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교민 대상 ‘박항서 감사제’, 관광객이 싹쓸이…이게 韓 수준?
사진=뉴시스, 라까 페이스북 공식 계정 |
“베트남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인데 54인승 관광버스까지 왔다. 죄송하지만 베트남에 장기간 체류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가지고 계신 한국인 분들께만 선물을 주겠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10년 만에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올려놓은 박항서 감독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베트남 거주 한국 교민에게 제품을 공짜로 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베트남 가죽 업체 ‘라까(LAKA)’ 측은 25일 이 같은 내용의 긴급 공지를 띄웠다.
애초 베트남에서 거주하거나 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행사였지만, 이를 악용해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와 제품을 싹쓸이해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박항서 감독이 이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5일 베트남 하노이의 미딩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챔피언십 스즈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박항서 매직’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7일, 베트남 전역에 10여 개의 가죽 제품 매장을 둔 ‘라까’는 ‘박항서 감사 이벤트’를 시작했다.
연말까지 베트남에서 생활하거나 일하는 한국인에게 하노이, 호찌민, 하이퐁, 부온 메 투옷시에 있는 매장의 어떤 상품이든 1개씩 무료로 주겠다는 것이다.
이 이벤트는 지난 23일까지만해도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24일 국내에서 관련 보도가 나간 뒤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이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국인들이 택시를 타고 한꺼번에 찾아오는 경우도 빈번했고, 심지어 한국으로 선물을 보내달라는 이메일 요청이 쇄도했다.
호찌민 매장에는 54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와 구두나 가방 등을 1개씩 챙겨가기도 했다.
이에 라까 측은 25일 오후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후 4시부터 베트남에 장기간 체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서류(명함 등)를 제시하는 한국인에게만 선물을 주겠다”는 내용의 긴급 안내문을 게재했다.
해당 업체 응우옌 딘 뜨 사장은 “어제 오후부터 한국인 수백 명이 매장을 찾아 왔고, 이 중 상당수는 관광객이었다”며 “관광객은 이벤트 대상이 아니지만 그동안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을 아끼고 모든 한국인에게 선물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 어쩔 수 없이 대상을 제한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하며 “한국으로 선물을 보내달라는 요청도 선착순 100번까지만 수락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부끄러움은 우리 몫. 제발 나라 망신 좀 시키지 마세요” “박항서 감독이 높인 한국 위상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등 의견을 쏟아내며 ‘공짜’만을 좇는 일부 관광객을 비판했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