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韓-中 ‘핑퐁 커플’ 안재형-자오즈민 “34년 전 결혼, 요즘은 제2의 신혼”[이헌재의 인생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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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과 자오즈민(焦志敏)이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다。(12월) 22일 정오 서울올림픽공원 수변무대식장에서 열린 결혼식에 신랑 안재형은 조랑말을 타고 입장했으며 뒤따라 자오즈민이 가마를 타고 들어갔다. 이날 자오즈민이 탄 가마는 1백50여년 전 사용된 것으로 전주에서 구해온 것. 축의금은 신랑 측에서만 받았으며 김집 체육부 장관 박철언 정무장관 이해성 한양대 총장 홍재형 관세청장 등 5백여 하객이 이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1989년 12월 22일 자 동아일보에서는 한-중 ‘핑퐁 커플’ 안재형(58)과 자오즈민(60)의 결혼식을 위와 같이 전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탁구 스타였던 두 사람의 결혼 스토리는 전 국민적인 화제였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할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은 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때문에 두 사람은 갖은 고비와 어려움을 넘어서야 결혼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1989년 10월 제3국인 스웨덴에서 먼저 혼인신고를 한 뒤 그해 12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한국과 중국 양국 모두에서 큰 관심을 모았고, 결혼식을 전후해 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두 사람에게 직접 결혼선물을 보냈을 정도로 국제적인 관심사이기도 했다.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전통 혼례 모습. 동아일보 DB |
결혼 후 약 10년간 함께 생활하던 두 사람은 이후 약 20년간 떨어져 살았다. 안재형 한국프로탁구리그 위원장은 은퇴 후 실업팀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이후 아들 안병훈(31)이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나자 함께 미국으로 가 뒷바라지를 했다. 안병훈이 유러피언투어(현 DP월드투어) 2부 투어를 뛸 때는 3년간 직접 캐디백을 메기도 했다.
자오즈민 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업가로 변신해 중국에서 통신 관련 사업을 했다. 중국에서 유명한 탁구 선수였던 그는 인지도를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큰 성공을 거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오즈민 씨는 중국에서의 사업을 정리한 뒤 다시 한국으로 왔다.
서로 바쁘게 약 20년을 보낸 두 사람은 약 2년 전부터 다시 집을 합친 뒤 제2의 신혼 생활을 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아내가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너무 많았다. 이후 나는 병훈이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 유럽 등을 다녔다. 그동안 아내는 중국에서 사업을 했다. 이제 서로 할 만큼 다 했으니 같이 지내자고 해서 함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자오즈민 씨도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있으니 1989년 막 결혼했을 때의 기분이다. 매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 함께 맛있는 것 먹고 다니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젊은 시절. 골프채를 들고 있는 아들 안병훈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무대에서 뛰고 있다. 동아일보 DB |
안 위원장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이자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복식 동메달리스트다. 자오즈민 씨 역시 1986년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땄고, 1988년 올림픽에서는 여자 복식 은메달과 여자 단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전히 절정의 기량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1989년 결혼과 함께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더 이상 중국 국적을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 뒤 잠시 한국 주니어 대표팀 코치를 맡아 지도자 생활을 했으나 아들이 태어나면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자오즈민 씨는 “결혼이 아니었다면 선수 생활을 좀 더 오래 했을 것 같다. 서울올림픽 때 금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세계 최강이라는 중국에서 날 이기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너무 아쉬운 은퇴여서 그런지 탁구채를 놓고 나서 몇 년간은 잠을 자다가 대표팀에서 훈련하는 꿈을 꾸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탤런트 생활을 한 적도 있다. KBS에서 1996년 2월부터 약 6개월간 방영한 일일드라마 ‘며느리 삼국지’에서 중국 베이징에서 시집온 며느리 역할을 맡았다. 맏며느리로는 임예진 씨가 출연했고, 일본 도쿄에서 온 며느리로는 고 이지은 씨가 나왔다. 자오즈민 씨는 “지금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다. 아직 한국말이 그리 늘지 않았을 때인데 대사량이 너무 많고 어려웠다”며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대사 자체를 통으로 외웠다. 선배 배우들이 내 대사를 보고는 작가에게 ‘우리가 하기에도 어렵다. 좀 쉽게 바꿔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좋아하는 탁구를 했고, 탤런트 생활도 해 봤다. 그렇다면 다른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1996년 KBS 일일드라마 며느리 삼국지에 출연한 자오즈민 씨(오른쪽). KBS 화면 캡처 |
그게 바로 사업이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의 인터넷과 통신 분야는 한국보다 많이 뒤처져 있었다. 자오즈민 씨는 한국에서 유행하던 휴대전화 연결음, 일명 컬러링 사업을 중국에 도입했고, 이 사업이 대박이 났다. 이후에는 온라인 음악, 게임 등을 중국 통신사들을 통해 서비스했다. 요즘에 비해 중국 근로자들의 임금도 한국에 비해 크게 낮을 때였다.
중국에서는 그가 얼굴만 봐도 알만한 유명 인사였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자오즈민 씨는 “세월이 지날수록 같은 서비스를 하는 회사들이 많아졌는데 우리 회사를 선택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며 웃었다.
자오즈민 씨는 중국에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최근 중국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동아일보 DB |
자오즈민 씨는 사업을 할 때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찔 틈이 없었다고 했다. 선수 시절부터 소식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는 데다가 워낙 넓은 중국을 이곳저곳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자오즈민 씨는 “원래부터 살찌는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다만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 양의 70% 정도만 먹으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전히 선수 시절과 비슷한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자오즈민 씨는 “사실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요즘 운동은 홈 트레이닝 위주로 한다. 요가 등 몸의 유연성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주고 한다”고 했다.
반면 안 위원장은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안 위원장은 “지금 사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안산 인근에 단독주택이다. 집에서 안산 둘레길이 가깝다. 흙길을 따라 맨발로 안산 봉수대를 다녀오곤 한다. 빠르게 걸으면 45분 안팎,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예전 뉴질랜드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나는 밖으로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아내는 호텔방에서 그냥 쉬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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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 사람이 요즘 함께 가는 곳이 있다. 안 위원장이 최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건물 5층에 만든 ‘아이핑퐁 탁구클럽(I Ping Pong)’이다. 자오즈민 씨는 “너무 오랜만에 탁구대 앞에 서서 탁구공이 빠르게 오가는 걸 보니 좀 어지러웠다”고 웃으며 “집에서 가까워 자주 들른다. 남편이 ‘탁구 놀이터’로 만든 이곳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라 탁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들러 탁구 얘기도 하고, 탁구도 치는 곳이다. 나도 이곳에서 재미있게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30년이 넘게 지났지만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인지 두 사람은 여전히 알콩달콩 생활하고 있다. 대화는 주로 한국어로 한다. 다시 한국어에 익숙해지고 있는 자오즈민 씨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으면 중국어를 쓴다. 결혼 당시 학원을 다니며 중국어를 배웠던 안 위원장은 쉽게 이를 알아듣는다. 자오즈민 씨는 “연애 시절에도 서로 말이 안 통했지만 서로 사랑하게 됐다. 지금도 말이 아닌 느낌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오즈민 씨의 걱정은 자나 깨나 안 위원장의 건강이다. 그동안 건강 검진을 제대로 받지 않았던 안 위원장도 아내의 성화에 결국 위내시경과 대장 내시경이 포함된 종합 건강 검진을 예약했다. 자오즈민 씨는 “남편과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남편이 없으면 절대 못 산다. 온 가족이 건강하고 무사히 지내는 것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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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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