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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 욕하면서 왜 보냐고요? 스트레스 풀리니까!”

막장 드라마 여전한 인기비결 분석

복수 등 자극적 소재 드라마

윤리적인 문제와 논란에도 현실 도피적 대리만족 느껴



동아일보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는 학부모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 선생님의 얼굴을 발로 차면서 “이 쓰레기 같은 것들”이라고 말한다(왼쪽 사진). 이 드라마에서 각종 사고로 피범벅이 된 딸. 이런 장면도 막장 드라마 흥행공식의 하나다(가운데 사진). 올해 방영된 ‘비밀의 남자’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각 방송사 제공

막장 드라마는 죽지 않았다. 올 10월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이달 1일 순간 최고 시청률 21.9%를 기록했다. 침체된 지상파 드라마에서 마(魔)의 시청률이라 불리는 20%를 돌파한 것. 출생의 비밀, 불륜, 선악 대결 등 ‘막장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지만 “욕하면서도 결국 본다”는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막장 드라마는 보통 사람의 상식과 도덕적 기준으로는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구성된다. 자극적인 소재에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설정이 오히려 시청자를 사로잡는다. 눈 밑에 점을 찍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아내의 유혹’(2008년)이 대표로 꼽히는데 펜트하우스의 김순옥 작가 작품이다. 올해도 사고로 일곱 살의 지능을 갖게 된 남자의 복수극을 다룬 ‘비밀의 남자’, 장기 매매라는 자극적 소재를 앞세운 ‘위험한 약속’ 등이 방영됐다.


왜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걸까. 지난해 막장 드라마 관련 논문을 발표한 김봉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시청자들은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색다른 설정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대리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업주부는 “엄두도 못낸 자유분방함을 느낀다” “평생 경험 못할 일을 경험하게 한다” 등 극한 상황설정을 새로운 경험으로, 직장여성은 “현실의 어려움을 잊게 해준다” “데이트처럼 설레며 기다린다” 같이 현실 도피적 대리만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일상의 스트레스를 막장 드라마 시청으로 푼다는 말도 있다. 자극적이면서도 황당한 장면들을 보면서 어이없어하지만 이를 ‘B급 코드’로 소비한다. 지난해 49.4%의 순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하나뿐인 내편’에서 등장인물이 머리채를 잡히는 장면은 ‘짤방’(간단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온라인에 퍼졌다. 제작진은 이 같은 상황을 노이즈 마케팅처럼 시청률 견인에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년 여성뿐만 아니라 청년들까지 막장 드라마를 주로 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막장 드라마를 보며 자란 20대가 취업난, 주거난의 현실을 잠시 잊으려고 막장 드라마를 소비한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가벼운 오락거리를 원하는 시청자들의 심리를 막장 드라마가 충족시키고 있다”며 “이 중독성에 적응하면 다른 드라마는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들어 종합편성채널이 생기고 케이블TV 드라마가 활성화되면서 위기에 몰린 지상파가 작품성보다는 막장 코드라는 ‘쉬운 길’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 업계 한 관계자는 “드라마로 먹고살기 위해 현실적으로 타협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막장 코드를 섞고 있다”고 말했다.


윤리 문제는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황후의 품격’(2018∼2019년)은 임신부 성폭행, 시멘트 생매장 등의 자극적 묘사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4차례 법정 제재를 받았다. ‘내 딸 금사월’(2015년)도 아내가 남편 멱살을 잡고 난간에서 위협하는 장면 등으로 방심위 징계를 받았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일반 시청자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대중 작품의 숙명이어서 막장 드라마를 무작정 비판하는 시선은 옳지 않다”면서도 “다만 극의 개연성 문제와는 별도로 언어 사용이나 폭력성에 대한 자체적인 사전 검열은 필요한 절차”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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