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돌고래 “난 어디로 가나요”…‘마지막 돌고래’ 관리 싸고 토론회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태지예요. ‘태지? 가수 서태지?’라고들 물으시는데 고향인 일본 다이지(太地)에서 따온 이름이래요. 서울대공원에 처음 온 건 여덟 살이던 2008년 9월이니 벌써 10년이 넘은 터줏대감이 됐지요. 제 평균수명이 25년 정도라니 어느새 장년(壯年)이 지났네요. 늘그막에 별일 있겠나 싶었는데 지난해 큰 변화가 생겼어요. 같이 살던 친구 둘이 제주 바다로 간다고 떠나더니 한 달 후에 저도 제주로 왔어요. 그런데 제가 어디로 또 가야 할지 사람들이 수군대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태지가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어디서 살고 싶은지 물어볼 텐데….”
지난달 31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서울대공원 동물원 관계자를 비롯해 6개 동물보호 및 환경 관련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모였다. 서울대공원의 마지막 돌고래 태지(19·수컷·큰돌고래)의 향후 거처를 토론하는 자리였다.
태지는 10년간 동물원의 해양관에서 살다가 지난해 6월 제주도 민간 수족관 ‘퍼시픽랜드’로 이사했다. 그 전달인 5월 함께 살던 남방큰돌고래 ‘금등’과 ‘대포’가 방류를 위해 제주도로 떠나자 급하게 숨을 몰아쉬거나 스스로 물 위로 올라와 몸을 말리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서다. 무리 지어 사는 돌고래의 특성상 혼자 남은 스트레스가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해양관 수리를 앞두기도 했던 서울대공원은 태지를 “시설이 제주도 최고이며 무엇보다 동종(큰돌고래) 개체가 있다”며 퍼시픽랜드에 위탁했다.
“적응한 곳에서 여생 보내야”
2015년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먹이를 받아먹은 후 사육사와 스킨십을 하고 있는 큰돌고래 태지. 서울대공원 제공 |
지난해 12월 31일 퍼시픽랜드 위탁 기간이 만료되자 태지가 어디서 살 것인지가 다시 불거졌다. 사실 지난해 퍼시픽랜드로 올 때부터 동물보호단체 등은 “돌고래 불법 포획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돌고래 쇼를 하는 민간업체에 보내선 안 된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갈 곳은 많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들과 서울대공원이 최우선 순위로 꼽은 울산 고래박물관은 태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간이 부족하고 일부 지역 환경단체에서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태지는 돌고래 쇼를 하지 않으며 서울대공원에서 매달 사육사가 방문해 적응도와 건강을 점검한다는 조건으로 퍼시픽랜드로 왔다.
서울대공원은 퍼시픽랜드에 태지를 기증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부터 태지를 돌본 선주동 사육사는 “돌고래끼리도 종에 따라 언어가 다른데 같은 큰돌고래를 만나서 그런지 살이 찌는 등 두세 달 만에 빠르게 적응해 안도했다”며 “새로운 데 가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여생을 보낸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권행동 카라(KARA), 핫핑크돌핀스 등 동물보호단체는 서울시와 서울대공원이 ‘바다쉼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다쉼터는 해수면에 가두리양식장처럼 거대한 펜스를 쳐서 만든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는 미국과 영국 사례를 들며 “건강이 나쁘거나 늙은 돌고래가 바다와 같은 환경에서 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김장용 부위원장은 “바다쉼터가 완공되면 태지를 보내고 그때까지는 울산 고래박물관과 재협의하거나 서울시가 소유권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바다쉼터에 부정적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손호선 센터장은 “우리나라 바다는 여건상 외국처럼 만(灣)을 막는 수준으로 바다쉼터를 만들고 유지하기 어렵다”며 “어업권 보상에만 수천억 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대 돌고래연구팀 김병엽 교수도 “제주도는 계절풍과 태풍의 영향으로 수온이 일정치 않아 제2의 학대가 될 수 있다. 바다쉼터는 돈벌이를 하는 전시장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태지가 바다에서 사는 게 이상적이지만 방류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는 데 공감했다. 건강하고 젊은 개체를 두 마리 이상 짝지어 원래 서식지에 방류한다는 원칙에 비춰 봐도 태지는 나이가 든 데다 짝도 없으며 일본 다이지가 고래 포획이 가능한 구역이어서다. 토론회는 다음 달 해외 전문가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