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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증 반납 아닌 운전졸업” 54년 베테랑이 운전대 놓은 이유

[생명운전, 멈추고 늦추자] <7> 고령 운전자 면허 자진반납

동아일보

2018년 9월 54년 동안 지니고 있던 운전면허증을 반납한 최홍운 씨가 새마을교통봉사대 단복을 입고 웃고 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먼지 쌓인 앨범을 뒤적이던 최홍운 씨(82)는 한참 만에 꼬깃꼬깃한 종이 운전면허증을 찾았다. 1964년 운전면허증. 무려 56년 전 국내 운전면허 체계가 막 마련됐던 시기에 딴 것이다. 최 씨는 이 면허를 가지고 30년간 ‘시발택시’와 대형버스 등을 몰며 가족을 건사했다. 누구랑 여행이라도 가면 당연한 듯 운전대를 잡은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그랬던 최 씨는 현재 ‘무면허자’다. 2018년 9월 자신의 인생이 담긴 면허증을 서울시에 반납했다. 선뜻 면허증 반납 행사의 홍보모델까지 자처한 최 씨에게 당시 담당 공무원마저도 “면허증 반납해도 아쉽지 않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오히려 ‘베테랑 운전자’의 답은 여유로웠다. “국가가 준 면허증을 그동안 잘 썼으니 이제는 반납해야죠.”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5년 만에 73%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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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 운전면허증 반납은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자칫 나이가 들었단 이유로 반납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되면 또 다른 차별일 수 있다. 최 씨처럼 어르신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뭣보다 고령자 면허증 반납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는 게 제일 급선무다. 국내 만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2014년 2만4429건에서 2019년 3만3239건으로 크게 늘고 있다. 정부는 만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면허증 갱신과 적성검사 주기를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줄이고 2시간의 교통안전교육 이수 등을 의무화했다. 또 각 지방자치단체는 교통비 지원 등의 혜택을 통해 면허 반납을 권장하고 있다.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고령운전자들은 아무래도 정보 처리 기능이 약화돼 측면이나 후방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장애물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다고 본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특히 비보호 좌회전처럼 신호보다 차간 간격 등 교통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최 씨가 운전면허 반납을 마음먹은 계기도 비슷하다. 65세 이후부터 최 씨는 평범하게 걸어가다가도 발을 자주 헛디디는 등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운전 도중 교통신호에 반응하는 속도도 점점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최 씨는 “54년차 운전자의 직감으로 ‘운전대를 놓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최근 고령운전자의 자진 면허 반납은 지난해 7만3222건으로 2018년보다 약 5배가 늘었다. 2017년 경찰청과 지자체들이 함께 인센티브를 적극 제공한 게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당수 고령자들은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까’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설이곤 한다.


최 씨는 이런 또래 어르신들에게 “면허증 ‘반납’이 아니라 운전 ‘졸업’으로 여기라”고 조언을 건넸다. 최 씨는 면허증을 반납한 뒤 오히려 더 생활이 활발해졌다고 한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더니 건강도 좋아졌고 교통비도 오히려 줄었다. 최 씨는 “지하철도 무료고 해서인지 큰 불편함 없이 지낸다”고 했다.

어르신 맞춤 운전면허제 고려해야

어르신 운전면허 반납 제도는 이미 해외에서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 해 평균 30만 명 내외가 면허를 반납하는 일본은 자가용 이용 비율이 높은 지방 도시에서 적극적인 지원으로 반납을 유도한다. 단거리를 자주 운행하는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고 2년 동안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일부 지자체는 ‘운전면허졸업증서’를 만들어 수여식을 열기도 한다.


미국의 몇몇 주는 고령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일리노이주는 운전자 면허 갱신 주기가 4년이다. 하지만 65세 이상은 2년, 만 80세 이상은 1년이다. 고령자는 면허 갱신 시 시력 검사도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네덜란드는 어르신을 위한 ‘조건부 운전 적합’ 면허제도를 운영한다. 신체 기능이 떨어진 운전자를 면밀히 체크해 ‘자동변속 차량만 운전 가능’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필수 착용’ 등 조건을 붙여 면허를 갱신해준다.


서울-부산, 주민센터서 면허 반납-지원금 신청 ‘한번에’

다른 지자체는 8월부터 서비스… 대부분 10만원 상당 교통카드 지급

오토바이 면허도 동시취소 주의


현재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선불교통카드나 지역화폐 등의 혜택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별로 예산 여력이 달라 혜택과 기준 연령이 다르다. 신청방법과 주의사항을 Q&A로 정리했다.


―몇 살부터 면허를 반납할 수 있나.


“지자체별로 다르다. 서울 인천은 70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등은 65세 이상이다. 서울시도 양천구는 65세 이상이면 반납을 할 수 있다. 각 지자체에 확인하는 게 좋다.”


―자동차가 없어도 면허 반납이 되나.


“가능하다. 충북 청주와 제천 등 일부 지자체만 차량 소지자나 책임보험 가입자여야 면허를 반납할 수 있다. 대부분은 면허증만 있으면 반납할 수 있다.”


―지원 내용이 궁금하다.


“역시 지자체별로 다르다. 대체로 10만 원 상당의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현금이나 상품권을 주는 곳도 있다. 경북 고령은 30만 원 상당의 교통비를, 강원 강릉은 2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한다. 대중교통 혜택이 더 큰 지자체도 있다. 강원 양구는 현금 10만 원과 택시쿠폰 20장을, 경남 진주는 반납 직전 1년간 자동차보험 가입 기록이 있으면 면허 반납 시 5년간 시내버스 무료승차권을 준다. 부산시는 지자체와 제휴한 업체에서 할인도 받을 수 있다. 부산은행 적금 이자도 우대해준다.”


―어디서 신청할 수 있나.


“7월 1일부터 서울 부산은 자신의 주소지 주민센터에서 면허 반납과 지원금 신청을 한 번에 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실시한다. 기존에는 경찰서나 면허시험장에서 면허를 반납하고 주민센터에 지원금 신청을 해야 했다. 다른 지자체 거주자들은 8월 3일부터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다.”


―신청 방법은 어떻게 되나.


“반드시 본인이 면허증을 가지고 방문해야 한다. 자녀나 배우자가 대신 신청할 수 없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바로 면허 반납 처리가 돼 마음이 바뀌어도 철회할 수 없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면허를 다시 따야 한다면 반납일로부터 1년 뒤 필기시험부터 다시 쳐야 한다.”


―면허 반납 뒤 오토바이는 운전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고령자 면허 자진 반납은 순발력이나 판단력 저하에 따라 생기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오토바이 등 이륜차도 마찬가지라 면허 반납 뒤에 타면 무면허 운전이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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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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