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럭셔리 카’는 어떤 모습일까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드론, 친환경 동력원, 자율주행 개념을 모두 담은 애스턴 마틴의 ‘볼란테 비전 콘셉트’는 자동차 개념의 혁신적 변화를 예고한다. |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한다. 재미 삼아 신년운세를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무리 추상적이라고 해도 자신의 미래 모습이나 다가올 운명을 미리 그려보는 것은 희망을 갖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그런 계획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이나 능력, 속해 있는 업계나 사회에 관한 구체적 자료와 분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면 성공과 발전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사람들이 연말연시를 맞이하듯, 자동차도 사람이 운전하는 바퀴 달린 탈 것에서 벗어나 개인화된 이동수단으로 개념이 바뀌는 시기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시기에 자동차, 특히 럭셔리 카의 미래상을 점쳐보는 것은 흥미로울 뿐 아니라 럭셔리 카를 포함한 자동차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적 럭셔리 카 브랜드들이 다양한 조사와 연구, 창의적 아이디어를 결합해 내놓은 콘셉트 카를 살펴보면 우리가 만나게 될 미래의 럭셔리 카와 주변 환경에 관한 그림을 좀 더 뚜렷하게 그려볼 수 있다.
미래 럭셔리 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철학과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다. 2016년 롤스로이스는 ‘비전 넥스트(VISION NEXT) 100’이라는 슬로건으로 ‘103EX’라는 이름의 콘셉트 카를 내놓았다. BMW 그룹 창업 100주년을 기념해 지나온 100년을 바탕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한다는 뜻을 담은 슬로건처럼 103EX 콘셉트 카는 롤스로이스가 그리는 럭셔리 모빌리티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롤스로이스 103EX 콘셉트카는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롤스로이스의 철학을 담았다. |
롤스로이스는 전통적인 럭셔리 카에서 미래 럭셔리 모빌리티로 이어질 핵심 가치를 꼽아 103EX에 반영했다. 우선 롤스로이스를 타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세계에서 돋보이는 유명인사가 되리라는 것을 전제로 삼았다. 그 전제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차로서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해 존재감을 나타내며 차에서 내릴 때까지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롤스로이스는 103EX에 어떤 동력원이 쓰일 지는 구체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래적이고 강력하며 공해 없는 구동계와 첨단 서스펜션으로 상징적인 ‘마법의 양탄자’ 같은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차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전통적 장인정신과 미래 기술을 한데 모은 호화로운 실내다. 지금도 모든 롤스로이스 차들에 쓰이고 있는 코치 도어(앞뒤가 서로 마주보게 열리는 문)와 수가공으로 꾸민 라운지 스타일의 실내는 여전하다. 그러나 실내 전체를 감싸는 원목 패널과 미래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소파, 넓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스크린은 미래적 디자인과 더불어 마치 극장과 같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안락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공간 개념을 보여준다. 앞바퀴 뒤쪽 공간에는 여정의 시작과 끝에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수제 여행용 캐리어 수납 공간도 마련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얼티미트 럭셔리 콘셉트카. |
두 번째로 주목할 특징은 공간에 초점을 맞춘 차체 구성과 미래 동력원의 결합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올해 베이징 모터쇼에서 선보인 얼티미트 럭셔리(Ultimate Luxury) 콘셉트 카도 럭셔리 모빌리티의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차체 형태는 전통적 고급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스타일을 한데 모아 안락함과 실용성을 하나의 차 안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덕분에 얼티미트 럭셔리의 외모에는 대형 SUV와 트렁크 부분이 돌출된 세단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다. 사실 이런 형태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유럽 럭셔리 세단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전통적 디자인의 미래지향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 요소에서는 최신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마이바흐 S-클래스처럼 조절되는 안락한 뒷좌석에서는 늘 따뜻한 차를 즐길 수 있다. |
실내는 운전사가 차를 모는 것을 전제로 뒷좌석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좌우가 분리된 뒷좌석은 포근하고 감싸는 듯한 분위기와 웰빙에 초점을 맞췄다. 밝은 나파 가죽과 감각적인 무늬의 원목, 광택이 은은한 금속 장식이 실내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마이바흐 S-클래스처럼 세부 조절이 가능한 오토만 시트로 최상의 편안함을 추구했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좋아하는 음악과 향수의 향 속에서 좌석 사이의 센터 콘솔에 마련된 다기에서 따뜻한 차를 잔에 따라 마시며 편안함을 한껏 누릴 수 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얼티미트 럭셔리 콘셉트 카는 구동계 면에서도 미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순수 전기차 개념으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고 네 개의 전기 모터가 바퀴마다 하나씩 연결되어 있어 개별적으로 구동력이 조절되는 네바퀴 굴림 시스템을 이룬다. 총 출력이 750마력에 이르는 전기 모터는 지금의 럭셔리 카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매끄러우면서도 강력한 가속을 이끌어낸다.
전통적인 자동차 개념을 뛰어넘은 럭셔리 모빌리티를 구상하고 있는 브랜드도 있다. 그런 흐름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애스턴 마틴이 제안한 볼란테 비전 콘셉트(Volante Vision Concept)다. 이것은 올해 영국에서 열린 판버러 에어쇼를 통해 처음 소개됐다. 전통 있는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가 제안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항공기 개념을 담고 있는 모빌리티다. 간단히 말하면 요즘 인기 있는 드론처럼 수직 이착륙 기능을 갖춘 모빌리티다. 애스턴 마틴도 이것을 ‘개인 럭셔리 항공 모빌리티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말한다.
영국 크랜필드대학, 크랜필드 에어로스페이스 솔루션즈, 롤스로이스(자동차 브랜드가 아닌 항공기 엔진 업체)가 협력해 제안한 이 콘셉트 항공기는 실내에 세 명이 탈 수 있고, 도로상의 교통 정체를 피해 도심지에서 빠르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모빌리티다. 점점 도시의 거대화가 진행되면서 럭셔리 카 수요층의 이동이 불편해질 것을 고려해 도로라는 2차원 공간에서 벗어나 3차원의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이동의 자유를 높이는 것이 모빌리티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애스턴 마틴 볼란테 비전 콘셉트는 드론 개념을 결합한 개인 이동수단이다. |
여기에는 최근 자동차에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기 구동 기술과 자율주행 기술이 반영되어 뛰어난 효율과 더불어 안전한 이동을 가능하게 해 준다. 현재 애스턴 마틴 스포츠 카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맡아 항공 모빌리티에도 고유의 개성을 담았다. 볼란테 비전 콘셉트처럼 드론 개념을 접목한 개인 모빌리티는 아우디-에어버스 컨소시엄 등 다른 브랜드에서도 차츰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시대는 자동차 역사는 물론 럭셔리 카 세계에서도 가장 획기적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더라도 럭셔리 브랜드들은 변화에 발맞춰 소유자들에게 최고의 호화로움과 안락함을 줄 수 있는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미래가 현실이 되는 때가 오고 지금 같은 자동차의 개념이 사라지는 날이 오더라도 말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