. 지역 체육회 및 생활체육회, 헬스클럽 등과 연계해 학생들이 방과 후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시 단위에서는 의성군 외에 경북 상주와 영주도 6년 연속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이들 지역도 서울 등 대도시 대학으로 진학하길 원하고, 대도시에서 행정직이나 검찰 경찰 공무원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층의 지역 이탈이 가속화되는 추세다. 상주시는 젊은층 유입을 위해 대학농구대회를 적극 유치하고 있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고 한다.


극히 일부지만 30∼50대 인구가 대도시에서 귀농해 정착하는 건 작은 희망이다. 4년 전 한 30대 부부가 대도시에서 의성군으로 이주해 토마토 농사 사업을 하고 있고 이어 부인의 친정 식구까지 최근 이사해 왔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연구위원은 “소멸위험지역의 인구 감소가 두드러지지만 귀농귀촌 인구 유입이 발생하는 것도 특징”이라며 “이 지역의 인구 감소 속도를 일정 부분 완화하는 데는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의성=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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