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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도자기, 그림, 사진 중에 무엇이 가장 비쌀까

전승훈 기자의 도시산책

서울 광화문 광장에 거대한 ‘달항아리’가 등장했다.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해 강익중 작가와 UN참전국 어린이 1만2000명이 협업해 만든 설치미술 작품 ‘광화문 아리랑’이다. 높이 8m에 이르는 정육면체 형태에는 4면에 달항아리가 그려져 있다. 위 아래 두 개의 그릇이 모여 달항아리 형상을 이루는데, 6·25 70주년을 상징하는 뜻에서 70초마다 90도씩 회전하며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이다.


‘달항아리’ 작가로 유명한 재미 설치작가 강익중은 2007년 12월에는 광화문 복원공사 현장에 2611개의 베니어합판에 달항아리를 그려넣어 모자이크처럼 엮은 대형 가림막을 선보인 바 있다. 강익중 작가는 “위쪽과 아래쪽을 별도로 만든 뒤 불가마를 통과해서 제작되는 달항아리는 너와 나, 남과 북, 나아가 전 세계를 연결하고 화합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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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작가의 6.25 전쟁 70주년 기념 설치작품 ‘광화문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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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광화문 가림막으로 설치된 강익중 작가의 ‘광화문에 뜬 달’

달항아리는 둥그런 몸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조선시대의 40cm~50cm의 대형백자 항아리를 일컫는 말이다. 항아리의 희고 깨끗한 살결과 둥근 생김새가 보름달을 연상시킨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17세기 후반 무렵부터 18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로부터 흠모와 찬탄의 대상이 돼왔다.


백자 달항아리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기”라고 찬사를 보냈고 세계적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도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예술적 가치를 인정한 바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가 달항아리 모양의 성화대에 불을 붙여 지구촌 70억 여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달항아리의 매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언주로 갤러리나우에서 30일까지 진행되는 ‘우리는 왜 달항아리에 매료되는가’. 강익중, 구본창, 김용진, 석철주, 신철, 오만철, 이용순, 전병현, 최영욱 등 9인의 대표적인 달항아리 작가가 참여했다. 전통 달항아리를 재현하는 도자기 작가부터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그리고, 사진으로 촬영하고, 철심과 도자부조, 한지부조로 달항아리를 형상화하는 등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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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창 작가의 달항아리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사진작가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이다. 구본창은 1989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도예가인 루시 리에(Lucie Rie)의 사진을 보고 달항아리에 매료됐다고 한다. “사진 속 루시 리에 옆에 놓여 있는 조선시대 백자를 본 순간, 그 큰 볼륨감과 완만한 선에 감동하게 됐고, 시간의 상처에 긁힌 흔적들과 하얀 속살같은 표면은 머나먼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인의 옆에 놓여 있는 백자의 서글픔을 강하게 느끼게 했다.”


이후 구본창은 유럽, 일본 등 전세계를 돌면서 박물관 수장고나 개인 컬렉션 유리장 속에 있는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찾아다녔다. 그는 “한 사람의 인물사진을 촬영하듯 달항아리를 찍었다. 단순한 도자기 이상의 혼을 가진 그릇으로서 느껴졌다. 우리의 마음을 담고, 만든 이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로서 내면의 기운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달항아리는 아무런 무늬나 그림도 없이 순수한 흰색으로 된 둥근 항아리다. 고려청자는 물론 중국, 일본의 도자기가 발전할 수록 정교한 무늬와 그림을 담았던 것과 정반대의 길로 갔다. 무심한 듯 텅빈 항아리가 오히려 꽉찬 느낌을 준다. 백자 달항아리는 어떤 용도에 쓰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렇게 희고 큰 항아리에 고추장이나 간장을 담았을 리는 없을 듯하다. 왕실에서 의식용으로 사용했거나, 감상용 예술작품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투명한 유약 아래 흰빛과 일그러진 원이 어우러진 달항아리의 ‘무심한 아름다움’에서 한국미의 뿌리를 보았다.


수화 김환기도 달항아리의 불가사의한 미감에 심취해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글을 남겼다. “내 뜰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 있다.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다. 한 아름 되는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로되 따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을 넣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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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뫼요 달항아리

실제로 지난 달 전남 장성의 희뫼요에 갔을 때 한옥 집 마루에 놓인 달항아리가 무척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항아리가 실내에만 놓여져 있을 줄 알았는데, 뜰에 놓여 있는 흰색 달항아리에 꽃이 담겨 있는 풍경은 한옥의 선과 무척 잘 어울렸다. 밤에 둥근 달이 떠올랐을 때 그 아름다움은 절정에 달했다.


도예가인 신철 작가는 불가마에서 굽는 전통방식으로 1000점이 넘는 달항아리를 만들어왔다. 그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어머니의 지극한 성품에 비유했다. “고려청자가 아무 공간에서나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귀족적인 미라면 달항아리는 어느 공간 어느 자리에 놓아도 함께 화합이 가능한 친숙함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 놓여진 공간감이 건축의 공간만큼이나 여유로움을 발하는 것도 달항아리만의 미덕이다. 어머니의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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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 작가의 방산백자

파리의 에펠탑은 ‘라 담 드 페르’(La Dame de Fer)라는 애칭이 있다. 철로 만든 ‘귀부인’이라는 뜻이다. 에펠탑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곡선미를 자랑한다. A자 모습으로 생긴 자태가 완만한 곡선으로 길게 하늘로 솟아 있으면서, 아랫 부분의 둥그런 아치형는 풍성한 드레스를 연상케 한다. 철골로 짜여진 구조는 바람을 통하게 하면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들어낸다. 마치 모자를 쓰고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로 성장을 하고 센 강에 외출하러 나온 귀부인의 자태를 보는 듯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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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철주 달항아리

달항아리의 곡선도 한복을 입은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귀부인을 연상시킨다. 에펠탑이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계산된 공학의 산물이라면, 달항아리는 사람의 얼굴처럼, 사람의 몸매처럼 자연스럽다. 달항아리는 둥근 모양이지만 완벽한 원은 아니다. 마치 보름달이 되기 직전 이지러진 달의 모양이다. 완벽한 원은 폐쇄적인 느낌이 들지만, 달항아리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져 무궁무진한 감상의 즐거움을 준다.


“달항아리는 두 개의 그릇을 합쳐 만들게 됩니다. 접착면인 허리 부분이 불속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생동감 있는 조형성을 만들어 내지요. 그릇이 포개지면서 물레방향이 어긋나서 벌어지는 양상입니다. 불속에서 그릇의 흙은 물레방향으로 운동을 하게 마련입니다. 보름달 직전의 이지러진 모습이 생겨나는 이유죠.” (신철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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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광화문 아리랑

재미 작가 강익중이 광화문에 설치한 대형 달항아리 작품도 위 아래가 구분돼서 돌아간다. 달항아리의 제작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인 셈이다. 각각 따로였던 두 개의 그릇이 만나 불에서 구워지면 보름달 같은 하나의 원을 이루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또한 입구가 넓고 받침대 부분이 작다. 때문에 보름달이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입체감을 준다.


최영욱 작가는 달항아리 표면의 무수히 많은 빙열(氷裂·도자기 표면의 균열)을 마치 도를 닦듯이 반복해서 그려낸다. 그는 “나는 달항아리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달항아리와 조용히 만나본 적이 있는가.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극도로 세련된 그 피조물을 먹먹히 보고 있노라면 그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내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인가를 그는 이미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내가 그린 ‘Karma’는 선에 그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선은 도자기의 빙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길이다. 갈라지면서 이어지듯 만났다 헤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 듯 하면서도 하나로 아우러진다.”


달항아리 작가인 도예가 권대섭 씨는 “달항아리는 입체에서도 제일 추상이다. 저는 전통을 잇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장 현대적이기 때문에, 가장 미니멀하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추상이기 때문에 달항아리를 한다”고 말했다.


권대섭 도예가의 말처럼 달항아리는 끊임없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대상이다. 김용진은 철사를 침처럼 세워서 달항아리의 모습을 재현해냈다. 그의 작업은 무한한 반복으로 얻어내는 결과다. 이주은 미술평론가는 그의 작업에 대해 “반복은 무의미가 아니다. 평범한 반복 속에 인간의 존재 이유가 담겨 있으며, 창조의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 말한다.

달항아리 도자기, 그림, 사진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비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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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현 ‘블러썸’

달항아리를 집에 소장하고 싶은데, 도자기는 너무 비싸지 않을까? 국내외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는 20여 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5월 홍콩에서 열린 미술품경매장에서 과거 일본으로 반출됐던 ‘달항아리’가 약 25억원에 낙찰돼 팔렸다.


현대 작가들이 만든 달항아리도 수백~수천만원 대에 팔린다.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는 2018년 10월 영국 런던 경매에서 5만2500파운드(약 7700만원)에 낙찰됐다. 이번 갤러리 나우에서 전시된 신철, 이용순 작가의 지름 40cm 이상의 달항아리는 약 1000~1200만원 대의 가격에 거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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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욱 ‘Karma’

그렇다면 달항아리를 그린 사진과 그림은? 실제 도자기 달항아리보다 싸지 않다. 구본창의 달항아리 사진은 1300~2300만원, 최영욱의 달항아리 그림 ‘Karma’는 2100~4800만원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강익중이 그린 모자이크 작품 ‘Happy World’는 6000만원, 평면에 철심을 세워 달항아리를 재현한 김용진의 작품도 2500~6000만원 가량이다. 전통 골동품 달항아리가 아닌 이상, 달항아리의 미감(美感)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독창적 감각에 많은 값어치가 붙는 셈이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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