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 돌아가신 후 무작정 걷기 시작… 35kg 감량했어요"
정용권 씨가 한라산 백록담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고 있다. 정용권 씨 제공. |
충북 청주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정용권 씨(52)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4년 전부터 시작한 걷기와 등산으로 35kg 넘게 감량했다. 그는 매일 걷고 주말엔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며 슬기로운 100세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4년 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지병으로 한달 고생하다 가셨어요. 사실 그 때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죽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정용권 씨는 4년 전 걷기 시작해 3년 전부터는 산도 타기 시작했다. 120kg이었던 체중은 80kg대 초 중반으로 줄었다. 정용권 씨 제공. |
당시 정 씨의 체중이 120kg 나갔다. 그는 “아 내가 무분별하게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때 허기진다는 이유로 밥 3공기에 맥주 4캔을 마시고 바로 자는 게 생활이었다고 했다.
“그런 생활이 나쁘다는 생각도 안했는데 어느 순간 몸이 불어나 있었어요. 제 몸 상태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느낀 겁니다.”
돌이켜보니 몸이 좋지 않았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혈압도 높았다. 몸이 둔했고 움직일 때 숨이 가빴다. 늘 피곤했다. 머리도 무거웠다. 어쩔 땐 현기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걷기 시작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쉬운 게 걷기잖아요. 처음엔 아파트 한바퀴 도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 다음 공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조금씩 늘려갔어요. 어머니 돌아가신 게 저에겐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정용권 씨가 속리산 신선대에 올랐다. 정용권 씨 제공. |
1km에서 2km, 2km에서 5km, 5km에서 10km. 걷는 거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걷기가 생활화가 됐다.
“자영업을 하다보니 특별하게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생활 속 운동을 실천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3km를 걷습니다. 동네 근처 해발 220m 목령산까지 2km를 다녀온 뒤 아파트 한바퀴 1km를 걷죠. 점심 땐 가게 문을 닫고 1시간 30분을 걷습니다. 한 5km 정도 걷게 되죠. 저년 땐 식사를 하고 3km를 걷습니다. 집사람이 뭐 살게 있다면 걸어서 마트를 다녀오고 아니면 그냥 걷습니다.”
정 씨는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몸이 더 많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량을 계속 늘렸다. 그러다보니 매일 10km 이상을 걷게 됐다”고 했다. 등산을 한 것도 몸이 반응해서란다.
정용권 씨가 경남 산청 황매산 정상에 올랐다. 그는 걷고 산을 타는 것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다. 정용권 씨 제공. |
“제 고향은 전북 김제인데 주변에 산이 없었죠. 제가 산에 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걷다 보니 더 많은 운동량이 필요해졌고 어느 순간 산에 올라가도 전혀 문제없는 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솔직히 평지를 걷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서 산을 간 측면도 있습니다.”
산 오르는 것도 처음엔 집 주변 해발 200m 낮은 산부터 300m, 400m로 차근차근 올렸다. 어느 순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산도 가게 됐다. 정 씨는 걷기 시작 1년째부터 운동 루틴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매일 11km를 걷고 주말에는 산으로 가는 게 그의 운동 루틴이다.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해발 1000m 이상급 산을 오르게 됐다.
“솔직히 그냥 살기 위해서 걷고 산에 올랐는데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정도 걸으니 천천히 신체적인 변화가 왔어요. 역시 걷는 양이 많아지니 살이 빠지더라고요.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빠져 2년째엔 현재 몸무게인 80kg초중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용권 씨(왼쪽)가 부인 인필선 씨와 일본 후지산에 올랐다. 정용권 씨 제공. |
지난해 8월부터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오르고 있다.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한라산을 찾게 됐죠. 한라산 7개 코스를 다 돌아봤어요. 설악산도 12개 코스를 4, 5번에 걸쳐 훑었죠. 산이 너무 좋아졌어요. 온갖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능선 등 경관도 좋았죠. 산과 하나 되는 느낌도 좋았어요.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이라니…. 어느 순간 능선을 타는 맛을 알게 됐죠. 그러다 보니 산 전체의 맛까지 느꼈습니다. 그러다 산을 좀 체계적으로 타보자는 생각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일요일(8월 1일)까지 51개의 명산을 올랐습니다.”
정 씨는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여름 휴가기간에만 100대 명산 7개를 올랐다. 수도권 도봉산과 수락산, 청계산, 경기 양평 유명산, 경남 함양 황석산과 산청의 황매산, 그리고 전남 영암의 월출산까지. 8월 7일엔 전북 장수 장안산, 8월 8일엔 경남 합천 가야산에 오를 예정이다.
“한번 산에 오르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갑니다. 능선을 탈 경우엔 6~7시간 걸리죠. 이젠 산을 타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저에게 등산은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정용권 씨가 산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산을 타다보니 어느 순간 산을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정용권 씨 제공. |
이렇게 산을 많이 타면 무릎은 괜찮을까?
“걷기 전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좋아했어요. 스노보드를 타다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쳤었죠. 인대 등 주요 부분을 다친 것은 아니지만 평상시 절리는 증세가 있었는데 산을 타면서 없어졌어요. 전 등산하면서 무릎이 더 좋아졌어요.”
정 씨는 매일 걷고 산을 타다보니 매년 운동화 4, 5켤레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등산화를 신었는데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어 더 편한 운동화를 신는다. 2~3개월에 한 켤레는 갈아 신고 있다”고 했다.
정용권 씨(오른쪽)가 부인 인필선 씨와 일본 후지산에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정용권 씨 제공. |
정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산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솔직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산을 탔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걸었고 걷다보니 산을 올랐고, 산이 좋아 산을 타다보니 어느 순간 다이어트란 선물이 제게 와 있었습니다. 혹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걷은 것과 등산을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정 씨는 요즘 옷 입는 맛이 난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탄탄해져 옷맵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용권 씨(오른쪽)가 아내 인필선 씨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정용권 씨 제공. |
정 씨가 이렇게 열심히 산을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 인필선 씨(50)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집사람이 함께 해줬어요. 함께 걷고 산에도 함께 갔죠. 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등산을 즐기고 있는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시락과 과일 등 필요한 것도 잘 챙겨줬습니다. 산에 가면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 씨는 걷고 산을 타다보니 살이 빠졌고 건강도 얻었다. 부부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다. 그는 “평생 아내와 함께 산을 타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했다.
정 씨 부부는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이다. 스포츠심리학적으로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은 운동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포츠심리학에 ‘사회적 지지(지원)’라는 게 있다. 특정인이 어떤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요인으로 정서적, 정보적, 물질적, 동반자 등의 지지를 말한다. 이 중 동반자 지지가 가장 강력하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서 동반자가 중요한데 그 동반자가 남편이나 아내라면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부부가 함께 즐기면 서로 의지하며 운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더 높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겨 금슬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