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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젖은 가을 물안개… ‘달의 연인’ 처럼 살며시 다가온다

[Travel 아트로드]경남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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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8경 중 하나인 영남루 야경.

《“아저씨, 밀양이라는 이름의 뜻이 뭔지 알아요?” “뜻요? 뭐 우리가 뜻 보고 삽니까? 그냥 사는 거지.” “한자로 비밀 밀, 볕 양. 비밀의 햇볕. 좋죠?”영화 ‘밀양(密陽)’의 영어 제목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이다. 이 영화로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은 극 중에서 상대역 배우 송강호에게 ‘밀양’에 와서 살게 된 이유를 밝힌다. ‘비밀의 햇볕’은 신(神)의 은총과 구원, 용서, 인간의 나약함을 상징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영화 ‘밀양’ 덕분에 경남 밀양은 여행자들에게 비밀 같은 신비로움 가득한 곳으로 다가온다. 원래 ‘밀양’의 ‘밀’자는 ‘빽빽할 밀(密)’이라고 한다. 볕이 빽빽하고, 촘촘하게 드는 양지 바른 곳이라는 의미다. 밀양강가 영남루에 앉아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있자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신비스러운 빛이든, 빽빽한 볕이든, 밀양은 가을날의 따스한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시크릿 호수, 위양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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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 위양못에는 저수지 가운데 5개의 작은 섬과 완재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다. 물에 비친 하늘과 구름, 숲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거울처럼 물에 비치는 하늘과 구름, 숲. 데칼코마니처럼 비친 풍경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알 수 없다. 1.8km에 이르는 위양못 둘레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고목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이야말로 ‘시크릿 선샤인’처럼 느껴진다.


밀양시 부북면의 ‘위양못’은 통일신라 때 농지에 물을 대기 위해 축조된 저수지다. 어느 곳을 보아도 서정적이고 동화 같은 풍경에 조선시대부터 풍류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던 곳이다. 팽나무, 소나무, 이팝나무 고목들이 우거져 있고, 버드나무가 호수에 머리를 감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수묵 담채화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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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못에 사진작가들이 몰리는 시기는 이팝나무 꽃이 피는 5월이다. 그러나 붉은 단풍이 들어가는 가을에도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의 남녀 주인공인 이준기와 아이유가 다정한 모습으로 거니는 장면을 촬영할 정도로 풍류가 넘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걸리는 호수 둘레길 걷기는 칠암교를 건너 저수지의 섬에 있는 완재정(宛在亭)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룬다. 안동 권씨의 재실로 1900년에 지어진 정자인데, 팔작지붕 건물 주변으로 돌담을 쌓아 그 너머로 보이는 위양못이 그림 같은 풍경을 던져준다. 특히 저수지 풍경이 내다보이는 정자 앞 쪽문은 ‘인생 샷’을 남기는 포토존으로 인기다.

○돌 물고기 떼가 퍼덕퍼덕 뛰는 만어사 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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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삼랑진읍 만어사를 찾아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었다. 해발 674m 만어산 8분 능선까지 차로 올라가 만어사 절 앞에 서니 구름에 싸인 영남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발아래 놓여 있다. 그런데 절집보다 먼저 수만 개의 돌들이 여행객을 맞는다. ‘시커먼 돌 물고기 떼가 퍼덕퍼덕 산꼭대기로 뛰어 오르는 곳’이라고 해서 이 절의 이름이 ‘만어사(萬魚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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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만어사 대웅전에서 내려다본 너덜바위 지대. 멀리 영남 알프스의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실제로 만어사 대웅전 아래를 내려다보니 중형차, 소형차만 한 크고 작은 바위들이 폭 100m, 길이 500m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 돌들이 마치 고래나 상어, 참치처럼 헤엄치며 산에 오르고 있는 형상이다. 운해(雲海)가 가득한 날이면 영락없이 바닷물 위로 돌들이 주둥이를 내밀고 있는 물고기처럼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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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배지붕 형식으로 지어진 만어사의 대웅전과 3층 석탑은 소박하지만 기품이 있다. 그러나 만어사에서 더 중요한 가람은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이다.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에도 이곳 너덜바위 이야기가 나온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간청한 뒤 길을 떠나니 수많은 물고기 떼가 그 뒤를 따랐다. 그가 멈춘 곳이 이곳 만어사였다. 왕자는 미륵불로,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바윗돌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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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는 수많은 돌들을 미륵의 설법을 듣는 물고기에 비유한다. 실제로 미륵전 아래 첩첩이 쌓인 경석(硬石)을 두드려 보면, ‘땡땡땡’ ‘탁탁탁’ 등 맑은 종소리가 나거나 목탁 소리가 난다. 만어사의 바위들을 보면 돌로 두드린 하얀 자국들이 보인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도 경석으로 만들어서 쇳소리가 난다. 만어사의 돌은 미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중생들의 깨달음을 향한 끊임없는 정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돌을 두드리는 청명한 소리가 가을의 산사에 울려 퍼진다.

○은행나무가 물들어 가는 금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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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은행나무 단풍으로 유명한 금시당과 백곡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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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활성동으로 들어서면 굽어 흐르는 밀양강을 건너 산자락에 금시당(今是堂)이 보인다. 금시당은 1566년 조선 명종 때 학자로 좌승지를 지낸 이광진 선생(1517∼?)이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산수와 함께 조용히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돌아가자!/전원이 점점 황폐해지려는데/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 아직 멀리 벗어나지는 않았으니/지난 것 잘못되었음에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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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진 선생의 호인 금시당은 중국 당나라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구절이다. 젊은 시절 벼슬을 하며 세파에 시달렸으니, 지금부터라도 자연과 더불어 바른 길을 가겠다는 그의 단호한 의지가 읽힌다. 옛날 중국에 공자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단을 행단(杏檀)이라 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어 학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금시당에도 이광진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45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데 몸통 둘레가 5.1m, 높이는 22m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다. 담장 너머로 밀양강의 절경을 볼 수 있는 금시당은 해마다 11월이면 황금빛 단풍잎을 우수수 쏟아내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가볼 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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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강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밀양 시내를 관통하는 밀양강은 요즘 노란색 해바라기와 분홍, 빨강, 보랏빛 코스모스가 어우러진 꽃밭이 여행객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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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 주변인 산외면에 있는 기회송림 유원지는 캠핑장으로 인기가 높다. 입구에는 영화 ‘밀양’에서 신도들의 야외집회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유원지에는 수령 120년 된 소나무 9500여 그루가 빽빽이 들어서 숲속에서 향긋한 솔잎향을 맡으며 텐트 치고 야영할 수 있다. 기회송림 유원지 근처에는 밀양 맛집 ‘솔밭만두’가 있다. 숙성된 남해마늘과 표고버섯 육수로 만든 꽃새우만두와 영덕게살수프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인근 ‘솔솔카페’에서 ‘솔잎향 그득 에이드’를 마시면 소나무 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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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시 대운산 자연휴양림에 있는 ‘숲애서’는 명상과 요가, 영양관리를 통해 휴식과 산림치유, 건강치유를 경험할 수 있다. 숲 치유길은 편도 600m 길이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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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밀양=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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