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5개 이은 ‘섬티아고 순례길’… 나를 찾아 떠나는 힐링 여행
전남 신안군 일대 섬들에 12km 조성
예수 열두 제자 상징 공간 길로 연결
아름다운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 일품
‘지금, 지치고 힘들다면 섬티아고 순례길 어때?’
순례의 궁극적인 목표는 변화된 나로 새로 태어나는 것. 신앙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마다치 않고 일부러 힘든 길을 찾아 걷는 것은 그 과정에서 더 큰 삶의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 아닐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에서 이름을 따온 ‘섬티아고 순례길’은 내 안의 나를 찾는 시간은 물론, 걷는 과정에서 모세의 기적과 유사한 체험도 할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힐링 공간이다.
섬티아고 순례길은 전남 신안군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5개 섬 12km를 잇는 길이다. 2017년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된 뒤 국내외 건축·미술 작가들이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기도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12곳을 길로 연결했다. 종교와 관계없이 건축물 자체가 아름다운데 섬 안에 크고 작은 호수와 저수지가 많아 화보 촬영 장소로 인기라고 한다.
섬티아고 순례길의 또 다른 매력은 모세의 기적을 체험하는 듯한 느낌도 들 수 있다는 점.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이 노둣길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둣길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섬과 섬, 또는 섬과 육지 사이를 오가기 위해 크고 작은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를 말한다. 밀물과 썰물에 맞춰 길이 하루 두 번씩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데, 썰물 때면 그 모습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한다.
12곳의 기도 공간은 건강의 집(베드로),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그리움의 집(야고보), 생명 평화의 집(요한), 행복의 집(필립보),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 인연의 집(토마스), 기쁨의 집(마태오),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 칭찬의 집(유다 타대오), 사랑의 집(시몬), 지혜의 집(유다 이스카리옷) 등이다. 노둣길, 숲속, 언덕과 호수 위 등에 멋스럽게 들어서 있는데, 모두 한 사람이 들어가 기도하거나 신앙이 없다면 홀로 사색하기에 적당한 크기(약 3평)로 지어졌다.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는 건강의 집은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를 기리기 위해 지었는데, 방문자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순례를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듯 새하얀 외벽과 지중해풍 푸른 돔 형태의 지붕이 인상적이다.
러시아 정교회 건물 같은 외양의 기쁨의 집은 소기점도에서 소악도로 가는 갯벌 중간에 있다. 이 때문에 밀물 때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집처럼 보이는데, 세 방향의 대형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 풍광이 일품이다. 단, 다시 물이 빠질 때까지는 3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가장 마지막 지점에 있는 지혜의 집은 예수를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옷을 상징해 지었다. 붉은 벽돌의 본체와 첨탑은 마치 중세 유럽 교회 같은 모습인데, 푸른 바다와 붉은 벽돌의 조화가 아름답다.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포함된 것이 의아할 수 있지만 작가는 배신했지만, 나중에 잘못을 뉘우쳤다는 점에서 배신이 아닌 반성의 아이콘으로 해석했다고 한다.
순례와는 관계없지만, 대기점도에서는 고양이 섬으로 유명한 일본 후쿠오카 아이노시마에 온 듯한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30여 년 전 극심한 들쥐 피해 때문에 고양이를 들여왔는데, 개들이 고양이를 물어 죽이는 일이 빈번해지자 개들을 모두 뭍으로 내보냈다. 그 뒤로 번식을 거듭해 이제는 400여 마리의 고양이가 30여 가구와 함께 살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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