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아래 백조의 발놀림처럼… 무대뒤 백조의 ‘조용한 전쟁’
‘오데트’ 홍향기에게 듣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지그프리드 왕자 역의 마밍 발레리노(왼쪽)가 흑조 오딜 역의 홍향기 발레리나를 백조 오데트로 착각해 함께 무도회에서 춤추는 장면. 홍향기는 “고난도 동작을 하다 생기는 부상을 막기 위해 쉬는 날에도 약속을 잡지 않고 몸 풀기에만 신경 쓴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종아리 근육을 꼭 풀어줘야 해요. 의상을 갈아입을 땐 2, 3명씩 붙어 도와주느라 진짜 정신이 없어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떼어다 옮겨놓은 듯한 무대 디자인, 다채로운 원색의 의상·장신구와 백조들의 화려한 군무까지.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백조의 호수’가 화려한 볼거리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동안 무용수들은 무대 뒤에서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들은 근육 경련이 생기지 않도록 몇 초의 휴식시간 동안 종아리, 허벅지 근육을 열심히 주무른다. 한쪽에서는 동료를 향해 ‘실수하지 않았으면…’ 하는 묵언의 응원 기도도 이어진다. 공연 중인 무용수가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 뒤편에서는 조용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4년째 주역 ‘오데트’ 역을 맡고 있는 홍향기 발레리나(30)를 5일 만나 ‘백조의 호수’ 무대 뒤 이야기와 관전 포인트에 대해 알아봤다. 우선 그가 꼽은 조용한 전쟁의 순간은 2막 1장에서 솔로로 흑조 연기가 끝난 직후다.
“오데트는 주로 왼쪽 다리로만 중심을 잡고 서 있거나 회전하거든요. 2막에서 흑조 파드되(2인무) 연기와 솔로 연기를 펼치고 난 뒤 한 다리로 연속 회전하는 푸에테 장면 이전에 딱 30초간 쉬는 시간이 주어져요.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앉아서 계속 종아리를 주무르고 주먹으로 때립니다. 매년 공연 때마다 이 순간이 가장 고비죠.”
잠깐의 휴식이자 전쟁 같은 순간이 지나면 무용수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대로 돌아온다. 그는 “후반부로 갈수록 안무가 격렬해져 숨소리도 거칠어지지만 백조의 자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화려한 소품, 의상이 활용되는 작품인 만큼 의상을 갈아입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주연 외에 많게는 3, 4개 의상을 입는 무용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스태프가 붙어 무대의상을 바꿔 입도록 분주하게 돕는다.
백조와 흑조를 오가며 달라지는 오데트의 표정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1막 등장장면에서는 최대한 애처로운 연기에 집중하다 2막에서 흑조를 연기할 땐 요염하면서도 도발적인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다른 배우들도 표정 연기에 공을 들여 발레단 내 ‘표정연기 특별훈련’도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제일 애정이 가는 장면을 묻자 ‘솔로 파트’보다는 단원들이 함께 만드는 ‘1막 2장 호숫가 전경’ 장면이라고 답했다.
“여러 무용수가 함께 만드는 웅장한 장면인데 무용수 한 명 한 명의 움직임과 숨결에 집중하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올해 새로 추가한 흑조와 백조의 군무 장면은 물론 이번에 처음으로 바꾼 ‘새드엔딩’도 뭉클함을 선사할 겁니다.”
13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1만∼10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